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뇨병 치료하는 '이 호르몬', 치매 치료제로 사용된다고?

이슬비 기자 2023. 8. 17.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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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슐린 비강 스프레이는 알츠하이머 치매 진행 속도를 늦추고, 인지 기능이 정상인 사람의 인지기능도 높일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사진=클립아트코리아
지난 14일 영국 미디어 데일리 메일은 당뇨병 치료제인 인슐린 호르몬이 알츠하이머 증상을 완화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보도했다. 매우 뜬금없어 보이는 조합이지만, 사실 이는 약 20년 동안 연구돼 온 유망한 분야다. 최근 알츠하이머 치매 치료제 신약이 우후죽순 쏟아지고 있지만, 아직 비싼 가격과 해결되지 않은 부작용으로 신기루처럼 느껴지기만 한다. 그러나 인슐린 비강 스프레이는 두 가지 아쉬운 점 모두 해결한다. 이미 당뇨병 환자에게 사용되는 약의 소재라 가격이 저렴할 가능성이 크고, 부작용도 지금까지 나온 연구에선 매우 미미하다. 주삿바늘로 피부를 뚫을 필요 없이 코에 스프레이만 뿌리면 돼 용이성마저 좋다. 상용화를 위해 임상 연구를 하고 있다. 언제쯤 제품으로 만나볼 수 있을까?

◇뇌로 들어간 인슐린 호르몬, 알츠하이머 치매 진행 속도 낮춰
인슐린 비강 스프레이가 인지기능을 높인다는 연구 결과는 약 20년간 충분히 쌓여왔다. 최근 캐나다 토론토대 중독·정신건강센터(CAMH) 니콜레트 스토지오스(Nicolette Stogios) 교수 연구팀이 2000년부터 2021년 7월까지 발표된 연구 중 조건에 맞는 29건(총 1726명)을 메타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는데, 실제로 인슐린 비강 스프레이로 치료받은 알츠하이머, 경도 인지 장애 환자는 전반적인 인지 능력이 상당히 개선되는 것으로 결론 났다. 세브란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김어수 교수는 "뇌세포 인슐린 저항성은 알츠하이머 치매를 유발하는 여러 가지 요인 중 하나로 꼽혀, 일부는 알츠하이머를 제3형 당뇨라고 부르기도 한다"며 "뇌가 인슐린 작용을 잘 못 받아서 생긴 문제라면, 인슐린을 직접 뇌에 주면 알츠하이머 진행을 늦추는 데에 좋지 않을까 하는 가설에서 시작된 연구"라고 했다. 인슐린은 혈액 속 포도당을 세포로 들어가도록 해 세포 대사를 활성화하는 호르몬이다. 인슐린 기능이 떨어지는 인슐린 저항성이 커지면 커지기 전처럼 작용하기 위해 더 많은 인슐린이 필요하다.

사실 뇌는 오랫동안 인슐린에 둔감한 기관으로 여겨졌다. 1978년에 처음 동물 모델에서 뇌 모세혈관에 인슐린 수용체가 있다는 게 발견됐고, 곧 사람에게도 인슐린 수용체가 발견됐다. 이후 미국에서 60명 정도를 부검했더니 알츠하이머 환자에게 인슐린 수용체가 현저히 감소한 게 확인됐다. 가천대 길병원 신경과 이영배 교수는 "명확한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으나, 여러 논문을 조합해 보면 치매를 유발한다고 알려진 효소인 BACE1이 뇌 속 인슐린 저항성과 알츠하이머 유발 인자 아밀로이드 베타 사이 연결 고리로 보인다"며 "인슐린을 주입하면 BACE1 효소가 줄어 아밀로이드 베타 축적이 감소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BACE1 효소는 근육과 간에서 인슐린 저항성을 높이고 대뇌 혈관에 아밀로이드 베타를 축적하는 작용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반인 인지기능도 높여"
인지기능 저하를 예방하는 효과가 얼마나 큰지는 좀 더 크고 명확한 연구들이 필요하다. 다만 놀라운 것은 알츠하이머 치매, 경도인지장애 환자가 아닌 정상 인지 기능을 가진 사람에게도 인지 기능을 향상시키는 효과가 있다는 연구가 나왔다는 것이다. 지난해 미국 베스 이스라엘 디코니스 메디컬센터(BIDMC) 신경과 연구팀은 제2형 당뇨병 환자, 전당뇨 환자, 당뇨가 없는 환자 총 223명을 대상으로, 각 그룹의 절반에만 하루 한 번 인슐린 40IU를 코에 뿌리는 2상 임상시험을 진행했다. 공복 혈당이 126mg/dL가 넘으면 당뇨병 환자, 당뇨병 환자만큼은 아니지만 일반인보단 높은 100~125mg/dL에 해당하면 전당뇨 환자로 진단된다. 실험 결과, 인슐린 스프레이를 뿌린 모든 그룹에서 인지 기능이 향상한 것으로 나타났다. 알츠하이머 치매, 경도인지장애 환자처럼 인지 기능에 문제가 없어도 인슐린 비강 스프레이가 인지기능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게 확인된 것이다. 당뇨병 환자에서 효과가 더 좋았는데, 기획, 문제 해결, 판단, 실행 등 주요 인지기능을 관장하는 뇌 전두엽 혈류가 증가하고, 인슐린 저항성이 줄어든 것으로 확인됐다. 일반인에게서는 특히 집행기능과 언어 기억이 개선된 것으로 확인됐다. 집행기능은 추론, 집중력 등 행동을 유발하는 것과 관련된 기능이고, 언어 기억은 단어, 문장 등 언어 재료에 대한 기억력을 말한다. 김어수 교수는 "실제로 비강 스프레이를 뿌린 후 뇌 영상검사인 뇌PET를 찍어보니 알츠하이머 치매, 경도인지장애 환자는 물론 일반인에게도 뇌세포 포도당 분해 능력이 향상된 것으로 확인됐다"며 "효과가 다른 약보다 얼마나 좋은지는 비교 연구가 나와야 할 것"이라고 했다.

