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파 세모녀 사건 9주기... 비극은 현재진행형

배운기 2023. 8. 17.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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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정책을 위한 안나 카레니나 법칙이 필요한 때

[배운기 기자]

2023년은 송파 세모녀의 비극(2014. 2)이 일어난 지 9주기가 되는 해이다. 우리 사회는 그때로부터 진지한 반성을 하고 사회경제적 약자들을 위해 더 진보한 사회가 되었는가? 정치권에서 거미줄 같은 복지정책을 위해 법과 제도를 정비하고 사회적 약자인 수급자들을 위한 최저한도의 재원을 마련하였을까?

이에 대한 대답은 고민할 필요도 없이 단연코 "아니다"일 것이다.

늘 미봉책과 사후약방문이 습관화된 정치권과 정책 입안자들의 관성이 우리 사회를 더욱 병들게 하고 있다. 가장 나쁜 대책은 미봉책이고, 가장 나쁜 처방은 사후약방문이다. 그럼에 마치 전가의 보도처럼 쏟아지는 사후대책은 반짝 유행을 타고 거대한 망각의 강으로 사라진다. 새로운 비극이 반복되었을 때 우리는 그것을 비로소 떠올린다.

송파 세모녀 사건의 본질은 사회안전망의 총체적 난국을 보여줬다는 점이다. 복지정책과 사회정책의 전형적인 사각지대에 방치된 이들의 희생을 개인의 선택이라는 미명에 맡겼다는 점이다. 아마도 정부부처간의 유기적인 대응과 사각지대를 없애려는 정책적 노력이 있었다면 그런 비극은 방지되지 않았을까?

사회경제적 약자들이 방치되고 소외되었을 때 쌀 한가마니와 라면 한 박스로 해결할 수 있는가? 우리 법제도와 정책입안자들의 인식은 딱 여기에서 그친다. 아무리 무지갯빛 청사진을 가진 복지정책이라 할지라도 한계가정에 전달되지 못한다면 빛 좋은 개살구가 된다.

지금도 경제적 문제로 연유되는 일가족의 비극이 수시로 들린다. 어린 아이들과 엄마의 투신, 경제적 문제를 비관한 일가족이 숨진 채 발견됐다는...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될 소식들이다. 사회적 비극을 자산으로 소비하는 언론의 적극적(?)인 역할로 인해 우리 사회의 불안은 더 쉽게 고조된다.

지금은, 안나 카레니나 법칙이 필요한때

톨스토이는 〈안나 카레니나〉의 첫 구절에서 "모든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고, 불행한 가정은 제각기 나름으로 불행하다"라고 선언한다. 우리가 말하는 안나 카레니나 법칙의 탄생이다. <총균쇠>로 유명한 진화생물학자 재레드 다이아몬드(Jared Mason Diamond)는 안나 카레니나 법칙을 사회과학적으로 더 발전시켰다. 그 결론은 "성공은 모든 요소들이 충족되어야 하며 어느 한 가지라도 어긋나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라는 것이다.

잘 만들어진 사회(복지)정책은 안나 카레니나 법칙의 적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사회적 현상의 한 측면만 바라보거나 상황판단의 필요충분조건을 누락했을 경우 그 정책은 실패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정책실패의 위험성을 줄이기 위해 정부부처에는 수많은 상설(임시) TF팀과 위원회가 있다. 이들의 입체적인 노력과 다각도에 걸친 판단과 결정이 정책입안과 결과의 성공을 좌우한다.

송파 세모녀 사건과 유사 사건(수원 세모녀 사건 등)에서 보다시피 우리는 사회적 약자의 현실을 복합적 차원으로 보지 못했다. 정치권과 정부부처는 선제적이고 섬세한 상황판단과 정책 대응이 필요함에도 예산 부족과 전문성 결여, 인력 부족 문제로 늘 변명하며 복지 사각지대를 외면하고 있었다. 그러기에 우리사회의 비극은 계속 현재진행형일 수밖에 없다.

