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분 좋고 돈벌이까지…‘순환 경제’ 주목

최창원 매경이코노미 기자(choi.changwon@mk.co.kr) 2023. 8. 17.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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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 대응 나선 기업들
삼성·SK, ‘친환경 기술·설비 투자’ 확대

“향후 10년의 기후 행동이 다가올 수천 년을 결정할 것이다.”

지난 3월 기후변화협의체(IPCC)가 기후변화 제6차 종합보고서를 발간하며 강조한 발언이다. 여기서 언급된 기후 행동 대상에는 기업도 포함된다. 매일 탄소를 내뿜어내는 만큼 책임감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과거 기업들의 친환경 정책은 ‘단순 구호’ 수준에 그쳤다. 탄소중립 등을 외쳤지만, 뚜렷한 실천 방안이 없었다. 지금은 다르다. 친환경 정책을 통한 신사업 진출을 검토하는 기업이 생겨날 정도다. 일상이 된 기후변화 관련 기업들은 어떤 대응 전략을 짜고 있을까.

순환 경제로 ‘수익 창출’까지 노린다

‘폐배터리’부터 ‘푸드 업사이클’까지

연일 지속되는 폭염에 산업 현장은 그야말로 비상이다. 기업들은 온도별 비상조치 매뉴얼을 꺼내들었다. 삼성중공업은 외부 온도가 28.5도를 넘으면 점심시간을 30분 연장하고, 32.5도를 넘으면 한 시간 연장한다. 포스코 포항제철소도 ‘폭염·고열 작업 관리 프로세스’를 운영 중이다. 제철소 각 공장별 온도·습도를 측정한 ‘현장 실측 체감온도’를 반영해 폭염 위험을 3단계(관심·주의·경고)로 나눠 근무하는 방식이다. 온열 질환을 예방, 노동생산성 저하를 대비하는 것이다.

기후변화를 새로운 기회로 만들어낸 기업도 있다. 이들이 꺼내든 카드는 순환 경제다. 순환 경제가 각광받는 것은 대의명분과 수익성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폐배터리 재활용이 대표 사례다. 폐배터리에 잔존하는 코발트나 니켈·망간·흑연·리튬 등 금속을 추출해 이를 새로운 배터리 생산에 활용하는 방식인데, 관련 시장이 빠르게 커지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페배터리 재활용 시장은 연평균 17% 성장, 올해 108억달러(약 14조원)에서 2030년 424억달러(약 55조원) 규모로 확대될 전망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최근 중국 화유코발트와 배터리 리사이클 합작법인(JV) 설립을 위한 계약을 맺었다. 신규 합작법인은 폐배터리에서 배터리 핵심 원재료인 니켈과 코발트, 리튬 등을 추출해 재활용 메탈을 생산할 예정이다. 삼성SDI는 자체적으로 천안과 울산 공장에 재활용 체계를 구축했다. SK온의 모회사 SK이노베이션은 폐배터리 재활용 전문 기업 성일하이텍과 JV 설립을 논의 중이다.

글로벌 컨설팅 기업 딜로이트는 “한국 기업들은 3년간의 팬데믹을 거치며 글로벌 공급망 붕괴에 따른 피해에 직면해왔다”며 “순환 경제를 통한 원재료 재활용은 기업들에 이 같은 리스크를 사전 대비할 수 있는 전략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식품·유통업계도 순환 경제에 뛰어들었다. ‘푸드 업사이클링’이 대표적이다. 식품 제조 과정에서 발생한 부산물로 다른 식품이나 원료를 재생산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국내 맥주 시장점유율 1위를 지키는 외국계 주류 제조 회사 오비맥주는 맥주 생산 시 발생하는 맥주박을 살균·건조해 분쇄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대체 밀가루를 활용, 에너지바나 셰이크 등의 식품을 생산한다.

일각에서는 부산물로 만들어진 대체 밀가루인 만큼 품질 저하를 우려한다. 그러나 오비맥주에 따르면 맥주 부산물로 만들어진 대체 밀가루는 일반 밀가루보다 영양소가 풍부하다. 주요 영양분을 비교하면, 단백질은 2.4배 더 많고 식이섬유는 20배 이상 풍부하다. 칼로리도 약 30% 정도 낮다.

