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AG 공백’ 걱정하는 든든한 막내 KT 박영현
프로야구 KT 위즈는 요새 10개 구단 가운데 벤치 분위기가 가장 좋다. 최근 무려 9연속 위닝시리즈를 가져가면서 순위를 3위까지 끌어올린 덕분이다. 4위 NC 다이노스와의 격차는 계속 벌리고 있고, 2위 SSG 랜더스는 어느덧 턱밑까지 따라왔다.
두세 달 전을 생각하면 ‘상전벽해’라는 사자성어가 떠오를 정도다. KT는 올 시즌 50경기를 치를 때(6월 4일)까지 최하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18승2무30패로 10위였다. 특히 6월 2일까지는 16승2무30패로 승패 마진이 –14까지 떨어졌다. 당시 단독선두 SSG와의 간격은 14경기였고, 5위 NC와의 격차 7게임 반이나 됐다. 대다수의 전문가들이 KT의 가을야구 탈락을 예견한 이유다.
그러나 이후 믿기 힘든 반전이 일어났다. 일찌감치 5강 전선에서 밀려났다고 판단된 KT가 이제는 상위권을 위협하는 다크호스로 거듭났다. KT는 16일과 17일 잠실 두산 베어스전을 모두 이기면서 최근 9연속 위닝시리즈를 달성했다. 전반기 마지막 시리즈였던 7월 11~13일 고척 키움 히어로즈전 3연승을 시작으로 단 한 차례도 상대에게 3연전 우위를 내주지 않았다. 그러면서 승패 마진을 +10까지 끌어올렸다.
후반기 18승4패로 압도적인 승률 1위(0.818)를 달리고 있는 KT. 대반격의 중심에는 데뷔 2년차 막둥이 박영현(20)이 있다. 이제 막 고등학생 티를 벗은 막내지만, 올 시즌 53경기에서 24홀드를 따내면서 KT의 허리를 든든히 지키는 중이다. 최근 만난 박영현은 “선발투수 형들이 워낙 잘 던져서 경기 중반 리드 상황이 많다. 그래서 계속해서 대기해야 한다”면서도 “힘든 줄은 잘 모르겠다. 지는 것보단 이기는 것이 훨씬 낫지 않나. 또, 벤치 분위기가 정말 좋아서 이제는 1~2점 차이로 뒤지고 있어도 좀처럼 질 것 같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고 웃었다.
박영현의 가치는 기록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먼저 16일 기준으로 24홀드는 KBO리그 전체 1등이다. 53경기 출전은 LG 트윈스의 김진성, 함덕주와 함께 가장 많은데 46과 3분의 1이닝인 김진성, 52이닝인 함덕주보다 많은 56과 3분의 2이닝을 소화했다. 누적 기록만 뛰어난 것은 아니다. 평균자책점은 2.86으로 낮은 편이고, 이닝당 출루허용률(WHIP)도 1.13으로 준수하다. 박영현의 별명이 ‘든든이’인 이유다.
박영현은 유신고 시절부터 오른손 파이어볼러로 이름을 날렸다. 직구 하나만큼은 또래 고등학생들이 쉽게 치지 못한다는 평가도 뒤따랐다. 문제는 1군 무대에서의 경쟁력이었는데 지난해 가능성을 보인 뒤 올 시즌 KBO리그를 대표하는 불펜투수로 자리매김하면서 이름값을 톡톡히 하고 있다.
시속 140㎞대 중반의 묵직한 직구와 비슷한 위치에서 떨어지는 체인지업으로 상대 타자를 요리하는 박영현은 “입단 전까지만 하더라도 생각지도 못한 일이다. 올 시즌을 앞두고도 ‘1군에서 계속 뛰고만 싶다’고 속으로 다짐할 정도였다. 아무래도 많은 경기를 나가면서 경험도 쌓이고, 타자를 상대하는 능력도 향상되는 느낌이다”고 말했다.
물론 위기도 있었다. 올스타전 브레이크 직후 공의 위력이 잠시 떨어지면서 고전했다. 박영현은 “후반기 들어서면서 밸런스 자체를 잃었다. 내가 생각해도 공의 힘이 뚝 떨어졌다. 그러면서 자신감도 함께 잃었다”고 했다. 이어 “그때 선배들의 위로가 큰 힘이 됐다. 우리가 여기까지 온 데에는 나의 몫이 컸다고 이야기해주셨다. 그렇게 어깨를 두드려주실 때마다 자신감을 되찾았다”고 미소를 지었다.
올 시즌 최고의 활약을 펼치는 박영현은 9월 열리는 항저우아시안게임에서 태극마크를 달고 뛴다. 문제는 이 시기가 KT의 순위싸움과 맞물려있다는 점이다. 박영현은 물론 이강철 감독이 가장 걱정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게다가 박영현의 빈자리를 메우리라고 생각됐던 김민수가 왼쪽 발목 수술을 받으면서 남은 기간 복귀가 어려워져 KT 벤치의 우려는 더욱 커졌다.
박영현은 “안 그래도 마음이 복잡하다. 한 달 정도 있으면 꽤 오랜 기간 자리를 비워야 하지 않나. 그래서 요즘에는 내가 가기 전까지 최대한 보탬이 돼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어떻게든 KT가 가을야구 안정권으로 들어야 마음이 편할 것 같다. 그래서 더욱 열심히 공을 던지고 있다”고 했다.
고봉준 기자 ko.bong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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