◇코에 뿌려야 뇌로 흡수 잘 돼
그런데 왜 꼭 비강 스프레이여야만 할까? 인슐린을 그냥 혈액에 주입하면 저혈당이 와, 오히려 인지 기능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비강 스프레이는 오직 뇌에만 인슐린을 주입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지 연구진들이 고뇌한 끝에 나온 방법이다. 혈액이 뇌로 가는 길목에는 혈액-뇌 장벽(Blood-Brain-Barrier, BBB)이 있다. 매우 촘촘한 그물 형태로, 해로운 물질이 뇌로 들어가는 걸 막는 역할을 한다. BBB를 통과하려면 약 400Da 미만이어야 하는데, 인슐린 분자량은 무려 5808Da나 된다. 코를 통하면 이 장벽을 넘을 수 있다. 김어수 교수는 "코에 뿌려주면 코 신경 세포 만단 틈 사이로 뇌에 들어가는 것으로 확인됐다"며 "특히 코로 투여된 펩타이드 형태 인슐린은 인지 기능과 관련된 뇌 구조에 도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코를 통하면 투여 후 신경 외 경로를 따라 1시간 이내로 빠르게 중추신경계에 도달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혈당을 낮추는 부작용이 가장 우려됐는데, 코로 흡입되면서 저혈당 위험은 매우 미미해졌다. 여러 연구를 통해 보고된 다른 부작용으로는 코 자극, 메스꺼움 등 치명적이지 않은 일반적인 것들뿐이었다. 또 소량으로 장기 치료하든, 조금 더 많은 양으로 단기 치료하든 효과에는 큰 차이가 없었으며, 알츠하이머 환자나 경도인지장애 환자 외에 우울증, 다운증후군, 파킨슨병 등 다른 질환 환자군에서는 유의미한 인지 인지 기능 향상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다.

◇전도유망하지만… 큰 규모 연구 결과 우선 나와야
인슐린 비강 스프레이가 제품화되려면 더 큰 연구가 필요하나, 전망은 좋아 보인다. 김어수 교수는 "작은 연구지만 누적된 결과를 보면 유망한 것으로 보인다"며 "대규모 3상 임상 연구가 올해 말에 나온다고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 식품의약국인 FDA 승인을 받으려면 2개 이상의 확실한 임상 시험 결과가 필요해 빠르게 진행돼도 제품화되려면 몇 년은 더 걸릴 것"이라고 했다. 이영배 교수는 "효능이 좋고, 인슐린은 당뇨약으로 쓰이고 있으니 상용화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면서도 "연구에선 저혈당 부작용이 없다고 했지만, 우려될 수 있으므로 명확한 확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비강 스프레이 외에도 뇌 속 인슐린 수치를 높이는 여러 가지 방법이 나오고 있다. 이영배 교수는 "혈액을 타고 뇌로 가서도 소수 인슐린이 뇌로 넘어갈 수 있는데, 이 기능을 높이기 위해 인슐린 감수성을 높이는 물질인 GLP-1을 이용한 알츠하이머 치매 치료제가 임상 2상 실험을 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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