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은수의 책으로 읽는 세계]아이도 학교도 망치는 부모들의 '과보호'
자신을 성숙한 존재로 만들어가
과보호로 큰 아이는 커서도 어른 되기 힘들어
완벽한 안전 욕심이 아이도 학교도 상처 받게 만들어
아이들은 약하고 무력한 존재다. 가정에서든, 학교에서든, 거리에서든 그들은 언어폭력이나 신체 폭력으로부터 해를 입지 않도록 보호받아야 마땅하다. 하지만 배려와 과보호는 다르다. 배려는 아이들이 시련을 견디면서 강해지도록 이끄나, 과보호는 아이들을 나날이 무력하게 만든다.
과보호는 일종의 ‘가스라이팅’이다. 아이들이 부모 손을 떠나거나 그 말을 거역하지 못하는 존재로 길들이는 짓이다. 이런 아이들은 나이 들어도 쉽게 어른이 되지 못한다. 앨리슨 고프닉 미국 버클리대 교수는 이야기했다. "아이들을 모든 가능할 법한 위험에서 보호하겠다고 방어막을 치면, 아이들은 전혀 위험하지 않은 상황에도 지레 겁부터 먹을 수 있고, 나아가 그 안에 갇혀 언젠가는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 할 성인의 기술들을 전혀 배우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 교육은 부모들의 과보호에 갇혀 있는 기분이다. 부모들은 흔히 아이들을 깨지기 쉬운 유리병처럼 취급하고, 교실을 잠재적 범죄가 만연한 어두운 뒷골목처럼 상상한다. 가르칠 실력도 없는 교사가 제대로 수업은 안 하면서, 언제든 마피아로 돌변해서 내 아이에게 언어적, 신체적 위해를 가하려 한다고 망상하는 것이다.
교사를 의심하고 학교를 불신하면 교육은 근본부터 흔들린다. 언행을 규제하는 지나치게 자잘한 규범들이 속속들이 도입돼 교사들의 자존감을 빼앗고, 고소와 고발, 감시와 처벌이 일상화하면서 학교 자율성을 무너뜨린다. 게다가 한국 사회 특유의 학부모 갑질 문화와 학교의 관료주의는 교사의 불행을 부추긴다. 학교에서 아이가 상처받는 작은 일이 벌어졌을 때, 수시로 가해지는 학부모의 폭언과 폭행, 교사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는 학교 당국의 태도는 수많은 교사를 우울에 빠뜨린다. 얼마 전 일어난 서이초 교사의 사망 사건은 이를 잘 보여준다.
학교가 위험하다는 건 ‘내 아이는 왕의 유전자를 타고났다’는 특권적 착각이 빚어낸 일종의 불안증에 불과하다. 학교는 폭력에 감염된 우범지대가 아니다. 물론 여러 사람이 어울려 지내야 하는 만큼 때로 힘들고 괴로운 일이 일어날 수 있고, 크고 작은 상처를 받는 일도 피할 수 없다. 하지만 학교는 사회 어느 곳보다 아이들이 편히 지낼 수 있는 안전지대다. 따스한 분위기 속에서 또래와 평생의 인간관계를 쌓는 우애의 장이고, 교사 도움을 받아 훗날 거친 세상에서 잘 살아가는 데 필요한 정신적, 육체적 역량을 기르는 궁극의 체육관이다. 내 아이가 다른 아이보다 더 애지중지 대접받고, 더 특별히 보호받으며, 더 나은 칭찬(성적)을 얻어야 한다는 특권적 착각만 없다면 말이다.
‘나쁜 교육(프시케의 숲)’에서 세계적 심리학자인 조너선 화이트와 교육 문제 전문 변호사인 그레그 루키아노프는 아이들을 유약하다고 여기면서 극단적으로 보호하려 드는 태도, 즉 부모들의 지극 정성(coddle)이 교육 체제를 무너뜨리고 아이들을 지혜롭고 강인하며 독립적인 성인으로 자라지 못하도록 방해한다고 비판한다. 부모들의 지극 정성이 빚어낸 사회적 강박이 ‘안전주의’다.
