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사정정국…이재명의 시지프스, '사명감 vs '뻔뻔함'
김기현 "권력형 토건비리 범죄 혐의자"
檢 압수수색에 野 "야당 탄압개시" 정국 급랭
"비틀어진 세상을 바로 펴는 것이 이번 생의 소명이라 믿습니다. 어떤 고난에도 굽힘 없이 소명을 다하겠습니다. 기꺼이 시지프스가 되겠습니다."
지난해 대선 이후 네 번째 검찰에 출석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7일 본인을 '시지프스'에 빗대며 이같이 말했다. 검찰이 성남FC 의혹, 위례·대장동 개발 비리 의혹 등에 이어 이번 백현동 개발 특혜 의혹에 이르기까지 반복적으로 출석 요구를 되풀이하는 것은 윤석열 정부의 실정과 무능함을 감추기 위함이라면서, 무한 반복의 형벌을 받게 된 시지프스의 운명을 걷게 될지라도 정치 검찰에 굴복하지는 않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여당은 "자신이 피해자인 것처럼 둔갑시키는 파렴치한 모습"이라면서 강하게 비판했다. 이날 검찰이 민주당 대선캠프 관계자들의 주거지를 압수수색하는 등 향후 사정 드라이브가 본격화될 것으로 보여 9월 정기국회를 앞두고 정국은 또다시 급랭할 전망이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이날 오후 국회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이 대표를 향해 "권력형 토건비리 범죄 혐의자가 조사받으러 검찰청에 출석하는데 마치 영웅 개선하는 듯한 모습"이라며 "검찰청 앞에서 희생, 제물, 탄압 운운하며 신파극을 연출하는 비리 혐의자의 모습에 상식을 가진 국민들은 아연실색할 지경"이라고 질타했다.
김 대표는 "이 사건의 실체는 민관이 합작한 대규모 토건 개발 비리 사건"이라며 "비리를 몰랐다면 무능한 지도자이고, 알았다면 단군 이래 최악의 권력형 토건 비리 주범이며 무기징역에 해당할 수 있는 중대행위"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10번이라도 소환조사를 받겠다는 그 당당함으로 오늘 받는 조사부터 성실히 임해주기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날 오전 이 대표는 서울중앙지검에 출석, 미리 준비한 입장문을 꺼내 "저를 희생 제물 삼아 윤 정권의 무능과 정치 실패를 덮으려는 것"이라며 이번 4차 소환의 의미를 평가했다.
이 대표는 "단 한 푼의 사익도 취한 적이 없다. 티끌만한 부정이라도 있었다면 십여년에 걸친 수백번의 압수수색과 권력의 탄압으로 이미 가루가 되어 사라졌을 것"이라면서 본인의 무죄를 강조했다. 그는 "소환조사, 열 번 아니라 백 번이라도 떳떳이 응하겠다"면서 '시지프스'를 언급했다.
시지프스는 그리스 신화에서 신들을 기만한 죄로 커다란 바위를 산꼭대기로 밀어 올리는 벌을 받은 인물이다. 바위를 정상에 올려놓으면 반대편으로 굴러 떨어져서 또다시 밀어 올려야하는 무한 반복의 형벌인데, 이 대표는 본인을 향한 계속되는 검찰 소환을 시지프스의 '부조리'한 상황에 빗댄 것으로 풀이된다.
시지프스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1970년 신민당 대선후보 경선 출마 회견에서 인용한 바 있다. 당시 그는 "민주주의 승리를 위한 사명감과 신념 갖고 절망 모르는 시지프스 신화처럼 싸우겠다"고 했는데, 이후 정치권에서 국민을 위한 '사명감'을 강조하는 뜻에서 인용되곤 했다. 이번 이 대표가 시지프스를 꺼낸 것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국민의힘은 즉각 "뻔뻔하다"는 평을 내놨다. 강민국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오늘 이 대표는 그리스 신화의 '시지프스'를 언급하며 마치 자신에 대한 수사가 부조리인 듯 항변했다"며 "이 대표는 알고 있는가. 시지프스는 애초에 욕심이 많았고 속이기를 좋아했다. 이 대표와 참으로 닮은 시지프스, 끝없는 죗값을 받았던 그 결말과 같을 것"이라고 했다.
지난 16일부터 8월 임시국회가 열렸지만, 이 대표를 향한 검찰 수사가 본격화되면서 국회는 입법 활동보다 정쟁에 빠질 공산이 커졌다. 9월 정기국회에 체포동의안이 넘어올 경우, 표결을 놓고 잡음이 나올 가능성도 높다.
이날 민주당 검찰독재정치탄압대책위원회는 오후 입장문을 내고 검찰이 대선캠프 관계자들을 압수수색한 것에 대해 "검찰의 야만적인 행태에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검찰은 이날 오전 이 대표 대선 당시 선거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을 압수수색했다. 이에 대책위는 "이 대표 소환에 발맞추어 전 방위적인 야당 탄압 공작을 개시했다"면서 "민주당 대선 캠프 관계자들의 주거지 압수수색에 더해 송영길 전 대표의 전직 비서의 주거지까지 해 뜨자마자 전쟁을 하듯 검사와 수사관들이 들이닥쳤다"고 했다. 이어 "해당 전직 비서는 2021년 전당대회 당시 20대로 의원실의 9급 막내 비서였다. 서무를 담당했을 막내 비서가 의원들 사이의 일을 얼마나 알 수 있다고 2년이 지난 지금 와서 거주지를 압수수색하나"라며 "민주당 소속 보좌진, 당직자는 모두 말단 실무진까지 언제든 압수수색을 할 수 있다는 신호"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천인공노할 야당 탄압도 언젠가 끝이 올 것"이라고 일침했다.
오주연 기자 moon170@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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