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적 소명 다하는 수업, 교사들은 그걸 원합니다”

정신영 2023. 8. 18. 04:07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국민초대석] 정수경 전국초등교사노조 위원장
정수경 전국초등교사노조 위원장이 지난 11일 서울 여의도 교사노조연맹 사무실에서 국민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정 위원장은 “교사의 정당한 교육 활동과 생활지도가 아동학대로 신고되는 상황이 반복되면 교실 안에서 교육은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한형 기자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 교사 사망 사건을 계기로 ‘교권 침해’ 상황에 대한 사회적 공분이 분출하고 있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서이초 교사 A씨가 학부모 민원과 업무 스트레스에 시달렸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동료를 잃은 교사들은 ‘당신은 나입니다’를 외치며 한 달째 거리로 나섰다. 정수경 전국초등교사노조 위원장도 같은 처지의 교사 한 명으로서 참석하고 있다. 정 위원장 역시 교권침해 경험이 있다고 했다. 1년간 학부모의 악성 민원에 시달리다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 그는 “같은 경험을 한 교사들이 집단적 트라우마 상태에 빠져있다”며 “교사들이 원하는 건 직업적 소명을 다하면서 수업을 하고 싶다는 것 뿐”이라고 했다. 정 위원장을 최근 서울 여의도 교사노동조합연맹 사무실에서 만났다.

-교사들의 극단적 선택 소식이 잇따르고 있다.

“지금 교사들 사이에선 ‘버티면 고기초(만화가 주호민씨 부부가 자녀의 교사를 아동학대로 고소한 사건), 못 버티면 서이초’라는 자조적 말까지 돌고 있다. 버티면 아동학대 혐의로 법정에 서서 결백을 밝히는 기나긴 싸움을 견뎌야 하고, 못 버티면 극단적 선택밖에 남지 않는다는 뜻이다. 특히 단순 추락사로 처리됐던 호원초 (교사 사망) 사건은 학교 관리자와 교육청, 교육부 시스템에도 문제가 있다. 얼마나 더 많은 교사의 죽음을 은폐했는지 교육 당국에 묻고 싶다.”

-무엇이 교사를 극한으로 내모나.

“교실 붕괴가 큰 원인이다. 대부분 사명감을 갖고 교단에 섰을 것이다. 그런 교단에서 교사들이 스스로 자기검열을 하며 교육적 활동을 못 하고 있다. 교실을 망치는 1~2명 때문에 나머지 26명 가량의 아이들을 지켜주지 못한다는 자괴감에 빠지게 된다. 또 교육부와 교육청, 학교가 방패막이가 돼주지 않고 있다. 직업적 본분을 다했을 뿐인데 엄청난 법적 책임이 교사 개인에게 돌아가는 실정이다.”

-학교 현장은 어떤 상황인 건가.

“정말 별의별 민원이 다 있다. 학교 급식으로 탕수육이 나왔는데 소스를 묻혀서 배식하니 우리 아이는 ‘찍먹’인데 왜 ‘부먹’을 강요하냐는 민원도 있다. 왜 우리 아이 스마트폰에 와이파이를 잡아주지 않느냐는 이유로 아동학대 신고를 당한 교사도 있다. 문제는 이런 민원을 교사 개인이 감당하게 돼 있다는 점이다. 이런 학부모 한 두 명이 교실을 붕괴시킬 수 있는 게 현재 시스템이다.”

-왜 이렇게까지 됐나.

“일각에서는 학부모들의 무리한 요구가 오은영 박사의 TV프로그램에서 비롯됐다고도 한다. 매우 심각해 보이는 아이 문제도 몇 차례 상담, 한 두 달 노력으로 해결할 수 있게끔 보이게 하기 때문이다. 사실 오 박사가 일대일 처방을 공교육에 요구한 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일부 학부모들은 권위 있는 육아 전문가가 내놓은 방안이니 당연히 교사에게 요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할 수 없는 것을 교사에게 요구하고, 요구가 받아들여 지지 않으면 ‘무능한 교사’, ‘내 아이를 미워하는 교사’로 생각한다. 또 ‘내 아이에게 이렇게 안 해주면 아동학대로 신고하겠다’는 식으로 교사를 협박하기도 한다. 교과서를 펴라는 지시도 아동학대로 신고당하는 사례들이 나오다 보면 교사는 위축된다. 이게 반복되면 교실 안에서 교육적 행위는 사라지게 될 것이다.”

-교권침해 대책 중 가장 시급한 건 뭔가.

“세 가지다. 아동학대 신고로부터 교육 활동을 보호해달라, 수업 방해 학생을 즉시 분리해달라, 학교 민원관리시스템을 구축해달라. 교원에게 소송비를 지원하거나 중대한 침해 조치 사항을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하겠다는 방안은 이미 교권침해가 일어나고 난 뒤의 일이다. 예방적 차원에서 먼저 접근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학부모의 악성 민원을 막아줄 방법과 교권침해 학생을 분리 조치하는 등 대응 방안이 선행돼야 한다. ‘학교 무한책임’ 인식도 바꿔야 한다. 교육의 1차 책임은 가정이다. 가정에서 먼저 보살핌이 이뤄져야 하는데, 지금은 뭐든 학교에 책임을 전가하는 인식이 만연해 있다. 이걸 방조한 것도 교육 당국이다. 인식을 바꾸려는 노력 없이는 모든 걸 남 탓하는 건강하지 못한 사회로 이어질 것이 자명하다.”

-교사를 위한 행정, 교사를 위한 입법이 없다고 지적했다.

“지난 5월 국회 토론회에서 이미 악성 민원과 무고한 아동학대 신고에 대한 해결 방안을 제시했다. 몇 달 전 교사들이 울먹이다시피 했던 얘기를 지금 또다시 해야 한다. 그때 교사들의 목소리를 들었다면 서이초 교사의 안타까운 죽음은 없지 않았겠나. 지금까지 교육정책은 현장 경험이 전무한 교육행정고시를 패스한 교육부 관료들의 탁상공론식 정책이었다고 생각한다. 현장 전문가는 바로 교사다.”

-교사들만의 분노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있다.

“학부모들도 ‘다 같이 교사를 지켜줘야 우리 아이들이 피해를 안 받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행동 제어가 안 된 아이가 존재하면 나머지 아이들은 수업권 침해를 분명히 받는다. 게다가 교사가 어느 한 명의 아동학대 의심으로 직위해제가 돼 다른 학생들과 분리된다면 그건 다른 아동들에 대한 아동학대다.”

-교육 활동 정상화를 위한 앞으로의 계획은.

“점점 더 심해지는 교권침해 사례를 접할 때마다 무기력함을 느끼기도 한다. 많은 교사가 정당한 교육 활동 지도와 생활지도를 했음에도 무고한 아동학대 신고로 직위 해제되고 있다. 조만간 아동학대법에 대한 헌법소원을 제기할 계획이다. 여러 곳에서 교사들이 탄원서를 보내주고 있어 빠르게 진행할 수 있을 것 같다.”

정신영 기자 spirit@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