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기다려 주는 마음

2023. 8. 18. 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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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앞에 정자가 있다.

그중에 한 할머니와 낯이 익게 돼 어쩌다 마주치면 가벼운 인사를 주고받는 사이가 됐다.

영리한 강아지도 할머니의 보폭을 아는지 조금 앞서간다 싶으면 할머니를 기다렸다.

멀어지는 할머니를 보며 '기다려 주는 마음'에 대해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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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미나 시인 겸 웹툰작가


집 앞에 정자가 있다. 그곳은 할머니들이 삼삼오오 모여 미숫가루를 나눠 먹거나 담소를 나누는 마을의 ‘사랑방’ 같은 장소다. 할머니들은 채소 장수가 트럭을 몰고 오는 오전이나 볕이 시들 무렵 슬슬 모여들었다. 그중에 한 할머니와 낯이 익게 돼 어쩌다 마주치면 가벼운 인사를 주고받는 사이가 됐다.

할머니는 유모차에 강아지를 태우고 산책을 나오곤 하셨다. 강아지도 할머니만큼 나이가 들어 보였다. 같이 살다 보면 생김새도 닮아 가는지 할머니와 강아지의 생김새도 비슷했다. 강아지도 관절이 시원찮은지 걸을 때 조금 절뚝였지만, 털 한 올까지 할머니의 애정을 듬뿍 받은 태가 났다. 할머니는 갓난애 다루듯 강아지를 소중하게 대했다. 더우면 강아지한테 부채질도 먼저 해주고, 물을 따라 줄 때도 “천천히 마셔”라며 주의를 주었다. 같이 걸어갈 때도 빨리 오라고 거칠게 목줄을 잡아끌거나 혼내지 않았다.

영리한 강아지도 할머니의 보폭을 아는지 조금 앞서간다 싶으면 할머니를 기다렸다. 점잖은 강아지였다. 할머니와 강아지의 정다운 산책은 지켜보는 나까지 편안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다 얼마 전 건널목에서 할머니를 보았다. 출발 신호에 맞게 건넜는데 할머니의 걸음이 워낙 느린 터라 초록불이 깜빡이는 동안 건널목을 다 건너지 못한 것이다. 건널목의 3분의 2 지점에서 신호등이 빨간불로 바뀌고 말았다. 대기 중인 운전자가 할머니를 보고 경적을 연달아 울려댔다. 한두 번만 울려도 될 텐데, 운전자는 급히 서둘러야 할 일이라도 있었던 걸까.

할머니가 건널목을 채 건너기도 전에 경적을 울리던 차가 음악을 광광 울리며 쌩하고 지나갔다. 할머니의 보폭은 빨리 돌아가는 세상의 속도를 따라잡기 힘들어 보였다. 멀어지는 할머니를 보며 ‘기다려 주는 마음’에 대해 생각했다. 늦어도 괜찮으니 찬찬히 하라고 참을성 있게 기다려 주는 마음이 귀한 세상이다.

신미나 시인 겸 웹툰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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