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하이엔드]럭셔리 거대 공룡 케어링은 어떻게 지속 가능성 선구자가 됐나
“지속 가능성은 우리의 핵심 전략.”
세계 럭셔리 업계의 거대 공룡 ‘케어링(Kering)’의 프랑수아-앙리 피노 회장의 말이다. 지난해 한 해 매출만 203억 유로(약 29조6000억원)에 달하는 케어링은 구찌, 생 로랑, 보테가 베네타, 발렌시아가, 알렉산더 맥퀸 등 유수 럭셔리 패션과 주얼리, 액세서리 브랜드를 보유한 굴지의 럭셔리 기업이다. 피노 회장이 말한 핵심 전략, 즉 지속 가능성을 그룹 내에서 진두지휘하는 마리 클레르 다브 케어링 지속가능성 최고책임자 겸 국제협력부문 총괄이 최근 한국을 찾았다. 한국 직원들을 직접 만나 본사가 어떤 지속 가능성 활동을 하고 있는지 알려 이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또 한국에서 해야 할 활동을 공유하기 위해서다.
케어링 지속 가능성 부서 이끄는
마리 클레르 다브 최고책임자 인터뷰
패션과 환경, 공존하는 미래를 그리다
세계 럭셔리 업계는 팬데믹을 겪으며 놀라운 성장을 기록했다. 국내만 해도 명품 소비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며 시장이 무서운 속도로 커졌다. 이 시점에 생각해보게 되는 게 바로 럭셔리 업계의 사회 환원이다.
일찍이 케어링은 이에 대한 답을 ‘지속 가능성’으로 봤다. 피노 회장이 지속 가능성을 회사의 핵심 전략으로 선언한 뒤, 지속 가능성 활동을 회사 내 주요 성과 지표로 적용하고 있다. 오랜시간 공들인 만큼 이들의 지속 가능성 전략은 상당히 치밀하고 조직적이다. 2003년 아마 케어링 그룹 내 지속 가능성을 전담하는 독립 부서를 설치했고, 지금 인원은 50명에 달한다. 게다가 브랜드별로 이를 실행하고 전담하는 직원을 두고 있으니, 실제로 케어링에서 지속 가능성에 대한 일을 하고 있는 사람 수만 100명이 넘는다는 의미다. 이들에게 방향성을 제시하고 지휘하는 사람이 바로 마리 클레르 다브다.
지난달 28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위치한 케어링 코리아 사옥에서 만난 그는 자신을 “엔지니어”라 소개했다. 지속 가능성을 위한 실현 가능한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이뤄낼 수 있도록 전략을 짜고 정량적으로 관리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였다. 그는 국립농수입과학교(ENFREF)를 졸업하고, 파리 도핀대에서 행정학 석사를 취득한 뒤 장-피에르 라파랭 전 프랑스 총리 내각의 기술 고문으로 커리어를 시작했다. 이후 환경·에너지·지속가능·국토개발부 등 다양한 프랑스 정부기관에 근무하며 환경과 관련된 경력을 쌓았다. 2005년엔 글로벌 헬스케어 기업 ‘사노피아벤티스’ 그룹으로 자리를 옮겨 지속가능 경영 부문 디렉터를 역임했고, 케어링엔 2012년 합류했다.
Q : 케어링 지속 가능성 부서, 무엇을 하는 곳인가.
“그룹 차원의 지속 가능성 전략을 수립한다. 피노 회장의 전략과 비전을 현실화하는 역할이다. 또 각 하우스(브래드)의 파트너로 본사가 가지고 있는 지식과 전문성을 전수한다. 이를 위해 에너지, 생물 다양성, 원자재 소싱 등과 관련한 전문가들이 모여 있다. 여기서 끝나지 않고 전략에 따라 하우스들이 그룹이 제품 생산부터 판매까지 모두 잘 적용하고 수행하고 있는지 점검하는 역할도 한다. 이외에도 혁신적인 가치를 제공하는 스타트업과 기업을 발굴하고 협업하는 것도 우리의 업무다. 지금까지 업사이클링을 포함해 다양한 분야의 약 250여 개 스타트업과 협력하고 있다."
Q : 지속 가능성 활동은 투자 등 금융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는데.
"맞다. 지속 가능 금융도 상당히 중요한 주제다. 케어링은 상장 기업이기 때문에 지속 가능성 관련해 많은 규제를 받고 있다. 우리 부서에선 새로운 규제가 나올 때마다 꼼꼼하게 검토해 규제 준수 방안에 대해 하우스와 논의하고, 또 투자자와 애널리스트들에게 관련 내용을 전달하는 역할까지 한다. 그렇다 해도 우리가 정부 규제와 금융을 위해 존재하는 건 아니다. 법·규제에 따른 의무 사항이 아니더라도, 원자재 추적과 재생 농업 같은 지속 가능 활동을 모두 자발적으로 선택해 실천한다."
