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보영, ‘콘크리트 유토피아’라는 위기 그리고 극복 [쿠키인터뷰]
벽에 부딪히는 느낌. 배우 박보영은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감독 엄태화) 현장을 이렇게 회상했다. 오랜만에 만난 슬럼프에 막막함을 느껴서다. 그가 말하는 벽은 다름 아닌 선배 배우 이병헌. 영탁 역을 연기하는 그를 보며 박보영은 종종 생각에 잠겼단다. “선배님과 같은 작품에 출연하는 게 소원이었는데 막상 마주하니 무력감만 느껴지더라고요.” 최근 서울 소격동 한 카페에서 만난 박보영이 말했다. 명랑하면서도 진지하게 말하는 얼굴은 여전히 앳됐다. 고민에 관해 이야기하던 그는 이내 후련하다는 듯 웃었다. “그래도 다행히 늦지 않게 극복할 수 있었어요.”
박보영은 ‘콘크리트 유토피아’에서 명화 역을 맡았다. 명화는 이타적인 인물이다. 생존을 위해 이기심을 드러내는 여타 주민들과 달리 모두가 살 수 있는 방향을 꿈꾼다. 때문에 자신을 지키려는 남편 민성(박서준)과도 종종 부딪힌다. 평범하던 민성이 생존을 위해 차츰 변해가는 것과 달리 명화는 신념을 꾸준히 지킨다. 박보영은 시나리오를 읽으며 세 차례나 멈춰 설 정도로 그에게 ‘과몰입’했다고 한다.
“시나리오를 읽을 때마다 스스로에게 여러 질문을 던졌어요. ‘이런 상황에서 명화처럼 행동할 수 있을까?’ ‘변화하는 민성의 모습이 맞는 걸까?’ ‘영탁은 대체 어떤 사람이지?’ 물음표가 떠오를 때마다 시나리오를 덮고 생각에 잠기곤 했어요. 그러다 명화의 마지막 대사를 보는 순간 느꼈죠. 이 작품은 꼭 해야만 한다고요.”
애착이 유독 큰 작품이다. 비단 5년 만에 선보이는 영화여서는 아니다. 박보영은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만듦새와 완성도에 큰 자부심을 느낀다고 했다. “리뷰를 확인하는 게 새로운 취미가 됐을 정도”란다. “필모그래피에 이 작품이 남는다는 게 기쁘다”고 말을 잇던 그는 “오랜만에 인사드리는 작품이 ‘콘크리트 유토피아’여서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럽다”며 웃었다.
현장은 도전의 연속이었다. 이병헌이 연기하는 모습을 볼 때면 놀라움이 차올랐다. “왜 부딪히기만 하고 정답을 찾는 게 어려울까 싶었어요. 선배님은 늘 정답을 잘 찾는데 저는 찾아야 할 답이 많게만 느껴졌거든요. 모든 게 답 같아서 오히려 답을 못 찾았다고 할까요?” 울적한 마음을 고쳐먹은 건 또 다른 선배 배우의 인터뷰 덕이다. “김혜수 선배님이 과거 인터뷰에서 그러시더라고요. 작품을 선택하고 촬영하기 전까지 ‘내가 왜 이걸 한다고 해서 이런 고민을 할까’ 생각하신대요. 선배님들도 이러는데 제가 고민하는 건 당연하구나 싶었어요.” 특유의 낙천적인 생각도 그를 수렁에서 건져냈다. ”아직 갈 길이 머니까 열심히 하면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마음이 들자 힘이 절로 났단다.
고민 끝에 완성한 명화의 순간은 스크린에 다양하게 담겼다. 가장 노력을 기울인 건 역시나 마지막 장면. 시나리오를 봤을 때부터 마음에 콕 남았다. 현장에서도 대사를 다양하게 바꿔 연기했을 정도로 공 들였다. 그는 “정답인지는 모르겠지만 최선을 다했다”고 돌아봤다. 극 후반 명화의 큰 눈에 눈물이 차오르는 장면 역시 관객 뇌리에 깊게 남았다. “떨려서 스크린을 못 보겠더라”며 혀를 내두르던 그는 “그 대목에서 주변 분들이 눈물을 닦으셔서 다행이구나 싶었다”며 미소 지었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배우 박보영의 필모그래피에서 유독 도드라지는 작품이다. 그를 대표하는 밝고 통통 튀는 이미지와 달라서다. 박보영은 “모두가 내게 바라는 이미지를 변주해 새로이 스며들고 싶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보영에게 경험은 성장의 발판이다. “연륜이 쌓일수록 설렘이 커진다”고 말하는 이유다. 그는 “경험이 많아지면 표현할 수 있는 폭 역시 넓어진다”면서 “지금보다 어렸다면 명화를 연기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스스로를 “가만히 있기보다는 부딪히고 깨지며 딛고 서는 사람”이라고 했다. 겁 많은 그를 움직이게 하는 건 연기를 향한 열망이다. 그는 “설령 내가 선택한 게 답이 아닐지라도 문은 두드려볼 것”이라며 “그렇게 경험을 쌓아가고 싶다”고 눈을 빛냈다.
“일할 때마다 늘 자아가 충돌해요. 무서워서 선택을 차마 못 하겠다가도 ‘그래도 해봐야지’라며 의욕을 다지곤 하죠. 깨지고 박살 나서 슬퍼도 일단은 해보려 해요. 결과가 안 좋거나 현장에서 좌절한 순간이 많아요. 하지만 그러면서 생각보다 괜찮은 자신을 마주하기도 하거든요. 그래서 저는 언제나 도전하고 싶어요. 제가 ‘콘크리트 유토피아’라는 새 도전을 해냈듯, 관객분들도 저희 작품에 기꺼이 도전해서 여러 감상을 느끼시길 바랍니다. 나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생각해 본다면 성공일 거예요.”
김예슬 기자 yeye@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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