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기술 이전 돕다 직접 창업…대형 제약사들 잇단 제휴
혁신창업의 길 54. 피노바이오 정두영 대표
피노바이오는 정부 출연연구소 창업 기업으로선 이단아 같은 존재다. 연구자 본인이 연구·개발(R&D)해오던 것을 가지고 나와 창업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정두영(45) 대표는 연구자가 아니라 기술사업화 전문가다. 화학연구원에서 5년간 신약 후보물질 사업화 업무를 담당해오다 2017년 직접 창업에 나섰다. 올해로 창업 7년 차.피노바이오는 전문성에 대한 의구심에도 불구하고 투자사들로부터 기술력도 인정받고, 상장을 준비할 정도로 급성장하고 있다. 창업 이듬해인 2018년 12월 108억원 규모의 시리즈 A 투자를 유치했다. 2019년 10월엔 100억원 규모의 시리즈 B 투자를, 2020년 11월엔 200억원 규모의 시리즈 C 투자를 끌어냈다. 올 4월엔 코스닥 상장을 위한 126억원 규모의 프리 IPO(상장 전 지분투자) 투자 유치까지 마무리했다.
전문 투자사뿐 아니라 유력 바이오 제약기업들도 앞다퉈 피노바이오와 손을 잡고 있다. 2021년엔 동아쏘시오그룹 계열 코스닥 상장 제약사 에스티팜으로부터 15억원 규모의 전략적 투자를 유치했다. 지난해 10월엔 국내 항체 전문 대형 제약사인 셀트리온으로부터 20억원 규모의 전략적 투자유치까지 받아냈다. 총 누적 투자금은 640억원에 이른다. 코로나19 이후 꽁꽁 얼어붙은 투자 시장에서 얻어낸 성과다. 피노바이오는 이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해 12월 서울대에서 열린 ‘혁신창업 대한민국 국제심포지엄’에서 혁신창업대상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 이사장상을 받았다. 지난 1일 경기도 수원 광교에 둥지를 튼 피노바이오를 찾았다. 경기도에서 세운 광교비즈니스센터의 8층을 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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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세대 ADC 플랫폼 기술 보유해
Q : 피노바이오는 어떤 기업인가.
A : 차세대 ‘항체-약물 접합체’(ADCㆍAntibody-Drug Conjugate) 플랫폼과 표적 항암제, 안과 질환 치료제 등을 개발하는 회사다. 회사의 사업 모델은 크게 두 가지다. 다른 회사들이 신약을 잘 개발할 수 있게 도움을 주는 플랫폼 비즈니스와 직접 신약을 만들고 판매하는 비즈니스다. 2017년 한국화학연구원의 연구원 창업 기업으로 설립됐다. ADC는 항체에 항암 약물을 붙여 특정 암세포만 공격하도록 만드는 일종의 표적 항암 물질이다. 정상 세포까지 공격하는 1세대 세포독성 항암제와 달리 암세포만 효율적으로 제거할 수 있다.
Q : 대표적 경쟁력은 뭔가.
A : 독자적으로 개발한 차세대 ADC 플랫폼 ‘피노-ADC’를 꼽을 수 있다. 다른 제약사들이 ADC를 잘 만들 수 있게 하는 기술이다. 독성이 강해 정상 세포 일부에도 해를 입히는 기존 ADC 약물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약물과 링커(linker)를 사용했다. 이 외에도 65세 이상 혈액암 환자를 위한 표적 항암제 후보물질 ‘NTX-301’과 시신경 보호 효능을 가진 녹내장 점안 치료제 후보물질 ‘NTX-101’ 도 있다. NTX-301은 현재 미국 임상 1/2a상 단계를, NTX-101은 국내 임상 1상을 마무리하고 임상 2상을 디자인 중이다.
A : 기술사업화 업무를 하다 보니 연구소와 대학들이 연구·개발한 신약 후보물질들 중 기업이 개발하기에는 단계가 아주 낮고, 그렇다고 그냥 두기엔 아까운 게 많이 보였다.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에 후보물질들을 받아서 한 단계 높은 저분자 화합 후보물질로 만들어 기술을 이전하면 10~20배의 이익을 남길 수 있다는 판단이 섰다.
피노바이오의 창업 사례를 분석해보면 한국 정부 출연연구소가 안고 있는 ‘R&D패러독스’와 ‘정부 연구예산 낭비’ 문제까지 짚어볼 수 있다. 중앙일보가 매달 주최하는 혁신창업 포럼(SNK포럼) 참가자들은 “하이테크 창업으로 시장을 흔들어보겠다는 창업은 전체의 10%에 불과하다”고 평가한다. 나머지 90%는 연구자 경력을 바탕으로, 퇴직 후 정부 창업 지원사업을 수주하고 인건비를 받아내는 데 그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런 스타트업들의 특징은 창업 이후 제대로 된 투자는 한 차례도 받지 않고 사업의 명맥만 이어간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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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허청 거쳐 화학연구원서 기술사업화 담당
Q : 지금은 사업모델도, 회사명도 바뀌었는데.