기존 사업과 관계없는, 완전히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곳도 있다. CJ제일제당은 일찌감치 ‘생분해 플라스틱’ 시장에 뛰어들었다. CJ제일제당은 HDC현대와 합작법인을 설립하고 생분해 플라스틱 생산을 본격화하고 있다. 생분해 플라스틱은 폐기된 이후 단기간에 물과 이산화탄소로 분해된다. 폐기 단계에서 탄소 배출 등 환경 파괴 우려가 덜하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CJ제일제당은 이미 글로벌 시장에서 5000t 이상의 선주문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새로운 분야에서 미래 먹거리를 창출하고 있는 셈이다.

배터리 연료는 수입에 의존한다. 원료 가격이 폭등하거나 공급이 불안정하면 배터리 생산에 차질을 빚는다. 기업들이 폐배터리 재활용에 나선 이유다. 사진은 인천항에 산적해 있는 배터리 제조 원료. (매경DB)
일부 업종 부적합…해법 찾는다

반도체업계 ‘친환경 설비’ 투자 본격화

다만 순환 경제가 모든 산업 분야에서 해답은 아니다. 반도체처럼 구축된 설비를 활용하는 경우, 순환 경제 도입이 쉽지 않다. 남상욱 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반도체·디스플레이 산업 탄소중립 추진 전략과 정책과제’ 보고서에서 “반도체 미세 공정에서 공정 물질 변화 등은 양산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쳐 대체를 위한 난이도가 높다”고 설명했다.

반도체업계는 대표적인 탄소 다(多)배출 업종이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이렇다 할 해법 마련이나 목표치 제시에 어려움을 겪은 배경이다. 삼성전자도 주요 주주들 비판이 이어지자 지난해 9월에서야 공식 탄소 감축 개선 방안을 밝혔다. 지난해 4월 삼성전자 주요 주주인 블랙록(Black Rock)은 ‘투자 스튜어드십 지침’에서 “삼성전자는 단기, 중기·장기 탄소 배출 감축 목표가 부재하다”며 “투자자가 삼성전자 에너지 전환 전략을 살펴보고 역량을 평가하기 위한 자료가 매우 제한적”이라고 지적했다. 지난해 기준 삼성전자 직접 탄소 배출량(Scope 1)의 95.7%는 반도체 사업(DS) 부문에서 발생한다.

관련 정책 발표 이후 삼성전자는 ‘친환경 설비·기술’ 투자로 방향성을 구체화했다. 특히 공정 가스 저감에 집중하고 있다. 공정 가스는 불소 화합물 등 대표적인 탄소 배출 요소다. 반도체 식각, 증착 등 공정에 쓰인다. 삼성전자는 2030년까지 공정 가스 처리 효율을 개선할 기술을 개발, 이를 적용한 탄소 배출 저감 시설을 주요 공정 라인에 확충할 계획이다. 이미 일부 성과도 냈다. 삼성전자는 공정 가스 대용량 통합처리 시설(RCS)을 개발해 사용 중인데, 낮은 온도에서 공정 가스 처리가 가능해 연료 사용을 절감할 수 있고 대기 오염 물질 발생도 적은 게 특징이다. 삼성전자는 친환경 기술 개발과 설비 투자에 2030년까지 7조원가량을 투입할 계획이다.

SK하이닉스는 삼성전자보다 앞서 탄소중립 계획을 내놓고 친환경 기술과 설비 투자에 집중하고 있다. 특히 지구온난화지수(GWP)가 낮은 대체 가스 개발에 힘쓰고 있다. 지난해 1월 만들어진 공정 가스 사용 저감 전담반(TF)이 이를 이끌고 있다. 그럼에도 지난해 공정 가스 절대 배출량은 전년 대비 5.2% 상승했다. 목표치 미달이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공정 가스 절대 배출량 4% 감축을 목표로 제시했다. SK하이닉스 측은 “2022년 연초 경영 계획 대비 추가 생산으로 인해 다소 상승했다”고 설명했다. SK하이닉스는 2030년까지 공정 가스 배출량을 40% 감축할 방침이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22호 (2023.08.16~2023.08.22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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