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 버전 ‘안아키’ 논란… ‘왕의 DNA’ 빨간책, 읽어보니

이예솔 2023. 8. 18. 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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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연구소 홍보 웹툰. 인스타그램 캡처

한 교육부 공무원이 자녀가 ‘왕의 DNA’를 가졌다며 담임 교사에게 훈육하지 말아 달라고 적은 편지가 논란이 되면서 왕의 DNA 아이를 위한 교육법 책이 관심받고 있다.

지난 10일 교육부 사무관 A씨가 담임교사에게 ‘왕자에게 말하듯이 말하라’는 등 무리한 요구를 한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됐다. A씨는 지난 13일 사과문을 내고 “선생님과 학교 관계자 등에게 마음의 상처를 드린 점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고개를 숙였다.

A씨가 요구한 교육법 출처는 특수아동을 약물 없이 치료한다는 한 사설 연구소다. 이들은 ADHD(주의력결핍 과다행동 장애) 아이들을 ‘극우뇌’라고 부른다. 이 연구소가 운영하는 온라인 카페는 2011년 개설된 이후 극우뇌 아이들의 양육법과 함께 자폐·언어장애·지적장애 무약물 치료를 소개하고 있다. 이번 논란으로 기존 4000여 명에서 1만4000여 명으로 카페 회원수가 늘었다.

해당 카페에선 극우뇌 아이들을 위한 치료법을 소개하고 있다. 연구소장 B씨는 치료법 Q&A 글에서 “좌뇌 보강이란 넓은 의미로 극우뇌나 강우뇌의 손상을 회복시키는 과정”이라며 “좌뇌 보강을 해주면 산만하고, 모둠활동이나 정리 정돈을 못 하고, 질서나 규칙을 지키지 않고, 사회성이 부족한 점 등이 일정 부분 개선된다. 약을 먹이지 않아도 약 먹인 상태보다 더 좋아진다”고 주장했다.

극우뇌 치료를 위해선 적지 않은 비용이 필요하다. 2019년 기준 ADHD 소아 환자의 ‘좌뇌 보강’ 수업 한 달 비용은 취학 전 180만원 안팎, 초 5~6학년 210만원 안팎이다. 3~4개월 과정이 기본이라, 치료 과정에서 800만원에 가까운 비용을 내야 한다.

일명 ‘빨간 책’에서 말하는 극우뇌인들.   사진=이예솔 기자

‘극우뇌 양육법’ 빨간 책 들여다보니

연구소장 B씨가 쓴 극우뇌 양육법 관련 책은 일명 ‘빨간 책’이라 불린다. ‘천재용 자녀 양육서’라고 소개하며 시작하는 이 책에선 왕의 DNA란 표현을 쓰는 대신, 주의력 부족이나 ADHD 판정을 받은 아이들을 극우뇌형으로 분류한다. 극우뇌 아이들을 일반 상식으로 키우면 ADHD 아이가 되고, 제대로 키우면 반드시 천재가 된다는 얘기다. 이를 수많은 생체실험으로 증명된 결과라고 주장한다.

책에는 두뇌 유형 구별법과 연령대별 특징, 맞춤 양육법 등이 담겨 있다. 저자는 모차르트, 반 고흐, 히틀러 등 역사 속 유명인들이 모두 극우뇌인이라고 주장한다. 모차르트는 산만한 성격, 반 고흐는 성질에 못 이겨 본인 귀를 자른 행동을 근거로 든다. 또 히틀러는 천재를 잘못 키우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맞춤 치료법엔 ‘극우뇌 아이라면 인사 버릇 들이려고 애쓰지 말라’는 등 다소 황당한 내용이 담겼다. 논란을 일으킨 편지에 담긴 내용과 비슷하다.

책에서는 예술 중·고등학교 학생들 약 7~8%가 극우뇌 아이들이라고 말한다. 극우뇌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을 위한 조언도 나온다. 저자는 “(극우뇌형은) 수업 시간에 똑바로 앉아 있는 경우가 드물다. 선생님 보시기에 괘씸할 수 있어도 눈감아 주시기를 바란다”며 “모둠수업에서 극우뇌 아이에게 n분의 1 임무를 배정하지 않는 게 좋다”고 조언한다. 이 밖에도 “숙제 검사 때 극우뇌 아이가 안 해 온 것이 발견되어도 적당히 눈감아 주시면 좋겠다”고 당부한다. 글자와 씨름하는 숙제를 극우뇌 아이에게 강요하면 뇌를 다치게 되기 때문이다.

저자는 극우뇌 학생들은 거칠기 때문에 인정해 주고 격려해 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거친 행동을 하면 ‘남성미가 물씬 풍기네’라고 말하라는 등 구체적인 예시도 적혀 있다. 음식 이야기도 있다. 저자는 “많은 (극우뇌형) 아이들이 육류를 먹으면 부작용을 일으킨다”라며 “병원에 가도 소용없다. 고기를 끊어야 한다”고 권했다.

빨간 책 치료법, 의학적 근거는

전문가들은 해당 책에서 주장하는 치료법을 두고 “전혀 과학적 근거가 없다”라고 일축했다. 김흥동 세브란스 어린이병원 신경과 교수는 “말도 안 되는 황당한 이야기”라며 “극우뇌라는 단어 자체가 과학적으로 검증된 용어가 아니다. 과학적으로 입증된 치료법은 약물치료, 행동치료 외에 운동치료나 심리치료 등이 있다”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효과가 검증되지 않은 치료에 시간과 돈을 투자하면 아이들이 치료받을 기회를 잃게 된다”며 “아이들에게 오히려 더 안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병철 한림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도 “치료가 필요한 아이들이 치료 시기를 놓치게 되면 명백히 안 좋은 결과가 나온다”라며 검증된 치료를 받길 권했다. 해당 연구소에서 제안한 치료법은 ‘부모들의 불안 심리를 이용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 교수는 “아이에게 정신과 질환이 있으면 부모는 불안해한다. 부모들의 불안감을 이용해 유일한 해결책인 듯 현혹시키는 것”이라며 “부모의 불안을 없애는 면에선 치료 효과가 있을 것”이라며 설명했다. 그러면서 “의사들은 효과가 있다고 해서, 섣불리 다른 환자에게 치료법을 적용하지 않는다”라며 “객관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사이비 유사 치료”라고 말했다.

이예솔 기자 ysolzz6@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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