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 과학실무사의 죽음을 기억하며

신재용 2023. 8. 17.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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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이초 사건으로 주목받는 '을들의 사회' 학교, 그중 '을중의 을' 교육공무원

[신재용 기자]

서이초 교사의 안타까운 죽음을 계기로 악성 민원 갑질에 시달리는 교사들의 교권 추락이 큰 관심을 받고 있다. 그동안 쉬쉬했던 악성 민원들을 보면 고객님들의 갑질로 보기에 충분한 사례들이다. 교사들은 무한 책임을 요구받는 을로 전락한 듯하다.

사실 학교에서 벌어지는 악성 민원과 갑질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며, 을은 교사만도 아니다. 민원을 받을 주제도 못 된다는 모욕을 당하는 교육공무직도 대표적인 을이고, 만만한 게 소수 행정직이라는 지방공무원들도 자신들을 을이라 일컫는다.

어쩌면 학교 자체가 을들의 사회일지도 모른다. 그런 을들의 사회엔 악성 민원 갑질에 더해 은근한 서열을 바탕으로 을들의 갈등도 켜켜이 쌓여있다. 문제를 드러내 해결하지 않고 교장을 정점으로 쉬쉬하는 문화가 학교를 병들게 했다. 을들의 사회 학교는 삭막해지고 교직원들은 날이 서 있으며, 내 아이를 위한 교육 전쟁을 시작한 일부 학부모들은 학교의 을들에게 감정을 겨누기도 한다.

학교라는 울타리 밖에서는 잘 모르는 을들의 한숨, 오래 쌓여 체념했을지도 모를 모든 사연들과 을들 모두는 어쩌면 서이초 교사에게 빚을 졌다. 비로소 우리 사회는 학교 안에 숨겨진 어처구니없는 일들을 조금은 알게 됐다.

그러나 아직 충분하지 않다. 어쩌면 교사라서 주목받는지도 모른다. "어떻게 선생님에게 그럴 수 있느냐"는 사회적 존중이 있기에 이토록 주목받는지도 모르겠다. 반면 교육 주체로 인정받지도 존중받지도 못하는 을들의 이야기는 여전히 노조만 귀 기울이고 있다.

그중에서도 다른 을들과 달리 법적 지위도 직업적 권한도 없이 어쩌다 학교에서 일하는 사람들 취급을 받는 교육공무직들은 을 중의 을이다. 그나마 노조를 통한 저항과 투쟁으로 덜 무시당하기도 하지만, 10년 전 노조가 미약하던 과거엔 교장을 정점으로 권위적 위계 문화가 가득한 학교의 최말단 일용 잡급직에 불과했다. 조금이라도 학교장의 비위를 거스르면 해고(계약 만료) 되는 경우가 빈번했고, 굴욕적인 직무 스트레스에 언제 잘릴지 모른다는 고용 불안까지 안고 살았다.

이런 문화와 시스템 속에서, 2013년 청주에서 과학 실무사로 일하시던 고 김OO 선생님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했다. 과학 실험 교육을 지원하는 직무로 채용됐지만 2013년 교육청은 일방적으로 직종 통합을 시행했다. 그 탓에 그는 학교와 마찰을 겪었고, 지병이 심해져 제대로 근무하기 어려운 상태로 악화됐다. 14일의 병가와 연가를 모두 소진하고 끝내 퇴직할 수밖에 없었다.

그 과정에서 학교는 최소한의 배려로 병가 안내도 하지 않았다. 그는 결국 14일의 병가를 사용했지만 46일의 무급 병가가 남아 있었다. 휴직이나 병가 사용 등 퇴직을 회피하기 위한 노력을 증명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실업 급여도 받지 못했다. 실업급여법이 그렇다는 것이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그는 학교로 돌아가 생계의 어려움을 호소하며 도움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충북교육청을 찾아 면담하고 청와대 신문고에도 호소했지만 절망을 피할 수 없었다.

고 김OO 선생님은 2013년 8월 17일 13년을 일했던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의 주머니에는 청와대 신문고에 올렸던 글과 충북교육청의 답변서가 들어 있었다. 교육공무직이 더 열악했던 시절, 그는 학교 노동자로서 최소한의 보호(무급 병가)도 받지 못한 채 생의 끈을 놓아버렸다.  
 
 매년 8월이면 청주 과학 실무사를 추모하는 현수막이 걸린다.
ⓒ 전국교육공무직본부
 
교육공무직과 협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발표

우리 사회는 학교의 문화와 권력관계를 돌아봐야 한다. 법에 따라 학교를 "통할하는(모두 거느려 다스리는) 교장의 권력은 합당한지, 일방적으로 추가 직무를 부여하는 교육청의 권력은 과연 정당한지 물어야 한다.

악성 민원으로부터 교사의 교권을 보호한다며 교육부는 민원 대응팀을 꾸리겠다고 하고 거기에 일부 관리자와 교육공무직을 넣겠다고 밝혔다. 교육공무직과 일언반구 협의도 안내도 없이 일방적으로 갑자기 발표했다. 알 필요도 없고 입 다물고 따르라는 식이다.

물론 과도한 악성 민원과 갑질은 학교 구성원 모두 함께 대처해야 할 난제이며 교육공무직도 나름의 역할로서 일익을 담당할 수 있지만, 이런 갑질에 순종할 순 없다. 우리 사회는 확장된 학교의 기능에 대한 새로운 사회적 대화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고 어떤 을의 희생을 다른 을의 희생으로 대처하는 방식이라면 결코 동의할 수 없다.

이런 요즘인지라 10년 전 동료의 죽음을 우리는 남달리 기억하게 된다. 고 김00 선생님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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