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용천폭발급 아니면 대화 안 할 것"…주민 굶어죽어도 버틴다 [北 9개 국방과제 긴급점검]

박현주, 정영교 2023. 8. 18. 05:02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과거 북한이 대화에 나오는 주된 변인 중 하나는 경제난이었다. 2017년 전례 없는 대북 제재가 숨통을 조여오며 '잔고'가 바닥날 시기가 가늠되자 이듬해 전격적으로 "비핵화를 하겠다"며 한ㆍ미에 대화를 청했다.

지금도 북한의 경제는 계속 나빠지고 있다. 국정원은 17일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1~7월 아사자가 240여 건으로 최근 5년 평균 110여건에 대비해 두 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분석한다"고 보고했다고 유상범 국민의힘 정보위 간사가 전했다.

하지만 이제는 경제가 어려우면 협상에 응하는 북한의 대화 방정식이 달라졌다는 지적이다. 코로나 19 확산에 유례없는 자발적 국가 봉쇄로 대응하며 자력갱생에 골몰해온 북한은 “방역 대승"을 선언했고(지난해 8월 전국비상방역총화회의), 최근에는 중ㆍ러와 밀착해 대북 제재의 구멍을 갈수록 넓히며 스스로 견뎌내는 '내구성'을 키운 모습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27일 소위 '전승절'(6ㆍ25전쟁 정전협정체결일) 70주년 기념 열병식에서 애국가가 나오자 눈물을 흘리는 모습. 조선중앙TV. 연합뉴스.


식량난 불구 버티기


지난달 한국은행이 발표한 '2022년 북한 경제성장률 추정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북한의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약 31조로 전년보다 0.2% 감소했다. 2021~2022년 연속 1% 미만의 감소폭으로, 2018년 북한이 돌연 대화에 나올 당시 성장률이 2017~2018년 연속 -3~-4%였던 데 비하면 훨씬 양호한 수치다.
김영옥 기자

식량난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외부에서 보는 것처럼 절박한 위기 상황은 아니라는 분석도 나온다.

농촌진흥청에 따르면 지난해 북한의 식량 작물 생산량은 451만t으로 전년(469만t) 대비 3.8% 감소했다. 이는 북한이 2021년 유엔에 제출한 '자발적 국가별 검토'(VNR)에 명시한 한 해 생산 계획 700만t에 훨씬 미치지 못한다. 정부도 북한 인구 2566만명이 자급자족하려면 최소 600만t은 필요하다고 본다.

하지만 북한은 이미 수년째 100만t 이상의 식량이 만성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도 버텨왔다. 지난해 작물 생산량이 전년 대비 줄기는 했지만, 그 폭도 크지 않다.

김주원 기자


유통 구조의 문제


결국 생산량보다 접근과 분배 등 유통 구조가 문제라는 분석도 그래서 나온다. 특히 북한 당국은 코로나 19 국면에서 최근까지 장마당을 강하게 단속하고 국영 양곡 판매소로 거래를 유도했는데, 그 여파로 유통망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일부 지역에서 식량난이 가중됐다는 관측이다.
지난해 10월 북한 양강도 혜산시의 장마당에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오가는 모습. 중국 지린(吉林)성 창바이(長白)조선족자치현에서 촬영. 연합뉴스.

익명을 원한 탈북민 출신의 북한 전문가는 "아사자가 속출했다면 북한 당국이 눈에 띄게 중국, 러시아로부터 쌀 대량수입에 나섰겠지만 그런 동향은 보이지 않는다"고 전했다. 국정원은 "북한은 현재 사적인 공물 거래 금지 정책과 군량미 우선 배분으로 곡물가가 계속 고공행진 중"이라며 아사자가 두 배로 늘었다고 봤지만, 여전히 도움을 요청할 정도는 아닐 수 있다.

실제 이지선 국가안보전략연구원 한반도전략연구실 부연구위원은 지난 6월 발간한 '가려진 식량 위기' 보고서에서 "북한 당국의 자체적인 고립 통제정책으로 인해 식량 분배에 문제가 생겨 그 피해와 부담이 일부 지역과 일부 계층에게 편중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2020년 10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강원도 김화군 수해 복구 현장을 방문해 벼 낟알을 살펴보는 모습. 조선중앙TV. 연합뉴스.


