매일 항공권 사이트 들락날락하는 나… 혹시 ‘여행병’? [별별심리]

신소영 기자 2023. 8. 18. 0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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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이후 억눌렸던 여행에 대한 갈망으로 여행병을 호소하는 사람이 늘어났다./사진=클립아트코리아
여행의 의미는 모두에게 다르지만, 많은 이들은 여행이 답답한 일상에서 잠깐 빠져나와 몸과 마음에 휴식을 주고, 활력을 불어넣는다고 말한다. 그래서인지 여행 후에 꼭 이른바 ‘여행병’이 생기는 사람들이 많다. 정식 질환 명은 아니지만, 여행에 대한 갈망이 병이 될 만큼 과도하게 커져 계속 여행을 떠나고 싶어하는 것을 말한다. 나는 왜 이렇게 여행을 갈망할까?

◇코로나 이후 여행병 호소 늘어나
실제로 여행 관련 카페에는 여행병을 호소하는 글들이 많다. 이들은 “여행병 못 고쳐서 외국 나와 살고 있다” “올해 벌써 해외여행 세 군데나 계획 중이다” “여행지에서 돌아오는 순간 바로 다음 여행지 검색을 한다”고 말한다. 여행병의 증상도 있다. 여행사 레드캡투어 자료에 따르면 ▲항공권 예매 사이트를 매일같이 방문한다 ▲SNS 해시태그로 여행 사진만 찾아본다 ▲여행지를 테마로 한 영화만 반복해 본다 ▲캐리어를 방에서 가장 눈에 잘 띄는 곳에 둔다 ▲아직 못 가본 여행지를 주변 사람이 먼저 다녀오면 질투가 난다 ▲오직 여행만을 위한 적금을 들고 있다 등의 증상이다. 특히 최근 들어 여행병에 걸렸다는 사람이 더 늘었다. 코로나로 인해 억눌렸던 여행에 대한 갈망 때문이다. 실제로 하나투어에 따르면 7월과 8월 출발하는 패키지 예약이 전년 동기간 대비 각각 391%, 473% 증가했다. 단국대 심리학과 임명호 교수는 “특히 젊은 층에서 이런 경향이 두드러진다”며 “코로나가 유행한 3년 반 정도 외부 활동을 못했기 때문에 반동형성으로 더 여행을 가고 싶어할 수 있다”고 말했다. ‘보복 소비’처럼 일종의 ‘보복 여행’ 현상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도파민 중독, 현실도피, SNS 영향 등 원인 다양해
여행병은 여행에서 돌아오는 순간 후유증처럼 더 심해진다. 여행할 때 나오는 도파민 때문일 수 있다. 임명호 교수는 “여행을 하면 답답한 곳으로부터 해방됐다는 느낌 자체가 쾌감 호르몬인 도파민을 생성시키고, 외부 활동으로 인해 도파민이 증가한다”고 말했다. 또 여행지에서만큼은 일에 대한 부담이 없고, 계속 신체적 활동을 하게 되면서 스트레스가 완화되는 효과도 있다. 가천대 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조서은 교수 역시 “어떤 이들은 새로운 자극 등이 아닌 오로지 여행에서만 기쁨을 느낀다”며 “그 행복에 학습돼 힘든 일상이 다가오면 이를 벗어나게 해주는 여행을 떠올리는 도파민성 중독회로와 관련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간혹 여행병은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현실도피의 측면으로도 볼 수 있다. 임명호 교수는 “지나치게 경쟁적이고 힘든 사회를 반대급부적으로 보여주는 게 여행 중독이다”고 말했다. 조서은 교수도 “늘 여행을 갈망하는 것은 현실 자체가 불만족스러워 벗어나고 싶고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감정일 수도 있다”며 “이런 회피는 건강한 방어기제는 아니다”고 말했다. 특히 여행을 갔을 때 굉장히 즐거웠다거나, 예상치 못했던 경험을 하며 만족감을 많이 느낀 경우 이런 경향이 크다.

이외에 TV·유튜브·SNS 등에서 전시되는 다양한 여행 관련 콘텐츠들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임명호 교수는 “매체를 통해 간접적으로 여행을 체험할 수 있다는 면에서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지만, 심하게 사치스러운 여행을 보여주는 건 자제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건강한’ 여행은 바람직… 일상 흔들리지 않는지 살펴봐야
여행병은 치료법도 없는 불치병이라고들 말한다. 하지만 꼭 고쳐야 할 필요가 있을까? 전문가들은 ‘건강한’ 여행이라면 바람직하다고 말한다. 즉, 꼭 비싼 여행이나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과시적인 여행보다는, 적은 비용으로도 외부 활동을 통해 잠깐의 쉼을 얻을 수 있다면 좋은 여행이다. 임명호 교수는 “꼭 1박 이상이 아니더라도 가까운 곳에 등산을 가는 등 신체 활동을 하는 것은 도움이 많이 된다”며 “일을 멈추고 잠깐 뒤돌아보는 여가로서의 활동이라면 모두 그 자체로 ‘여행’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조서은 교수 역시 “취미 정도로 틈틈이 여행을 즐기는 건 시야를 넓혀주고 자신을 성장시키는 원동력이 될 수 있어 긍정적이다”고 말했다.

다만, 중요한 것은 여행 때문에 현실에서의 일상생활이 흔들리지 않는지를 잘 살펴봐야 한다. 예를 들어 일을 포기할 정도로 여행에만 빠져있다거나, 부모가 육아를 내팽개치고 여행만 다닌다거나, 경제적으로 휘청할 정도로 무리하게 여행을 다닌다면 문제가 된다. 조서은 교수는 “이때는 여행에 대한 조절이 잘 안 되는 것이기 때문에 분명히 절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혹시 여행을 계속 떠나게 하는, 절제하지 못하게끔 하는 다른 요소들이 없는지도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만약 우울증 등 다른 병적인 요소가 원인이라면 여행이 해결책이 아닌, 근본 원인에 대한 전문적인 치료를 받는 게 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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