복지국가에서는 국가의 기초생활보장과 복지급여 등의 수급은 헌법이 보장하는 국민의 권리다. 그러함에도 이를 국가가 주는 특별한 혜택으로 보는 시각과 개인의 문제로 인식하는 사회적 정서 때문에 한계가정에서 국가기관에 선뜻 손을 내밀기 힘든 것이다.

현재 정부는 빅데이터를 활용하여 위기가구를 포착하고 복지 사각지대 발굴을 위해 각 위기정보의 숫자를 늘리고 있다. 기존의 정보 외에도 의료비, 수도가스요금 체납 등의 5종을 추가하고 금융 연체금액 범위는 1천만 원 이하에서 2천만 원 이하로 상향된다. 또한 실제 거주지와 주민등록상 주소지가 다른 경우에도 사실조사 등을 통해 위기가구 발굴에 활용할 수 있게 된다.

잘 만들어진 법제도는 느슨하게나마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다. 얼핏 보면 서로 관련성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막상 중요한 순간에는 딱 들어맞는 하나의 퍼즐이 된다. 부처이기주의와 큰 그림을 그릴 줄 모르는 정책관료들, 이들의 전문성을 활용하지 못하고 매몰시키는 정치권의 무능력으로 인해 법과 제도와 정책이 따로 놀거나 관련성을 갖지 못하고 예산만 낭비하는 경우가 더 이상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회생파산제도도 사회복지제도다

한계채무자 구제와 갱생을 위한 회생파산제도도 광범위한 사회복지제도의 일환이다. 채무를 탕감 받거나 능력 범위 내 일정 금액 변제를 통해 새로운 경제생활을 가능케 하는 것은 한 개인의 삶은 물론 사회 전체의 복지수준과도 연결되어 있다.

회생법원 2층은 늘 민원인들로 붐빈다. 계단 앞쪽의 의자에서 어느 노부부의 얘기가 들린다. 마치 부부싸움처럼 들리지만 조금 들어보니 상황을 객관화시키는 3인칭 화법을 사용하고 있다. 타박과 질책, 불평과 불만이 물 흐르듯 지나갔다.

"그니까, 왜 그때 잘 넣고 있는 적금을 깨고, 국민연금도 좀 많이 집어넣던지 하지. 뭔 놈의 생각이 그런데요? 갑자기 사업한다고 하는 친구한테 없는 돈 빌려주더니... 그러게 내가 뭐랬어요? 그 사람은 사기꾼 같다고. 진즉부터 상종하지 마라고 했소 안했소? 돈 되는 사업은 자기가 하믄 되지. 굳이 당신 같은 사람들한테까지 돌아올 복이 있겄나구요. 참 나...."

"글고 지금 우리 형편을 봐봐요. 애들도 먹고 살기 힘들어서 생활비 보태달라고 말도 못 꺼내고... 모처럼 손주 새끼들 보면 용돈도 주고 맛있는 치킨도 사주고 그래야 하는디... 할애비 할미란 사람들이 요렇게 법원 앞에 쪼그리고 앉아서 참 나...."

"그리고 우리 통장에 있는 돈이나 거덜 내면 되지. 왜 다른 친구들하고 형제들 지갑까지 보태서 거덜 내고 그런데요. 금방 몇 배로 불려준다고, 무신 드라마 주인공처럼 큰소리는 땅땅 치더니 요 꼴이 뭐다요. 참 나..."

"우리 형편에 파산인가 뭔가 해서 받아줘도 뭘로 먹고 산다요. 얼른 대법정인가 저짝으로 갑시다. 아까 젊은 공무원이 우리를 부를 수 있다고 기다리라고 했으니까... 후딱 일어서시쇼..."

