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만난 사람]약 먹고 다이어트 하면 반칙?…누구나 ‘소식’ 가능한 시대 올지도
매번 덜어내기보다 간헐적 단식이 현실적
부작용 줄인 다이어트 신약 등장
골고루만 먹으면 영향 충분
약대를 졸업하고 대학원에 다니던 1990년대 말 캐나다로 이민을 떠나 그곳에서 10년을 머물렀다. 새로움을 좋아하는 탓에 이국의 새로운 음식을 탐닉하다 보니 183㎝의 키에 70㎏대를 유지하던 몸무게는 어느새 100㎏에 육박했다. 한국인은 밥심으로 산다고 했던가. 외국 음식은 쉽게 허기졌고, 밖에서 무얼 먹든 집에 가서 꼭 밥으로 입가심을 해야 했다. 밥을 한 번 더 먹는 꼴이었다. 그건 만국 공통인지 현지인들은 중국 음식을 먹고 나면 쉽게 허기가 진다며 이를 ‘차이니즈 헝거’라고 불렀다. "어차피 틀렸다. 갈 때까지 가보자"는 생각으로 먹다 보니 무릎 관절에 무리가 가기 시작했다. 어쩔 수 없이 살을 빼야 했고, 그때부터 소식(小食)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2008년 귀국해서는 약국을 운영하면서 푸드라이터를 병행했으나 지금은 전업 푸드라이터로 활동하고 있다. 4년째 참여 중인 팟캐스트 ‘매불쇼’를 비롯해 다양한 매체에 출연하고, 음식 관련 글을 쓰고 있다. 무엇을 먹느냐보다 ‘어떻게’ 먹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책 ‘누구나 알지만 아무도 모르는 소식의 과학(동아시아)’의 저자 정재훈 약사(사진)에게 소식에 관해 물었다.
-소식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100㎏에서 75㎏까지 내려갔다가 그 뒤에 푸드라이터를 하면서 다시 85㎏까지 쪘다. 음식에 관한 글을 쓰면서 정말 많이 먹었다. 미슐랭 식당을 찾아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싱가포르, 일본, 홍콩 등 3년간 100곳 이상을 방문했다. 미슐랭에 소개될 정도의 고급 레스토랑이면 양과 질이 적당해 몸에 부담이 적을 것 같지만 실제로 먹어보면 그렇지 않다. 양도 많고 살도 많이 찐다. 그때부터 소식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런 관심이 이번 책 출간의 동기가 된 건가.
▲맞다. 사실 이전에도 음식 관련한 책을 냈지만, 소식에 집중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과거 출간했던 책에서 사람은 잡식성이기에 골고루 먹으면 되는 것이지, 착한 음식과 나쁜 음식이 따로 있는 건 아니라고 했던 말이 좋은 반응을 얻었다. 대개 특정 음식을 ‘슈퍼푸드’라고 하면서 이것만 먹으면 몸이 좋아진다고 하지 않나. ‘미역국 혹은 복숭아 한 달 먹으면 생기는 변화’ 같은. 그런 것들을 떠나 현대인에게 소식이 왜 필요한지 말하고 싶었다.
-소식의 기준이 있나.
▲권장 섭취량보다 25% 적게 먹는 거다. 근데 이게 쉬운 일이 아니다. 매번 음식을 25%만큼 덜어내기 번거롭고, 남기는 만큼 환경 비용도 크다. 그럴 땐 간헐적 단식이 도움이 된다. 환경비용을 줄이는 현실적인 방법이다. 저녁을 안 먹는 게 가장 좋지만 사회 생활하면서 사람도 만나야 하고, 회식도 해야 하니 쉽지가 않다. 그럴 땐 아침을 안 먹는 편이 낫다. 핵심은 12시간 이상 공복 상태를 유지하는 거다. 최소 그 정도는 돼야 몸이 절약모드에 들어간다.
-최근에도 10㎏가량 살을 뺀 것으로 안다. 어떤 식으로 진행했나.
▲간헐적 단식으로 저녁을 먹은 이후 다음 날 점심 전까지 공복을 유지했다. 다만 아침을 아예 굶지는 않고 간단히 먹었다. 그릭요거트 한 숟가락에 올리브유를 살짝 뿌려 커피와 함께 먹었다. 아침을 아예 굶는 것보다 이게 낫더라. 온종일 배가 덜 고프고 혈당도 정상치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당연히 다음 끼니에 폭식할 가능성도 적다. 개인화된 최적화 방법을 찾으려면 팔뚝에 붙이는 혈당계를 이용하면 좋다. 먹는 음식에 따라 혈당 변화가 실시간으로 체크된다. 요즘에는 좋은 도구가 너무 많아 직접 체험해보면 된다. 언론에서 ‘~하면 좋다’ ‘~ 먹으면 좋다’는 말에 휘둘릴 필요가 없다. 소식과 운동을 병행하면서 몸 상태를 수치화하면 된다. 운동내용은 스마트워치로 측정이 가능하다.
-삼시세끼를 지키지 않아도 건강에 문제가 없을까.
▲끼니라는 건 사회적 약속이다. 아침을 먹든 안 먹든 직장인 점심시간은 12시로 통일돼 있다. 신체 균형을 고려했다기보다 사회적 합의에 가깝다. 사실 세 끼 식사가 표준화된 건 서구는 산업혁명 이후, 우리나라는 근현대 들어서야 가능해졌다. 물론 연령대를 구분할 필요는 있다. 성장기 어린이의 경우 충분히 먹는 게 좋지만 성인은 꼭 그럴 필요가 없다. 아침 먹는 게 좋다는 주장도 청소년 대상으로는 어느 정도 연구 결과가 나온 것 같은데, 성인으로 갈수록 근거가 떨어진다. 꼭 하루 세 끼를 먹어야 한다기보다 규칙적으로 먹으면 된다. 일정한 패턴을 가지고 가면 된다. 식사가 소소한 즐거움이어야지, 매번 축제가 되어선 안 된다. 다만 지금은 빈부노소를 막론하고 예전 축제 때나 먹을 음식들을 거의 매일 먹고 있다.
