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어로 시작해 국어 교사로 퇴임합니다, 왜냐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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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만 기자]
내가 신청했던 명예퇴직이 오는 8월 31일 자로 확정되었다. 도교육청에서 보낸 공문으로 확인했다. '교육공무원법 제 몇 조 몇 항에 의거 중등학교 교감에 임함. 원에 의해 그 직을 면함.'이라는 글자가 또렷했다.
▲ 학생들이 퇴직 때 그려준 캐리커처와 써 준 글 |
ⓒ 이준만 |
약 2주 뒤로 명예퇴직이 확정되고 나니, 그동안의 교직생활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프랑스어 교사로 첫발 내디뎠지만
나는 1989년 9월에 충북 충주 근처 면 소재지 고등학교에서 프랑스어 교사로 첫발을 내디뎠다. 남녀 공학, 한 학년 3학급, 총 9학급의 작은 학교였다. 학생들은 공부에는 관심이 없었지만 아주 순수했다. 당시 나도 신규 교사답게 열정이 넘쳤으나 아이들을 제대로 가르쳤는지 알 수는 없다. 그 누구도 어떻게 학생들을 지도하고 상담하는지 이야기해 주지 않았다. 고등학교 때의 기억을 더듬으며, 고등학교 다닐 때 수업받았던 방식을 흉내 내어 수업했던 것 같다.
당시는 충주 시내에서 자동차로 20분 정도 걸리는 거리에 있는 학교여서, 충주 시내에서 출퇴근하는 대부분 교사는 충주 시내 학교로 옮겨 가고 싶어 했다. 대개 1~2년 근무하고 옮겨 갔다. 나는 그 학교에서 5년 반을 근무했다. 프랑스어 교사는 각 학교에 한두 명만 있으면 되기 때문에 시내 학교에 자리가 쉽게 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5년 반을 근무하고 나서야 시내 학교로 옮겨 갈 수 있었다.
그 학교는 충주 시내 3개의 여자 일반계 고등학교 중, 가장 공부를 잘한다고 평가받는 학교였다. 1995년 3월, 학교를 옮긴 뒤 첫 수업 시간, 나는 정말 깜짝 놀랐다. 학생들이 어쩌면 그렇게 수업에 집중할 수 있단 말인가!
80여개의 초롱초롱한 눈동자가 수업 시간 내내 나를 따라다녔다. 학생들이 그렇게 열심이니, 나도 열심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생겼다. 그 무렵 고등학교 외국어 교육에서 '회화' 능력을 중시하기 시작했다. 나는 프랑스어 회화를 가르칠 능력이 없었다. 대학에서 프랑스어 회화를 배우기는 했으나 그 정도를 가지고 프랑스어 회화를 능통하게 할 수가 없었다. 휴직하고 프랑스로 유학을 갔다 와야 하나, 고민도 했지만,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했다. 생각 끝에 가르치는 과목을 바꾸기로 했다. 국어 과목을 가르치면 될 듯했다. 이미 완벽한 회화 실력을 갖추고 있지 않은가!
그러려면 국어 교사 자격증을 따야만 했다. 방법을 알아보니, 대학 국어국문학과를 나와 대학원에서 국어 교육을 전공하면 국어 교사 자격증을 딸 수 있었다. 망설이지 않고 방송통신대학 국어국문학과에 편입했다. 그때가 1996년 3월이었다. 방송통신대학을 졸업하고 1998년 3월에 충주 소재 대학의 대학원에 국어교육 전공으로 입학했다. 대학원에서 5학기를 공부하고 2000년 8월에 졸업하여 국어교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프랑스어 교사의 자리가 급격히 줄어드는 시점이었다. 도 교육청에서 프랑스어 교사 중, 다른 과목으로 전과하고 싶은 사람은 신청하라는 공문을 보내왔다. 기가 막힌 타이밍이었다. 얼른 신청서를 보냈더니, 국어 교사로 전과를 허용한다는 공문이 왔다. 그래서 2001년 3월부터 국어 교사가 되었다.