두 분의 대화로 보이지만 잘 들어보면 일방이 일방에게 전달하는 모양새다. 말하는 할머니는 연신 부채질을 하고 있다. 할아버지는 눈빛을 마주치지 않은 채 복도에 오가는 사람들을 쳐다보고 있다. 그저 대답은 위아래 고갯짓으로만 했다. 느린 걸음으로 대법정 쪽으로 사라지는 노부부의 뒷모습에 작은 바람이 일었다. 그러니까 파산선고와 면책이 끝이 아닌 것이다. 회생법원에서의 절차는 갱생의 기회를 위한 준비일 뿐이지, 그 기회를 직접 주지는 못한다.

서울회생법원의 경우 60대 이후의 파산신청 비율은 보면, 2019년은 37.21%, 2020년은 39.11%, 2021년은 43.91%, 2022년은 48.08%이다. 이 통계를 보면 60세 이상의 채무자의 비율은 매년 증가하고 있고, 직업상실과 노후준비의 부족이 노년세대를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022년의 경우 50세 이상의 파산신청 채무자 비율은 78.91%(50세~59세가 30.83%)로 파산신청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고령화로 갈수록, 직업세계와 단절이 심화될수록 경제적 파탄은 고통스러운 현실이 된다. 이는 청년세대의 파산신청 원인과 별도로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50세 이상의 경제적 파탄원인은 실직이나 근로소득 감소, 사업실패나 사업 소득감소가 대부분이다.

회생파산제도의 한계채무자도 위기정보가 되어야 한다

회생파산제도를 통해 새로운 출발을 꿈꾸는 이들에게도 복지의 사각지대는 여전히 문제가 된다. 신용불량자는 물론 파산선고를 받고 면책 받더라도 금융권으로부터 대출거부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이들이 향하는 곳은 더 위험하고 더 낮은 곳이다.

「채무자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 제32조의 불이익 금지조항에도 불구하고 다수의 개별 법령에는 파산선고를 취업이나 영업 결격사유로 정하고 있다. 파산선고가 '경제적 신용의 전과'와 같은 낙인효과로 인해 사회생활의 불이익을 당하는 상황 또한 부지기수다. 각종 규제법률 때문에 먹고 살길이 막막한 이들에게 '왜 당신들의 사정은 그러하냐?'고 다시 묻는 경우도 허다하다. 상처받은 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아님에도.

결국 회생파산제도를 통한 한계채무자의 정보는 위기정보의 일종이 될 필요가 있다. 이를 기반으로 파산자에게도 새로운 출발의 기회와 가족의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여건을 마련해주어야 한다. 파산자에게 불이익만을 줄게 아니라 최저생계를 유지할 대책을 마련해줄 수 있는 복지(금융)정책이나 노동정책과 연계되어야 한다. 이러한 연결이 어려울까?

우리가 유명 호텔 한 끼 식사에 개인당 18만원을 쓴다는 기사에 왈가왈부 관심을 갖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만큼의 돈으로 일주일을 살아가는 어느 세 가족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는 것이다. 막연히 자본주의적 연민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공동체가 함께 살아가야할 이유를 떠올려 봐야 한다는 의미다.

우리 사회가 생산적 사고(思考)에 들이는 시간보다 경제적 소비에 소모하는 시간이 많아질 때 우리 사회의 사각지대는 늘어날 수밖에 없다. 사각지대에 둘러싸인 이들의 고통과 비명소리는 날로 커지지만, 이 또한 무심한 시간과 무관심 속에 쉽사리 잊힌다. 불행한 사건사고가 아니면 그들의 속사정은 결코 드러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소외와 궁핍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님에도 우리는 그렇게 타인들을 잊고 살아간다.

법과 제도가 입법취지나 그 자체의 목적만 쫓고 정작 가장 중요한 '사람'이 빠져있을 때 우리는 희망의 빛을 잃는다. 그 빛 속에는 나라와 사회와 가정의 미래가 포함되어 있다. 그럼에도 그 법과 제도의 외피만 빛나고 그 속에 살아가는 수많은 이들은 빚을 지고 스러져간다. 무심한 법치사회로 통칭되는 우리 공동체가 특히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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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회생법원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개인 브런치스토리에 중복 게재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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