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끔찍한 인권침해, 北정권이 책임져야" 유엔 안보리, 6년만에 北인권회의(종합)
"북한 주민에겐 인권도, 표현의 자유도, 법치주의도 없다." "북한 정권은 반복되는 국제법 위반과 인권 침해 행위에 책임져야 한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가 17일(현지시간) 북한 인권 문제를 논의하는 공개 회의를 약 6년 만에 개최했다. 이 자리에는 북한이탈주민도 시민사회 대표 자격으로 출석해 북한의 인권 침해 실상을 증언했다. 미국, 일본을 비롯한 이사국들은 북한의 인권 침해 상황을 강하게 규탄했다.
린다 토머스-그린필드 유엔 주재 미국 대사는 이날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안보리 회의에서 "우리는 인권 없이 평화를 없을 수 없다"며 "북한이 대표적 사례"라고 밝혔다. 안보리에서 북한 인권 문제에 관한 공개회의가 열린 것은 2017년 이후 약 6년 만에 처음이다.
토머스-그린필드 대사는 김정은 북한 정권의 전체주의적 통제, 인권 침해, 자유 억압 등으로 인해 막대한 공공자원을 대량살상무기(WMD), 탄도 미사일 프로그램 개발에 투입할 수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한 북한을 수차례 안보리 결의를 위반한 '전쟁 기계'로 꼬집으며 "억압과 잔인함에 의해 작동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일본의 이시카네 기미히로 대사는 "북한의 끔찍한 인권 상황은 여전히 그대로이며 심지어 개선의 조짐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며 "북한의 인권 침해는 현대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한미일과 함께 이날 북한 인권 문제 안건을 공동 발의한 알바니아의 페리트 호자 대사는 자신도 북한 정권과 같은 통치 체제 아래에서 살았다면서 "북한 정권은 반복되는 국제법 위반과 인권 침해 행위에 대해 방어만 할 게 아니라 책임을 져야 한다"라고 촉구했다.
한국의 황준국 주유엔대사는 “북한의 인권 침해는 유엔 헌장에 담긴 보편적 가치에 명백히 위배되며 국제평화와 안보에도 위협이 된다”고 주장했다. 황 대사는 "북한은 극심한 경제난, 만성적 식량 부족이 악화되고 있음에도, 지난 1년 반 동안 12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s)을 포함해 전대미문의 없는 군사 도발에 몰두함으로써 부족한 자원을 WMD 기술 발전과 위력 과시로 낭비하고 있다"면서 "북한의 인권 유린은 북한 주민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의 국가안보에도 직결된 중대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자원을 전용함으로써 자국민 복지를 희생하고 WMD에 집중하는 것 자체가 모든 정치적 이견이 완전히 묵살된 나라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이 그의 지적이다.
황 대사는 북한 내 약 10만명이 정치범 수용소에 억류돼 있고 극심한 인권침해가 발생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끔찍한 삶의 여건으로 북한 주민들의 목숨을 건 탈북이 계속되고 있다”면서 “안보리에서 북한 인권 논의가 인권을 정치화하는 위험이 있다는 주장만으로 현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고 촉구했다.
반면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중국과 러시아는 이날 안보리가 인권 문제를 논의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겅솽 주유엔 중국 부대사는 “유엔 안보리의 주요 책임은 국제 평화와 안보 유지”라며 “진짜 북한 인권 문제에 신경을 쓴다면 북한에 대한 제재를 풀고 대화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드미트리 폴랸스키 러시아 차석대사는 "북한에 인권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미국과 그 동맹국들의 위선"이라며 "미국과 일본, 한국이 동아시아 지역에서 군사력을 강화하고 있다"고 했다.
중국과 러시아는 이날 공식회의에서 예상과 달리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토의 안건 상정을 두고 반대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이에 따라 절차 투표 없이 북한 인권 문제 토의 안건이 채택됐다. 이들 국가는 해당 안건이 이미 절차 투표 시 채택에 필요한 지지를 확보했다는 점을 고려해 말을 아낀 것으로 분석된다. 북한 측 대표는 이날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
이날 회의는 대북 규탄 성명, 추가 제재 결의안 채택 등과 같은 공식 대응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대신 안보리 종료 후 한미일 등 52개국 대표들은 유엔본부에서 약식 회견을 열고 북한의 인권 상황 개선을 위해 유엔 회원국들의 동참을 호소했다.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심각성을 두고 공감대가 확산하면서 각국 대사급들이 대거 참여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탈북 청년이 참석해 직접 북한의 인권 침해 실상을 고발하기도 했다. 북한 이탈 주민으로 한국외국어대에 재학 중인 김일혁씨는 "북한 주민에겐 인권도, 표현의 자유도, 법치주의도 없다"며 "정권에 반대하는 사람은 정치범 수용소에 끌려가 죽을 때까지 노역에 시달린다"라고 말했다. 그는 김씨 가족의 탈북 사실을 신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고모가 어린 자녀와 헤어진 채 정치범 수용소에서 몇 달씩 고문과 구타를 당한 사실도 고발했다. 이어 "우리가 당연히 여기는 자유를 북한 주민이 모두 누릴 수 있는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온 마음을 다해 기원한다"고 했다.
김 씨는 마무리 발언에서 영어 대신 한국어로 "독재는 영원할 수 없습니다. 더 이상 죄짓지 말고, 이제라도 인간다운 행동을 하기 바랍니다"라고 북 정권에 일침을 가하기도 했다. 토머스-그린필드 대사를 비롯한 각국 대사는 자신의 발언 순서에서 김 씨의 용기 있는 증언에 감사를 표하고 북한의 인권 유린 실태를 비판했다.
뉴욕=조슬기나 특파원 seu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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