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국극, 끊어질듯 이어지고 사라질듯 부활하다
“나에게는 영 놓지 못하는 예술세계가 있다. 여성국극,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뛰고, 그의 몰락에 안타까운 마음은 꿈속에서도 못 잊는다.”
여성국극 1세대 배우이자 국가무형문화재 제79호 ‘발탈’ 예능보유자인 조영숙(90) 선생이 지난해 말 펴낸 자신의 저서 ‘여성국극의 뒤안길’에 쓴 글이다. 여성국극은 1948년 박록주 등 여성 소리꾼 30여 명이 남성 중심의 국악계에 반발해 ‘여성국악동호회’를 결성하면서 태동했다. 기존 혼성창극이 판소리 다섯 마당에 머물던 것과 달리 여성국극은 레퍼토리가 다양했다. 또한, 판소리를 토대로 하되 대중적인 음악과 함께 화려한 의상과 무대장치 그리고 무용 등으로 극적인 요소를 강화해 관객을 사로잡았다. 특히 남역(男役) 배우들은 요즘 아이돌처럼 ‘사생팬’을 달고 다닐 만큼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성공 이후 이어진 내부 분열이 여성국극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단체들이 많아지며 경쟁이 심해진 데다 대중의 관심이 영화에 쏠리면서 빠르게 쇠퇴한 것이다. 배우들은 무대를 떠났고, 15개까지 늘어났던 단체들은 문을 닫았다. 1960년대 들어 전통예술에 대한 국가 지원에서 여성국극이 배제된 것은 몰락에 이르는 결정적 한 방이 됐다. 일본에서 미혼여성만으로 이뤄진 다카라즈카 가극단이 1913년 창단 이후 지금도 인기를 구가하며 학교까지 만들어 단원 양성을 해온 것과 대조된다.
그렇다고 해서 여성국극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1960년대 이후에도 작은 무대일지언정 여성국극이 가끔 만들어졌다. 2000년대가 되면 젠더 관점에서 여성국극을 다룬 다큐멘터리, 퍼포먼스 등이 만들어져 주목받기 시작했다. 최근엔 여성국극을 다룬 웹툰 ‘정년이’(2019~2022년)가 큰 인기를 끌더니 올해 국립창극단에서 창극으로 만들어지기까지 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조영숙 선생의 제자 박수빈(38·사단법인 한국판소리보존회 안산지부 지부장)과 황지영(31·사단법인 한국판소리보존회 평택지부 지부장)이 2020년 안산에 설립한 여성국극제작소는 여성국극의 계보를 잇되 현재와 소통하는 시도를 하고 있다. 실례로 대표작 ‘여성국극 삼질이의 히어로’는 70년 넘게 여성국극을 지켜온 조 선생의 삶을 소재로 한 2인극이다. 박수빈과 황지영이 재담꾼을 비롯해 다양한 배역을 넘나들며 소리와 대사를 나누어 공연한다. 과거 전성기의 화려한 여성국극은 아니지만, 여성국극이라는 장르를 스토리 안에 진정성 있게 풀어냈다는 호평을 받았다.
여성국극제작소가 올해 야심찬 도전에 나섰다. 현재 남아있는 여성국극인들을 모아 공연을 올리기로 한 것이다. 오는 31일 안산문화예술의전당 달맞이극장에서 선보이는 ‘여성국극 레전드 춘향전’에는 여성국극 전성기를 보낸 1세대 이소자(93)·조영숙, 1세대를 보고 60년대에 여성국극에 뛰어든 2세대 이미자(79)·이옥천(78)·김성예(70) 그리고 3세대인 박수빈·황지영이 참여한다. 3세대의 경우 70년대 이후 여성국극에 뛰어든 배우들이 거의 중도에 그만둔 바람에 선배들과 나이 차가 많이 난다. 최근 방문한 ‘여성국극 레전드 춘향전’ 연습실은 나이와 상관없이 여성국극 부활을 위해 손잡은 선후배들의 열기로 뜨거웠다.
8살 때부터 조영숙 선생에게 판소리를 배우며 여성국극 무대에 섰던 황지영 여성국극제작소 공동대표는 “예전부터 여성국극 선생님들을 모시고 공연하고 싶었지만, 예산 문제 등으로 섣불리 나서지 못했다. 그런데, 지난해 조 선생님이 크게 아프신 뒤 더 미뤄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이번 공연을 기획하게 됐다”면서 ”이번 공연은 1세대 선생님들과 함께하는 마지막 공연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또 판소리를 배우다가 15살 때 조 선생의 여성국극 ‘춘향전’에 참여하면서 여성국극에 입문한 박수빈 공동대표는 “이번에 여성국극 원로 선생님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출연을 부탁드렸는데, 적은 개런티에도 불구하고 다들 흔쾌히 허락하셨다”면서 “이번 공연을 통해 여성국극의 역사가 끊어지지 않았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고 피력했다.