A : 창업 당시엔 좋은 신약 후보 물질을 발굴해 기존 제약사로 넘기는 과정에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비즈니스 모델로 시작했다. 하지만, 실제 창업해보니 이런 사업 방식엔 어려움이 많았다. 정말 좋은 후보물질이 있으면 교수들이 직접 창업하지, 우리에게 주지 않는다. 또 이런 식으로 일하면 후보물질마다 전문가 풀(pool)이 필요하고 비용도 많이 든다는 점도 문제였다. 우리가 창업한 이후 여기저기서 유사한 기업들이 많이 생겨나면서 이 분야가 레드오션으로 변한 것도 변신의 이유였다. 마침 우리가 개발한 후보물질의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해 ADC 연구를 하고 있었는데, 이게 신규 주력 사업모델이 됐다. 앞으로도 신약이 완성되기 전까진 ADC 플랫폼이 회사의 주 매출이 될 거다. 회사명이 바뀐 건 창업 이후 유사한 이름의 바이오테크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Q : ADC 플랫폼이나 신약 개발은 전문성이 필요한 분야 아닌가.
A : 전문성이 없는 게 아니다. 개인적으로 KAIST에서 화학으로 학·석·박사를 마쳤다. 유기화학이 전공이다. 이후 삼성전자 반도체 쪽에서 일하다 특허청에 들어가 의약화학 분야 심사를 했다. 이게 경력이 돼 2012년부터 화학연구원에 입사해 기술사업화를 담당해왔다. 이런 경험들이 창업은 물론 R&D에 큰 도움이 됐다. 지금은 전체 임직원 36명 중에서 R&D 인력이 29명을 차지할 정도로 연구에 집중투자하고 있다. 창업의 모태가 된 화학연구원과 함께 하는 R&D도 계속하고 있다.
"TLO 전문성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
Q : 에스티팜과 셀트리온 등 대기업 제약사들에게 기술 이전을 하고, 이들로부터 전략적 투자를 받은 점이 눈에 띈다.
A : 지난해 10월엔 전략적 투자와 별도로 셀트리온과 최대 15개 타깃의 ADC를 개발할 수 있는 플랫폼 기술이전 계약을 했다. 총 계약 금액은 12억 4000만 달러(약 1조5000억원) 규모다. 우선 계약금 10억원에, 각 타깃당 선급금과 개발 진척 상황에 따라 받는 마일스톤 9700만 달러도 약속했다. 로열티는 순매출액에 따라 합의된 비율로 별도로 받기로 했다. 지난해 6월엔 미국 뉴저지의 바이오텍 콘쥬게이트바이오와도 ADC 플랫폼 기술이전 계약을 했다. 올해 3월에는 안국약품, 4월에는 롯데바이오로직스와도 파트너십을 맺었다. 국내외에 ADC를 개발하는 곳이 없지 않지만, 이들 기업은 최신 기술을 적용한 우리 플랫폼을 선택했다.
피노바이오는 올해 안으로 코스닥에 상장한다는 목표를 세워두고 있다. 올 1월 기술특례 상장을 위한 기술성 평가를 통과한 데 이어 126억원 규모의 프리 IPO 투자 유치까지 마쳤다. 2021년 기술성 평가에서 한 차례 고배를 마신 후 두 번째 도전이다.
25개 과학기술 출연연의 기술사업화를 담당하는 한국과학기술지주의 최치호 대표는 “피노바이오 사례는 기술이전전담조직(TLO)에서 기술과 특허·시장을 잘 아는 전문가들이 창업한 이례적인 경우로, 공공기술 사업화의 새로운 경로를 열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며 “정부 R&D의 효율성을 높이는 데 TLO의 전문성이 중요하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 항체-약물 접합체(ADC)
「
암세포 표면의 특정 표적 항원에 결합하는 항체에 세포독성을 가지는 저분자 약물을 링커(linker)를 통해 결합한 약물을 말한다. 항체의 표적에 대한 선택성과 약물의 강력한 사멸 활성을 이용해 약물이 암세포에만 선택적으로 작용함으로써 치료 효과는 높이고, 부작용은 최소화할 수 있는 차세대 항암제 중 하나다.
」
■ 후보물질
「 신약으로 개발될 가능성이 큰 화합물. 통상 화합물 수준의 유효물질이 신약개발을 위한 후보물질로 발전하기까지는 5년 정도 걸린다.
」
■ 저분자화합물 의약품
「 화학적 합성으로 만들어지는 저분자량(대략 분자량 1000 이하)의 화합물 의약품으로, 상대적으로 합성이 쉽고 효과적인 약물 디자인이 가능하다고 알려져 있다. 아스피린, 타이레놀, 고혈압약 등 대부분의 정제 화학합성 의약품이 여기에 속한다.
」
최준호 과학ㆍ미래 전문기자, 논설위원 joo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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