"재앙 없인 안 나온다"


이런 분석이 사실이라면 북한으로서는 양곡 정책을 재검토해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이지, 외부에 손을 빌릴 유인은 거의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정대진 원주 한라대 교수는 "북한 경제가 당장 무너질 정도라고 보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이 시점에 외부 도움을 살짝 받는 것으로 전반적인 경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판단할 리도 만무하다"고 말했다. 이어 "북한이 외부 지원을 공개 요청했던 2004년 용천역 열차폭발사건과 같은 대규모 재난이나 자연재해 등 통제 불가능한 변수 정도가 발생해야 대화 테이블에 나올 가능성을 따져볼 수 있으며, 중·러가 버티고 있기 때문에 그럴 가능성마저 희박하다"고 전망했다.

지난 2004년 대한적십자사 자원봉사자들이 경기도 고양시 대한통운 일산창고에서 북한 용천역 폭발 사고 현장에 보낼 구호품을 차에서 내리는 모습. 중앙DB.

물론 북한 경제 관련 통계 자체의 정확성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김병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최근 북한 당국이 나서서 스스로 시장 활동을 축소하고 있지만, 시장 관련 팩터는 한국은행 추정치에 제대로 반영이 되지 않는다"며 "북한의 지난해 국내총생산(GDP)은 2017년과 비교해 25%정도 감소했다고 보는 게 옳다"고 설명했다. 국정원도 17일 "북한의 GDP는 2016년 대비 2022년에 12% 감소하는 등 경제 악순환 상황"이라고 보고했다.

그런데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직접 '대미 장기대결'을 다짐한 건 앞으로 경제난은 상수로 두고 가겠다는 쪽으로 계산법을 바꿨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정유석 IBK경제연구소 북한경제팀 연구위원은 "북한이 불가항력의 요인으로 경제적 타격을 받더라도 국제사회를 향해 긴급지원을 호소하거나 중국, 러시아에 손을 뻗는 식으로 정치적인 타격이 작은 생존 방법을 모색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27일 소위 '전승절'(6ㆍ25전쟁 정전협정체결일) 70주년 기념 열병식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부 장관과 리훙중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부위원장과 함께 나란히 주석단에 선 모습. 노동신문. 뉴스1.


비핵화 접근법 전환 필요


기존의 비핵화 협상은 기본적으로 북한의 비핵화 조치에 상응해 경제적 보상 조치를 제공하는 구조로 이뤄졌다. 북한이 경제난을 상수로 안고 가기로 했다면, 앞으로는 이런 북한 비핵화 협상 접근법에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할 수밖에 없다.

실제 북한은 지난 2월 대내 매체인 노동신문을 통해 "존엄과 영광은 우리 인민에게 있어서 수백만t의 쌀이나 억만금을 준대도 바꿀 수 없는 목숨과 같은 것"이라고 했다.

지난 3월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남포시의 일꾼들과 근로자들이 밭의 관개체계를 완비하기 위한 투쟁을 강력히 전개하고 있다"며 보도한 사진. 노동신문. 뉴스1.

경제 발전이라는 '당근'이 통하지 않는다면, 결국 핵 보유의 '비용'을 높여 핵 개발은 체제의 종말로 이어질 것이라는 점을 깨닫게 하는 수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18일 한·미·일 정상회의에서도 3국이 이런 방향의 북핵 대응을 천명할 계획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16일 보도된 블룸버그 인터뷰에서 "북한의 지속적이고 불법적인 핵·미사일 개발에는 반드시 대가가 따르며, 북한 정권의 고립과 체제 위기만 심화될 것임을 깨닫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남성욱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는 "자본주의의 시각으로 바라보면 북한은 이미 1990년대에 무너져야 할 것으로 보이지만 사회주의 계획 경제의 내구성은 생각보다 강할 수 있으며, 돈줄을 죄어도 김정은의 금고는 가장 마지막에 타격을 받는다"며 "북한 독재 정권이 인민의 고혈을 짜내 핵 개발을 하고 있다는 점을 외부 정보 유입을 통해 꾸준히 알리는 등 북한 스스로 눈을 뜨게 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 정영교 기자 chung.yeonggyo@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