두 사람의 스승인 조 선생은 명창 조몽실(1905~1954)의 외동딸로 1951년 여성국극 최고 스타였던 임춘앵의 ‘여성국극동지사’에 입단했다. 임춘앵의 대역을 할 만큼 실력을 인정받았던 그는 특히 말재주 좋은 재담꾼 역으로 유명해졌다. 이후 여성국극의 10년 남짓한 짧은 전성기가 끝난 뒤에도 그는 여성국극을 떠나지 않았다. 1980년대 중반 발에 가면을 씌우고 연희하는 발탈 인간문화재 이동안(1906~1995)이 그의 재담을 높이 평가해 발탈을 권유하면서 그는 2000년에 전수교육조교, 2012년에 예능보유자가 됐다. 발탈 인간문화재가 됐어도 그는 여성국극을 알리고 공연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이번 작품에서 월매 역으로 출연하는 조 선생은 “아직도 여성국극에 대한 오해와 왜곡이 너무 많다. 그래서 여성국극의 번성과 쇠퇴 등 지난 역사를 제대로 알리기 위해 이 나이에 책을 썼다”면서 “여성국극의 몰락에는 내부 분열도 있지만, 당시 혼성창극 쪽에서 여성국극을 비하하며 국가의 전통예술 지원에서 배제되도록 만든 것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고 토로했다. 이어 “국가에서 여성국극을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하고 지원한다면 다시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조 선생과 함께 현존하는 1세대 배우로 이번에 변사또 역을 맡은 이소자 선생은 1951년 연극배우로 데뷔했다. 얼마 안 돼 ‘햇님여성국극단’의 공연을 보고 매료돼 여성국극 배우가 됐는데, 악역으로 이름을 날렸다. 당시 연극배우 중에는 이 선생처럼 인기 있던 여성국극에 출연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하지만 1960년대 초반 여성국극단이 자취를 감추자 그는 개인적으로 공연 활동을 하다가 1974년 미국 이민을 떠났다. 2009년 여성국극 부활의 꿈을 가지고 한국에 돌아온 그는 2011년 사비로 ‘춘향전’을 제작했다. 2013년엔 남원국악예술고등학교에서 국악인재들을 여성국극 배우로 키워내도록 기부 약정을 했다가 무산되기도 했다.
이 선생은 “여성국극 부활에는 인재 양성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인연이 닿았던 남원국악예술고등학교에 기금을 지원하기로 했는데, 혼성창극이 기본이라 여성국극을 할 수 없는 것으로 결론이 나서 안타까웠다”면서 “이번에 여성국극의 모든 세대가 참여해 공연을 올리는 것이 너무 뜻깊다. 생전에 좋은 여성국극이 만들어지는 것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
이번 공연은 여성국극에 새로운 전환점이 될지도 모르겠다. 안산문화예술의전당이 공연 소식을 접한 뒤 기획프로그램 ‘주목과 발견’을 신설하며 첫 프로젝트로 내세우는 등 여성국극제작소와의 협업에 적극적이기 때문이다. 최근 ‘정년이’로 여성국극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데다 마침 여성국극제작소가 안산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 크게 작용했다. 박수빈 대표는 “여성국극은 음악적으로도, 무대적으로도 얼마든지 변화할 수 있는 열린 구조인 만큼 앞으로 다양한 여성국극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고, 황지영 대표는 “안산에서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해 인재도 육성하면서 여성국극을 꾸준히 올리고 싶다”고 피력했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감옥 변기인 줄”…푸세식 화장실에 놀란 칠레 대원 [영상]
- 독일, 대마초 부분 합법화…“암시장과 마약범죄 억제 위해”
- “실리콘 조각이”…GS리테일, ‘실비김치만두’ 전량 회수
- 블핑 리사-루이비통 회장 아들 또 열애설…“공항 포착”
- “길고양이로 착각” 반려묘 학대한 ‘황당’ 가사도우미
- 가족 전세기·슈퍼카 8대… 네이마르, 옵션이 기막혀
- 신발 쩍쩍, 날파리 바글… 탕후루에 주변 상가 ‘몸살’
- “노가리 먹다가 냅킨 통 열었는데…바퀴벌레 우글우글”
- ‘정류장도 아닌데’…문 열어! 버스 막은 女 최후[영상]
- “테슬라 횟집이야?” 고가 모델 1만 달러씩 가격 인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