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투 더 2009... 이젠 대한민국 역주행만 남았다
[신상호 기자]
▲ 지난 7월 28일 이동관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후보자가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브리핑룸에서 인사말을 하기 위해 잠시 대기하고 있다. |
ⓒ 연합뉴스 |
2023년, 언론의 시계는 이명박 정부 시절로 되돌아갔다. KBS 수신료 분리징수, 공영방송 이사 해임 등 윤석열 정부가 벌이는 일련의 언론장악 계획은 이명박 정부 시절 작성된 국정원 문건과 똑같은 형태로 실행되고 있다. 이명박 정부 당시 미수에 그쳤던 방송사 민영화 계획은 현재 YTN 등에 대해 진행 중이다.
<오마이뉴스>는 이명박 정부 당시 국정원이 청와대 등의 요청을 받아 작성한 '언론장악 문건'들을 검토했다. 해당 언론장악 문건에 나온 기본 방향과 세부적인 추진 계획은 현 윤석열 정부에서 진행되는 행태와 놀랍도록 닮아 있었다. 이같은 언론장악을 진두지휘했다고 여겨지는 인물이 바로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다.
1. 방문진 이사진 교체
: 방문진 이사에 방송 정상화를 위한 확고한 신념과 전투력 있는 인사를 배치 <MBC 편파방송 보도실태 및 대책, 2009년 6월 3일>
지난 2009~2010년, 이명박 정부 당시 국정원은 MBC를 길들이기 위한 보고 문건을 수차례 작성했다. 당시 국정원 문건에는 이명박 정권이 일관되게 추진한 '공영방송 이사 교체'가 적시돼있다.
지난 2009년 7월 당시 새롭게 임명된 MBC 대주주인 방문진(방송문화진흥위원회) 이사들은 김우룡 한양대 교수, 최홍재 공정언론시민연대 사무처장, 김광동 나라정책연구원장 등 뉴라이트 계열 인사들이었다.
▲ 이명박 정부 당시 국정원이 작성한 언론 장악 관련 문서 중에서 MBC 광고 줄이기와 방문진 이사 교체를 언급한 대목(고민정 의원실 제공). |
ⓒ 고민정 의원실 |
이같은 '공영방송 이사 해임'은 2023년 윤석열 정부에서도 똑같이 벌어지고 있다. 지금까지 KBS 이사 2명, EBS 이사 1명이 해임됐고, 권태선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 해임도 속전속결로 추진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5일 방송통신위원회가 낸 남영진 KBS 이사장 해임건의안을 재가했다. 방통위는 지난 14일 "KBS 경영에 대한 관리·감독 의무를 해태했다"며 남 이사장 해임건의안을 의결했는데, 바로 다음날 대통령의 재가가 이뤄졌다. 방송통신위원회는 권태선 방문진 이사장과 김기중 방문진 이사의 해임도 밀어붙이고 있다. 지난 14일에는 권 이사장에 대한 해임 청문회도 열렸다.
TV조선 재승인 심사와 관련해 기소됐다는 명목으로 지난달 윤석년 KBS 이사, 이번 달엔 정미정 EBS 이사가 각각 해임됐다. 권태선 방문진 이사장은 지난 9일 기자회견에서 "방문진 이사장이 해임되고, KBS 이사장이 해임되는 것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MBC와 KBS 경영진을 교체하고 정권의 나팔수로 만드는 데 최종 목표가 있는 게 아니라 공영방송 체제를 무너뜨리려는 의도가 있다"고 주장했다.
2. MBC 광고압박 노력 배가
: 방송광고공사, 언론재단 등과 협조 <MBC 편파방송, 보도실태 및 대책, 2009년 6월 3일>
국정원 문건에는 이명박 정부가 광고를 줄여 MBC를 재정적으로 압박하려 했다는 내용도 등장한다. 국정원이 2009년 작성한 'MBC 바로세우기' 문건에는 '효과가 큰 MBC 프로그램 광고 줄이기 지속'이라는 문구가 등장한다. 또 국정원은 'MBC 구성원들은 광고감소, 제작비 삭감 프로그램 경쟁력 약화 봉급 축소를 가장 염려'라면서 광고 압박의 구체적인 효과까지 적었다.
