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런 뺀 사이클링히트' 박찬호의 반가운 성장
[양형석 기자]
▲ 활짝 웃는 박찬호 15일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프로야구 키움 히어로즈와 KIA 타이거즈의 경기. KIA 7회말 2사 1, 2루에서 김도영의 2루타 때 1루주자 박찬호가 득점한 뒤 더그아웃에서 동료의 환영을 받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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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하위 키움을 완파한 KIA가 전날 패배를 설욕하고 5위 추격에 박차를 가했다.
김종국 감독이 이끄는 KIA 타이거즈는 16일 광주 KIA 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2023 신한은행 SOL KBO리그 키움 히어로즈와의 홈경기에서 장단 14안타를 때려내며 11-3으로 대승을 거뒀다. 6회말을 제외한 매 이닝 점수를 뽑으며 화끈한 타격전을 선보인 KIA는 이날 kt 위즈에게 2-5로 패한 5위 두산 베어스와의 승차를 반 경기로 좁히며 5위 재탈환에 본격적인 시동을 걸었다(46승 2무 47패).
KIA는 선발 이의리가 6이닝 5피안타 2사사구 9탈삼진 1실점 호투로 시즌 10번째 승리를 따내며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두 자리 승수를 기록했다. 타선에서는 1회 선제 희생플라이를 기록한 최형우가 결승타의 주인공이 된 가운데 하위타선의 이창진과 김태군이 나란히 3안타를 기록하며 좋은 타격감을 뽐냈다. 하지만 이날 KIA 대승의 일등공신은 결승득점을 포함해 홈런이 빠진 사이클링 히트를 기록하며 4안타 3타점 2득점을 폭발시킨 주전유격수 박찬호였다.
강력했던 타이거즈의 유격수 계보
영광의 해태 타이거즈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도 타이거즈 역사상 최고의 유격수는 단연 '바람의 아들' 이종범(LG트윈스 주루코치)을 꼽는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을 것이다. 이종범이 해태에서 유격수로 활약한 기간은 단 5년에 불과했지만 이종범은 이 기간 동안 한 번의 정규리그 MVP와 3번의 한국시리즈 우승, 4번의 골든글러브, 두 번의 한국시리즈 MVP, 3번의 도루왕을 수상하며 그야말로 리그를 지배했다.
이종범의 일본 진출 이후 현재 KIA를 이끌고 있는 김종국 감독이 이어 받았던 타이거즈의 유격수 자리는 2000년대 초반 홍세완(KIA 타격보조코치)이라는 '거포형 유격수'가 차지했다. 홍세완은 잦은 부상으로 전성기는 썩 길지 않았지만 프로 4년 차 시즌이었던 2003년 타율 .290 22홈런 100타점을 기록하며 유격수 최초로 100타점 시즌을 만들었다(이 기록은 2014년 117타점을 기록한 강정호가 나타나기 전까지 11년 동안 이어졌다).
이종범과 김종국, 홍세완 이후 몇 년간 확실한 주전 유격수가 나타나지 않았던 KIA의 고민은 크게 기대하지 않았던 이 선수의 등장과 함께 해결됐다. 안치홍(롯데 자이언츠)과 함께 '꼬꼬마 키스톤'을 구성하며 타이거즈의 센터라인을 지켰던 '작은 거인' 김선빈이었다. 김선빈은 이종범 만큼 빠르지도, 홍세완 만큼 파워가 좋지도 않았지만 넓은 수비폭과 성실한 플레이, 강한 어깨로 타이거즈 내야의 야전사령관으로 활약했다.
김선빈의 프로 입단은 2008년이었지만 그의 진정한 전성기는 타이거즈가 통산 11번째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던 2017년에 찾아왔다. 2016년 군복무를 마친 후 복귀 시즌을 맞은 김선빈은 2017년 137경기에 출전해 타율 .370 176안타 5홈런 64타점 84득점을 기록하면서 쟁쟁한 강타자들을 제치고 타격왕과 함께 생애 첫 유격수 골든글러브에 선정되는 기염을 토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165cm의 '작은 거인'이 만들어낸 대반전이었다.