전사가 온실 가스 배출량 40% 절감에 뛰어들다
마리 클레르 다브를 중심으로 케어링은 10년 넘게 지속 가능성에 대한 여러 활동을 해왔다. 주목할만한 것은 ‘지속 가능성 실현’이라는 목적을 위한 체계적인 전략이다. 특히 지속 가능성에서 중요한 부분인 환경, 사회적 책임, 혁신을 3C(Care, Collaboration, Creation)로 재정의하고 부분별로 세부 목표를 세우고 성과를 냈다. 2017년엔 ◇탄소발자국 40% 감축 ◇탄소배출량 50% 감축 ◇100% 투명한 공급망 구축을 골자로 한 ‘2025 지속가능 전략’ 보고서를 발표했다. 올봄엔 2035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 40% 절감 목표를 정했다. 그룹 산하 브랜드들은 이를 달성하기 위한 각자의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활동하게 된다.
Q : 전문적인 목표 설정과 체계적 관리가 돋보인다. 어떻게 가능했나.
“지속 가능성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방법론이다. 이를 위해 먼저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다. 2015년 업계 최초로 환경 영향을 측정하는 지표인 `환경 손익 분석(Environmental Profit and Loss, 이하 EP&L)`을 개발했다. 이를 통해 그룹 차원에서 정량적 목표를 세우고, 이를 모든 하우스가 함께 달성해 나간다.”
Q : 그룹 내 브랜드들은 잘 따라오나.
"케어링의 최고 경영진 및 임원은 사업적, 비사업적 실적의 두 가지 분야로 평가받는다. 이중 비사업적 실적은 각 하우스가 실행한 EP&L, 기후 변화, 순환성 등에 대한 성과를 평가하게 되는데, 사업적 성과를 평가하는 것과 동일하게 적용된다. 물론 이 방식이 완벽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하지만 우리가 지속 가능성을 위해 꾸준히 노력하고 있고, 이 과정 자체가 케어링의 중요한 가치인 점을 강조하고 싶다."
Q : 이렇게 지속 가능성에 집중하는 이유는.
“지속 가능성은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 아니다. 피노 회장은 ‘윤리적으로 옳은 행동이 결국 사업에도 좋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또 '럭셔리 기업은 트렌드 리더로서 지속 가능성 영역에서도 선도해야 하는 책임이 있다'고 말한다. 지속 가능성이 케어링에게 큰 기회이자 막중한 책임이란 뜻이다. 이런 그의 생각은 곧 우리의 비전이 됐다. 럭셔리가 지속 가능성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이유가 또 있다. 바로 '품질'이라는 공통점 때문이다. 기존엔 '좋은 품질'이라고 하면 장인정신·전문성·헤리티지를 들었지만, 이젠 여기에 사람과 지구를 위하는 마음과 행동이 추가됐다. 그래서 케어링의 하우스들은 지속 가능성을 직접적으로 커뮤니케이션하지 않는다. 지속 가능성은 이제 럭셔리의 필수 요소이자 DNA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Q : 어려운 점은.
"산업 전체를 움직이고 기존 시스템을 개선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케어링 혼자 열심히 한다고 해결되거나 패러다임이 바뀌지는 않는다. 우리뿐만 아니라 다른 럭셔리 그룹과 패스트 패션 기업들까지 모두 동참해야 변화가 생길 수 있다."
케어링은 실제로 다른 기업들을 지속 가능성 활동에 동참시키기 위해 애를 쓴다. 피노 회장은 2019년 이탈리아에서 열린 G7 정상회의에 맞춰 '지속 가능성 패션 협약(Fashion pact)'을 체결하고 지금까지 이끌어 오고 있다. 패션 협약엔 샤넬 등 럭셔리 기업은 물론 나이키, 아디다스, 인디텍스 그룹 등 다양한 패션 기업이 함께 한다. 패스트 패션을 대표하는 기업 인디텍스는 100만 헥타르에 다하는 땅을 재생 농업지로 전환시키기 위한 기금에 1500만 달러(약 200억원)를 기부하며 협약에 동참했다. 2021년엔 리치몬트 그룹 까르띠에와 공동으로 기후, 생물 다양성, 해양 보호를 위해 노력하기 위한 협약체 '워치&주얼리 이니셔티브 2030'을 발족했다.
Q : 지금 가장 집중하고 있는 활동은.
“올해 ‘온실가스 배출 40% 감축’이라는 구체적 수치를 발표했기 때문에 이를 달성하는 게 우선순위다. 이를 위해선 원자재, 원자재 추적성, 공정 제조에 집중해야 한다. 또 스타트업과 함께 하는 혁신적 활동에도 힘을 쏟고 있다. 스타트업이 개발한 친환경 소재 ‘데마트라(Dematra)’를 구찌가 제품에 사용했고, 스타트업 ‘비트로랩’과 함께 동물에 해를 끼치지 않는 가죽 개발이나 염색 원료 관련 스타트업과 함께 미생물을 활용한 염색법을 개발하고 있다.”
윤경희 기자 anni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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