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익의 Epi-Life] 맛보지도 못한 새만금 밥맛 타령

서지영 2023. 8. 17. 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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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기가 자르르 흐르고 촉촉한 물기가 배어 있어야 한다. 냄새를 맡았을 때 구수하고 달콤한 향이 나며, 입안에 넣었을 때는 밥알이 낱낱이 살아 있음이 느껴지고, 혀로 밥알을 감았을 때 침이 고이면서 단맛이 더해지며, 살짝 씹을 때는 무르지도 단단하지도 않게 이빨 사이에서 기분 좋은 마찰을 일으켜야 한다.”

졸저 ‘미각의 제국’(2010년, 따비)에 실려 있는 글입니다. 맛있는 밥의 기준을 제 나름대로 정리를 한 것이었지요. 당시에 식당 밥이 맛이 없어서 혼자 궁시렁거리며 썼던 것입니다.

요즘 식당 밥이 어떠냐 하면 “대체로 만족”입니다. 좋은 쌀로 그때그때 밥을 해서 내는 식당이 많이 생겼습니다. 공장에서 가공한 밥까지도 맛있습니다. 여유가 있으면 음식의 질은 저절로 올라갑니다. 2010년에 했던 밥투정이 어색해 보일 정도로 세상은 크게 바뀌었습니다.

쌀이 우리 민족의 주식이라고는 하나 쌀밥을 넉넉하게 먹게 된 것은 그렇게 오래된 일은 아닙니다. 이 땅의 민중은 잡곡과 초근목피로 버티었습니다. 극히 일부의 지배계급 빼고는 가을걷이 때에 잠시 쌀밥을 구경할 뿐이었습니다. 

1973년 통일벼가 보급되었습니다. 인디카계의 유전자가 포함되어 있어 밥의 찰기가 떨어지고 키가 작아 볏짚의 활용도가 떨어지는 등 여러 단점들이 있었으나 다수확이라는 단 하나의 장점에 비하면 그 단점들은 전혀 중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1976년 쌀 자급률 100%를 기록하였습니다. 한반도 사람들이 마음껏 쌀밥을 먹을 수 있는 시대가 열린 것이지요.

1980년대에 들면서 한국 경제는 급성장을 하였습니다. 중산층이란 계급이 만들어졌습니다. 아파트에 살면서 자가용차를 몰고 다니는 핵가족이 등장하였지요. 그들은 햄버거, 피자, 프라이드 치킨 등 미국식 음식을 먹는 것으로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확인하였습니다.

한국 외식 음식들도 중산층의 수요에 맞추어 재편성되었습니다. 식탁에 불판을 올리고 소갈비와 등심, 삼겹살과 돼지갈비를 구웠습니다. 불판 위에 냄비를 올리고 끓이는 탕도 번창하였습니다. 생선회도 대중화되었고요. 그 모오든 상차림에서 밥은 후식으로 밀려났습니다. 고기 구워 먹고, 탕 끓여 먹고, 생선회 먹고 나서, 더 먹을 배가 남아 있으면 밥을, 그것도 국수나 냉면과 비교해가며, 먹었습니다. 그렇게 하여, 1인당 쌀 소비량은 급격하게 줄었습니다.

한순간에 남아도는 쌀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1992년 통일벼가 퇴출되었습니다. 한민족 역사상 처음으로 쌀의 자급을 이루게 해준 벼 품종이 기껏 20년 만에 사라진 것이지요. ‘쌀밥 더 먹기 운동’이 30년이 넘게 진행되었지만 성공적인 방법은 단 한 건도 없었습니다. 큰 변수가 없는 한, 앞으로도 없을 것입니다.

새만금은 원래 농지로 쓰기 위해 간척을 한 땅입니다. 새만금 계획 당시에는 도시화로 농지가 줄어들고 통일되면 북한 주민도 먹여 살려야 한다는 논리가 있었습니다. 쌀이 남아돌고 남북 관계도 안 좋으니 새만금을 농지로 쓰자는 말은 쑥 들어가고, 온갖 활용 방안이 제시되고 있습니다.

새만금 간척지에서 잼버리를 한다고 세계 각국에서 온 4만여 명의 청소년들을 무더위와 벌레에 시달리게 하여 돌려보냈습니다. 새만금에 텐트를 쳤던 청소년들에게 그 땅은 원래 어떤 용도로 간척한 땅인지 설명이나 했는지 궁금합니다. ‘통일 이후의 식량 안보를 위한 농지’ 같은 말은 어렵더라도, 한반도에서 쌀밥은 유토피아를 상징했으며 새만금이 그 유토피아를 이루어줄 것이라고 한때 온 국민이 믿었다는 설명은 해주었어야 하지 않나 싶었습니다.

새만금이 만경평야와 김제평야의 첫 자를 따와서 붙인 이름입니다. 새만금이 벼농사 짓기에 더없이 좋은 땅입니다. 간척지 쌀이 맛있는 것은 다들 아시지요. 새만금에서 거둔 쌀을 잼버리 야영장 청소년들에게 밥을 지어 먹어보라고 주었는지 어땠는지, 그런 거 신경 쓸 겨를도 없었겠지요. 인명 사고가 안 나서 다행이다 생각하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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