비판 언론의 밥줄을 틀어쥐는 언론장악 방식은 윤석열 정부에서도 똑같이 시도되고 있다. MBC를 비롯해 KBS, EBS까지 시행령을 바꿔 재정 압박에 나섰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지난달 TV수신료 분리징수 시행령을 공포했다. 분리징수 시행으로 KBS는 막대한 재정 타격이 예상된다. KBS는 전체 예산의 30~40% 가량인 6000억원을 수신료로 충당하고 있다. 분리징수가 본격화되면 수신료 수입은 1000억원대로 주저앉을 것으로 KBS는 예측하고 있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노골적으로 MBC에 대한 광고 압박을 시도하기도 했다.
대통령 비속어 보도 공방이 한창이던 지난해 11월 당시 국민의힘 김상훈 비대위원은 기업들에 'MBC 광고 중단'을 촉구했다. 김 위원은 "국민 기업인 삼성과 여러 기업들이 MBC에 광고로 동력을 제공하는 것을 즉각 중단해야 하며 이는 선택이 아닌 의무라고 역설한다"고 했다. MBC를 비롯 한국기자협회 등 언론현업단체들이 성명을 내면서 해당 발언을 비판했지만, 국민의힘 측은 반응하지 않았다.
3. 좌편향 진행자 퇴출 및 고정 출연자 교체 권고
: <라디오 시사프로 편파방송 실태 고려사항, 2009년 12월 18일>
▲ 이명박 정부 당시 국정원이 작성한 언론 장악 관련 문서의 일부. 소위 '문제 진행자'들의 교체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다(고민정 의원실 제공). |
ⓒ 고민정 의원실 |
'라디오 프로그램 출연자의 좌편향이 문제'라는 14년 전 국정원 문건은 지금도 유효하다. 지난 5월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KBS 1라디오 5개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패널들이 정치적으로 편향됐다며 공세를 폈다. 그는 보수단체인 대한민국언론인총연합회가 발표한 '윤석열 대통령 미국 순방 기간 KBS 1라디오 출연진 분석 현황'을 근거로, 출연진 중 좌파 인사는 80명, 우파 인사는 11명이라고 주장했다.
4. '一공영 多민영' 체제 전환
: MBC 경영진에서 먼저 민영화 필요성을 제기한 후, 방문진 주도로 소유구조 개편을 위한 공청회 개최 등 공론화 추진, 多공영一민영 체제를 '一공영 多민영' 체제로 전환, 시장 원리 확립<MBC 정상화 전략 및 추진방안, 2010년 3월 2일>
▲ 이명박 정부 당시 국정원이 작성한 언론 장악 관련 문서 중 일부. '일 공영 다 민영' 체제를 언급하고 있다(고민정 의원실 제공). |
ⓒ 고민정 의원실 |
그런데 2023년 현재 방송 민영화 계획은 실행에 있다. YTN이 대표적이다. 현재 YTN은 공기업들이 소유한 준공영 체제이다. 그런데 대주주인 한전KDN과 한국마사회 등은 지난해 YTN 지분 매각을 결정했고, YTN 지분 매각 작업이 진행 중이다. 고한석 YTN 노조위원장은 "YTN을 자본에 넘겨 정권의 관리대상·장악대상으로 만들려는 언론장악 외주화 시도"라고 규정했다.
이같은 반발에도 YTN 지분 매각은 올해 안에 완료될 전망이다. 자본력을 갖춘 대기업은 물론 보수 언론사들이 지분 인수 의향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방송사 민영화 작업은 여기서 그치지 않을 전망이다. 국정원 문건에서와 같이 현 정부 여당도 '一공영 多민영(하나의 공영방송, 다수의 민영방송)' 체제를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성중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해 11월 SBS 라디오 인터뷰에서 "우리도 궁극적으로는 1공영, 多민영이 돼야 된다"고 하는 등 집권여당은 이미 '一공영 多민영' 체제 구축을 위한 군불 떼기에 나서고 있다.
때문에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가 임명되면 당장 MBC, KBS 2TV 등이 민영화 작업에 들어가지 않겠느냐는 우려도 나온다.
고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언론계 쇄신, 편파방송 근절, 공정방송 정착, 좌편향 출연자 조기 퇴출 등 방송장악을 위한 미명 아래 국정원이 언론을 사찰해 언론장악 시나리오가 담긴 문건을 작성하도록 지시하고 보고받은 당사자는 국정원 문건에 따르면 이동관 홍보수석"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정부에 비판적 보도, 불편한 보도를 하면 공산당 언론으로 보는 이동관 후보자의 '편 가르기 언론관'만으로도 방송통신위원장 자격이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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