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우진의 돈의 세계] ARM의 진화
도토리거위벌레는 한여름에 자식 농사를 짓는다. 도토리에 구멍을 뚫고 그 속에 알을 낳는다. 그다음 긴 주둥이로 도토리가 달린 가지를 톱질해 자른다. 알이 밴 열매는 나뭇가지와 함께 떨어진다. 부화한 애벌레는 도토리를 먹고 자란다. 이 벌레는 남들이 먹지 않는 설익은 열매에서 틈새를 찾았다.
‘도토리’에서 태어난 회사가 ARM이다. 영국 PC 시장을 선도한 에이콘 컴퓨터가 미국 애플 등과 합작 투자해 1990년 ARM을 탄생시켰는데, 에이콘(Acorn)이 도토리를 뜻한다. 에이콘으로 작명한 것은 애플(Apple)보다 전화번호부에서 앞서기 위해서였다.
초대 최고경영자(CEO)로서 ARM을 10년간 이끈 로빈 삭스비는 애플의 울타리에 머무는 대신 진화를 꾀한다. 생물 진화의 한 유형은 도토리거위벌레처럼 남들이 안 먹는 것을 독차지하는 데에서 비롯된다. 진화하는 기업은 남다른 제품이나 서비스를 먼저 창조해 제공하면서 그 시장을 장악한다. 반도체 생태계에서 삭스비는 로직 반도체를 설계하는 지식재산을 널리 제공한다는 전략을 최초로 궁리해낸다. 그 바탕에는 고속·저전력 칩 설계 기술이 있었다.
ARM의 설계가 활용되는 대표적인 로직 반도체가 스마트폰의 두뇌인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다. 아울러 랩톱 컴퓨터, 수퍼컴퓨터, 자동차, 데이터센터 등에 들어가는 칩도 있다. 삼성전자와 애플 등 고객사들은 ARM의 설계를 받아 필요에 따라 수정해 활용한다. ARM은 라이선스 계약에 따라 로열티 등을 받는다. 2021년 매출은 전년보다 35% 많은 27억 달러, 법인세·이자·감가상각비 차감 전 영업이익(EBITDA)은 68% 급증한 10억 달러로 발표했다. 이익률이 37%에 이른다.
상장을 앞둔 ARM이 던지는 질문이 있다. 남들이 아직 들어가지 않은 영역에 귀사가, 혹은 당신이 잘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백우진 경제칼럼니스트·글쟁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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