프랑스어 교사에서 국어 교사가 되고 보니, 모든 것이 새로웠다. 국어 수업은 완전히 다른 영역이었다. 어떻게 하라고 가르쳐주는 사람은 역시 없었다. 혼자 좌충우돌하며 배워야 했다. 처음에는 정말 엉망진창이었다. 수업 중,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나도 몰랐다. 참고서의 자료를 복사해서 나눠주고 그 자료를 그대로 줄줄 읽어주었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어 수업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공부해야만 했다. 동료나 선배 교사들의 수업을 참고할 수 있으면 좋았을 텐데, 그때는 교사들끼리 수업을 보여주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물론 지금도 교사들끼리 그렇게 수업을 서로서로 잘 보여주지는 않는다. 그런 학교가 있다는 소리를 듣기는 했지만, 최소한 내가 근무한 학교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인터넷 강사들의 강의를 들을 수밖에 없었다. 그 당시 강사라고 불리는 세 사람의 강의를 완강하고 나니, 어느 정도 감이 잡혔다. 시, 소설과 같은 문학 수업은 어떻게 하고, 비문학 수업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대강을 잡을 수 있었다. 이제 남은 일은 내가 가르칠 구체적 단원에 적용하는 것이었다.
수업 계획을 치열하게, 꼼꼼하게 짜고 시뮬레이션을 여러 번 한 다음, 수업에 임했다. 어느 타이밍에 어떤 농담을 할지까지 미리 다 수업 계획에 넣었다. 학생들이 점차 내 수업을 좋아하기 시작했다. 대부분 학생이 문법 수업을 싫어하는데, 어느 날 어떤 학생이 문법 수업도 나와 함께하면 재미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다. 고생한 보람이 있었다.
그렇게 교사가 중심이 되어 이끌어가는 강의식 수업을 신바람 나게 하던 2015년 어느 수업 시간. 고등학교 3학년을 담당하여 EBS 수능 특강 문제집을 풀어 주는 수업이었다. 문득, 30여 명의 학생 중 내 말에 귀 기울이고 있는 학생은 반의반도 안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반은 졸고 있었고, 몇몇은 다른 문제집을 풀고 있었다.
수업을 재미있게 바꾸기 위한 노력
내가 이렇게 열심히 또 재미있게 수업하는데 왜 학생들은 내 수업을 듣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그때 했다. 여러 방면으로 원인을 분석해 보니, 교사 주도의 강의식 수업 방식이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한계였다. 수업 시간에 재미있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그래서 새로운 수업 방식을 모색해 보았다. 이미 다양한 학생 중심의 수업 방식이 있었다. 그중, 내가 가장 잘할 수 있을 듯한 방식은 하브루타 수업이었다.
하브루타 수업에 관한 책을 여러 권 섭렵한 다음, 2016년부터 조금씩 하브루타 수업을 하기 시작하다가 1학년을 담당하게 된 2018년에 본격적으로 하브루타 수업을 했다. 학생들이 지문을 읽고 질문을 만들고 대답하고 토론하며 생각을 주고받는 배움 중심 수업이 하브루타 수업이다(관련 기사: "고교서 토론수업, 신기했어요"... 학생 글에서 희망을 봤다 https://omn.kr/24tk5).
그때부터 지금까지 6년 동안 하브루타 수업을 했다. 하브루타 수업을 하면서 학생도 나도 수업하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수업 시간이 기다려졌다. 나는 이게 현시대에 가장 적합한 수업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학생들에게 스스로 질문을 만드는 힘을 길러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하브루타 수업을 하면서 교직 생활을 마무리할 수 있어 더없이 행복하다.
▲ 지난달 26일 서울 서초구 S초등학교 곳곳에 담임교사 A씨를 추모하는 메시지와 국화가 놓여있다. |
ⓒ 연합뉴스 |
내가 퇴직하는 마당에 교직 사회에서 흉흉한 이야기를 들려온다. 가슴이 아리고 아프다. 교사들이 학교에서 숨지고, 칼에 찔렸다고 한다. 교권이 추락해도, 추락해도 어찌 그럴 수 있단 말인가.
생각해보자. 교육이 무너진 사회에 미래가 있을 수는 없다. 교육을 다시 일으켜 세우려면 우리 사회 모두가 발 벗고 나서야 한다. 그 시초는 서로에 대한 존중에서 시작해야 한다. 교사와 학생과 학부모가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을 가진다면 지금 교직 사회에서 나타나고 있는 난맥상들을 아주 많이 해결할 수 있을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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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기자의 브런치 스토리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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