하지만 30대에 접어들면서 유격수 수비에 부담을 느끼기 시작한 김선빈은 2019 시즌이 끝나고 4년 최대 40억 원에 KIA와 FA계약을 체결한 후 2루수로 변신했다. 롯데로 이적한 안치홍의 공백을 메우고 김선빈의 수비 부담을 줄여주기 위한 조치였다. 그렇게 타이거즈의 유격수는 무주공산이 됐고 오늘날 KIA의 유격수 자리는 2019년 이범호의 은퇴식에서 등번호 25번을 물려 받았던 박찬호의 차지가 됐다(2022년부터 등번호 1번으로 교체).
두 번의 도루왕 출신, 타격도 '일취월장'
사실 박찬호는 장충고 시절부터 청소년 대표에 선발될 정도로 좋은 평가를 받았던 유격수였지만 2014년 신인 드래프트에서는 2차 5라운드 전체 50순위로 지명순위가 밀렸다. 하지만 KIA는 5라운드 신인 박찬호에게 8000만 원이라는 적지 않은 계약금을 줄 정도로 많은 기대를 걸었다. 박찬호는 프로 입단 후 김선빈과 안치홍의 군입대 공백을 메워줄 선수로 기대를 모았지만 3년 동안 한 번도 1할대 타율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상무 야구단 지원에서 탈락한 박찬호는 현역으로 군복무를 마쳤고 2019년 이범호의 은퇴로 무한경쟁체제가 된 3루수 주전 경쟁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박찬호는 팀 내 최고 유망주 최원준을 제치고 KIA의 주전 3루수로 활약했고 그해 39도루로 도루왕을 차지했다. 하지만 박찬호는 2020년 김선빈이 2루수로 변신하면서 어렵게 차지했던 3루를 1년 만에 떠나 다시 유격수로 자리를 옮겼다.
박찬호는 2020년 141경기 타율 .223, 2021년 131경기 타율 .246에 그치면서 유격수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듯했다. 하지만 2022년 시즌 '슈퍼루키' 김도영의 입단으로 유격수 자리가 위태로워진 박찬호는 유격수로 128경기에 선발 출전해 1103.1이닝을 소화하며 자신의 자리를 사수하는 데 성공했다. 또한 42도루로 생애 두 번째 도루왕에 등극한 박찬호는 3루수와 유격수로 한 차례씩 도루왕에 오른 선수가 됐다.
올 시즌 연봉이 2억 원으로 오른 박찬호는 올해도 변함없이 KIA의 붙박이 주전 유격수로 활약하고 있다. 특히 타격이 일취월장해 95경기에서 타율 .293 97안타 2홈런 35타점 49득점 18도루로 프로 데뷔 후 최고의 성적을 기록하고 있다. 박찬호는 16일 키움전에서도 1회 볼넷으로 출루해 결승득점을 올렸고 이후 네 타석에서는 2루타와 3루타, 그리고 단타 2개를 기록하며 홈런이 빠진 사이클링히트를 기록하는 맹타를 휘둘렀다.
박찬호가 순조로운 성장으로 유격수 자리를 굳건히 지켜주면서 KIA는 특급 유망주 김도영을 3루수로 집중 육성할 수 있게 됐다. 시즌 내내 포수난에 시달렸던 KIA가 지난 7월 5일 '슈퍼 유틸리티' 류지혁(삼성 라이온즈)을 내주고 김태군 포수를 영입할 수 있었던 것도 박찬호의 존재가 큰 역할을 차지했다. 이제 야구팬들은 이종범, 홍세완, 김선빈을 기억하듯 훗날 타이거즈의 유격수 계보에 분명 박찬호라는 이름을 떠올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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