-다이어트 약물은 항상 큰 관심을 받지만, 최근 특히 관심도가 높아지는 것 같다.
▲오젬픽, 위고비 등은 국내 승인이 이뤄졌지만 아직 시판되고 있지는 않다. 해외에서 인기가 엄청나다. 당뇨병 치료제이기도 한 오젬픽을 찾는 사람이 몰리면서 당뇨 환자가 쓸 약이 없다는 이야기도 나올 정도다. 부작용도 과거보다 크게 줄었다. 물론 약으로 살을 빼는 데 비판적인 목소리도 나온다. 과거 이른바 ‘나비약’이라고 불린 다이어트약의 부작용이 심하기도 했고, 약으로 살을 뺀다는 걸 부정행위로 여기는 분위기가 여전히 존재한다. 실제로 해외에서는 치열한 논쟁이 일어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 같은 곳에 다이어트약 관련 기사가 나오면 댓글이 수천 개씩 달린다. 누군가가 ‘약으로 살을 빼는 건 치팅(반칙)’이라고 비판하면 약을 먹어본 이들이 ‘당뇨, 과체중, 고혈압도 있는데 해보니 그것도 나아지더라. 써 보고나 하는 말이냐’ 등의 댓글이 엄청나게 달린다.
-실제로 부작용이 많이 줄었나.
▲기존 다이어트약은 체중 감량에는 도움이 되지만 건강에 악영향을 끼쳐서 단기간만 사용해야 했다. 하지만 최근 약들은 오히려 건강상 유익한 점이 많아 관점을 바꿔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사용해본 사람들은 포만감의 신호가 다르다고 말한다. 평소처럼 먹다가도 ‘이 정도면 됐다’는 느낌이 든다고 한다. 음식 욕구는 물론 음주 욕구도 줄어드는데, 이유는 다양하게 연구되고 있다. 지금까지 알려진 부작용은 약간의 메스꺼움이나 구토 증세뿐이어서, 더 강력한 약들이 개발되고 있다. 해외에서는 ‘게임체인저’라고 부를 정도다. 약값이 한 달에 100만~200만원 정도이긴 하지만, 5만원까지 낮출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실제로 터키에서는 10만원대에 거래되고 있다. 특허권이 만료돼 ‘바이오시밀러(복제약)’가 나오는 10년쯤 뒤에는 큰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수요가 엄청날 텐데, 국내 승인 이후 왜 시판이 늦어지고 있나.
▲현재 미국 내 공급도 수요를 못 따라가고 있다. 제약회사가 광고를 중단할 정도다. 제약사 입장에서는 서두를 필요가 없는 거다. 지난 4월 중국에서 승인됐고, 일본에서는 이미 사용 중이다. 조만간 국내에도 들어올 예정이다.
-먹는 낙을 이겨낸다는 건 강한 의지가 필요한 일이다. 의지력을 높이는 방법이 있을까.
▲많이 먹으면서 살을 빼는 건 불가능하다. 건강만을 위해 소식을 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이럴 땐 후대를 위해 필요한 일이라는 관점을 가질 필요가 있다. 과도한 식량 생산이 지구 환경에 미치는 악영향은 무시 못 할 수준이다. 나 한 사람을 떠나 환경을 위해서라도 소식이 중요하다. 지구 환경을 생각하는 다이어트 식단이 많이 나와 있다. 그에 따르면 육류 소비를 지금의 3분의 1 수준으로 줄여야 한다. 그럼 소의 사료가 되는 옥수수처럼 많은 부분이 덩달아 줄어들게 된다. 환경을 생각해서 텀블러를 사용하는 소비 습관이 퍼지고 있듯, 환경을 생각하는 소식 습관이 필요한 때이다.
-적게 먹을 때 영양불균형의 우려가 있을 듯한데. 영양제는 안 먹어도 되나.
▲영양제를 굳이 챙길 필요가 없다. 식사를 골고루 하면 문제가 없다.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을 균형 있게 섭취하고, 채소와 과일을 충분히 먹어주면 된다. 생리통이 심해 비타민B를 먹거나, 쥐가 많이 나서 마그네슘을 먹을 수는 있지만, 그에 따른 결핍 마케팅이 너무 심하다.
-그렇지만 영양소 균형 상태를 제대로 알고, 조절하기가 쉽지 않다. 피트니스 센터에서 살을 빼기 위한 식단 조절은 받을 수 있어도, 개인 건강 맞춤형 식단을 제공받을 수 있는 곳은 드물다.
▲식단을 통해 건강 상태를 들여다보는 게 매우 중요하다. 소식을 한다면 영양 전문 상담이 필요한데, 그걸 도와주는 게 임상영양사다. 피검사로 다 알 수 없기에 추가적으로 식단 분석이 필요하다. 가장 좋기로는 동네 병의원처럼 곳곳에 임상영양센터를 열어 상담받게 하는 거다. 다만 국내에는 아직 임상영양사가 독립적으로 활동하기 어려운 환경이다.
-보디프로필을 준비하고 있다고 들었다.
▲골고루 적당히 먹으면 건강을 지킬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 중에 은근히 건강을 안 챙기는 분들이 많더라. 근육질 몸매보다는 중년의 몸도 건강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 올해 안에 좋은 모습을 보여드릴 예정이다.
서믿음 기자 fait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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