안전주의란 안전을 무조건 신봉하는 태도를 뜻한다. 안전주의에 사로잡히면, 아이들에게 다가서는 모든 위협을 강박적으로 제거하려 한다. 현실적 또는 도덕적 차원에서 함께 고려할 만한 다른 중요한 문제가 있어도, 그것들과 합리적 절충을 모색하지 않는다. 함께 살아가려면 내 기분이나 느낌보다 중요한 게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내 강박적 불안을 해소해 달라고 교사한테 소리치고 윽박지르는 것보다 학교 환경에서 실제 가능한 게 무엇이고, 전체 아이한테 도움이 되는 게 어떤 것인지 먼저 이성적으로 살펴야 한다. 숙고된 이성보다 순간의 분노가 앞서면 모든 공동체는 파괴된다.
무엇보다 아이들은 전혀 약한 존재가 아니다. 우리와 똑같이 아이들도 숱한 실패나 모욕이나 고통을 견디면서 기어이 자신을 성숙한 존재로 만들어간다. 적절한 신체적, 정신적 도전과 그로 인한 스트레스는 아이들을 망치기는커녕 오히려 아이들을 강하게 만드는 밑거름이 된다. 니체는 말했다. "죽지 않을 만큼 고된 일은 인간을 더 강하게 만든다." 죽을 정도로 큰 고통을 일부러 지울 필요는 당연히 없으나, 자잘한 스트레스 상황에 민감하게 반응하면 아이는 미숙해진다.
더욱이 인간은 꽃길만 걸을 수 없다. 고통이나 실패를 모조리 피하는 건 불가능하다. 우리는 아이들의 현재와 미래를 살펴서 위험을 모조리 제거하려 하지만, 아이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 불쑥 위기 상황에 빠지는 걸 누구도 막을 수 없다. 나심 탈레브 뉴욕대 교수는 이를 ‘블랙 스완’이라고 부른다. 복잡계에서는 아무리 열심히 관리해서 백조만 남기려 해도, 어느 날 갑자기 흑조가 나타나는 일을 막을 수 없다는 뜻이다. 따라서 모든 위험을 피하려 애쓰면 안 된다. 그보다는 평소 도전을 견디고 상처를 이기면서 배우고 적응하고 성장한 존재만이 강한 위기 상황에서도 깨지지 않는 단단함을 얻을 수 있다.
부모의 과잉보호는 어리석다. 아이들을 속상하게 만드는 자잘한 일들까지 부모가 나서서 치워 주면, 아이들은 단단해질 기회를 빼앗긴 채 아주 작은 시련에도 부서지기 쉬운 존재로 자라난다. "안전주의 속에서 자란 젊은이들은 단단한 마음을 기르는 데 필요한 경험을 박탈당하고, 그 때문에 더 유약하고 불안한 존재가 된다." 그들은 자신을 걸핏하면 희생자로 보고 한없이 남 탓을 하거나 자신은 무슨 일을 저질러도 잘못할 수 없는 불손한 존재로 자라게 된다.
아이들이 으레 겪을 수밖에 없는 슬픔과 고통을 모두 제거하려는 위생적 태도가 빚어낸 사회적 결과는 비극적이다. 저자들에 따르면 부모들의 불안증, 즉 학교는 안전하지 않고 교사는 믿을 수 없다고 느끼는 상태에서 아이들을 무조건 끼고돌려는 부모의 강박이 오늘날 사춘기 청소년의 좌절과 우울, 불안과 자살 등의 비율을 급격히 늘려놓았다. 저자들은 말한다. "누구보다 아이들을 잘 키우겠다고 간절히 바랐지만, 정작 아이들에게 단단함을 키워나갈 자유를 주지 않았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언제나 선의로 포장되는 법이다. 아무리 착한 의도도 나쁜 생각과 만나면 참혹한 결과를 낳을 뿐이다.
장은수 출판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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