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장·하급간부, 누구 빼려했나…軍 뒤집은 해병수사 항명 파동

이근평, 강태화 2023. 8. 17.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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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가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의 항명 사건을 군 검찰 수사심의위원회(심의위)에서 다루기로 했다. 박 대령은 실종자 수색작전 중 순직한 고(故) 채 상병 사고와 관련, 민간 경찰로 사건 이첩을 보류하라는 상부 지시에 항명한 혐의로 국방부 검찰단에 입건됐지만 수사의 공정성을 문제 삼으며 수사를 거부했다.

고(故) 채 상병 수사와 관련해 '집단항명 수괴' 혐의로 입건된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이 지난 11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검찰단 앞에서 입장을 밝히고 있다. 군 검찰단 출석이 예정됐던 박 전 수사단장은 "국방부 검찰단의 수사를 명백히 거부한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국방부는 16일 “이종섭 장관이 본 사안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고려해 군 검찰 수사심의위 구성·소집을 직권으로 지시했다”고 밝혔다. 심의위는 고 이예람 공군 중사 사망사건 이후 국민적 의혹 등이 집중되는 사건에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5∼20명으로 구성되는 심의위는 수사 계속 여부와 공소 제기여부, 구속영장 청구 여부 등을 들여다본다. 박 대령은 지난 11일 검찰단의 소환조사를 거부하며 심의위 구성을 요구했다.

심의위가 검토할 박 대령의 항명 혐의는 사실 채 상병의 순직과 관련한 진실을 파악하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다. 그럼에도 항명이 사건의 핵심처럼 보이는 건 국방부와 박 대령 측이 군기 문란급의 진실 공방을 공개적으로 벌여온 탓이다.


장관 보고 때 법무관리관은 왜 없었나

논란은 박 대령이 이종섭 국방부 장관에게 간부 8명을 과실치사 혐의로 경찰에 이첩하겠다는 수사 결과를 보고하고, 이 장관이 이를 결재한 지난달 30일 시작됐다. 이 자리에는 국방부 법무관리관이 배석하지 않고, 공보라인 관계자들만 참석했다. 국방부가 해당 자리를 최종 조사 결과 보고가 아닌 언론 브리핑 관련 보고 성격으로 잘못 판단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결국 이 장관은 면밀한 법리 검토를 거치지 못한 채 이첩을 결재한 게 됐다. 뒤늦게 법무관리관이 법리 검토 의견을 내고 이첩을 보류하라는 장관의 지시를 해병대에 전했다.

여기서 박 대령과 국방부의 말이 갈린다. 박 대령 측은 법무관리관이 “직접적인 과실이 있는 사람으로 혐의를 한정해야 한다”는 취지로 말했고, 이에 “직접 물에 들어가라고 한 대대장 이하를 말하는 것이냐”고 되묻자 법무관리관이 “그렇다”고 대답했다고 주장한다. 박 대령은 이를 임성근 해병대 제1사단장을 빼라는 외압으로 받아들였다.

경북 예천 폭우 피해 실종자 수색 임무 도중 순직한 해병대 고(故) 채 상병의 안장식이 22일 오후 국립대전현충원 장병묘역에서 엄수됐다. 이날 안장식에 참석한 채 상병의 부대장인 임성근 해병대 1사단장이 눈물을 닦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하지만 국방부는 당시 법무관리관이 수사단 보고 원문을 읽지 못해 특정인의 혐의조차 알 수도 없는 상황이라며 원칙론을 얘기한 것이라는 입장이다.


‘사단장’과 ‘하급간부 4명’…누구 혐의를 빼려 했나

군 당국은 오히려 시종일관 문제로 본 건 사단장이 아니라 부사관 등 하급간부 4명에게도 과실치사를 적용한 점이었다고 설명한다. 익명을 요구한 군 관계자는 “장관 보고 때부터 사단장의 과실이 비교적 명확하다는 건 이미 공감대가 형성돼 있었다. 다만 상부의 지시를 수행한 하급간부들에게도 혐의를 적시해 이첩하는 게 적절한지를 놓고 장관 결재 직후 내부적으로 비공식 논의가 오간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지난 22일 경북 포항 해병대 1사단 체육관인 '김대식관'에서 열린 고 채 상병 영결식에서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오른쪽 두번째)가 눈물을 닦고 있다. 김 대표 오른쪽은 이종섭 국방부 장관. 연합뉴스

하급간부들에까지 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한 것 자체도 의견이 맞서는 대목이다. 박 대령 측은 하급간부들 역시 안정장구를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수중 수색에 관여한 책임이 있다고 이유를 댄다.

반면 내부 징계라면 모를까 행위와 사망 사이의 인과 관계를 구체적으로 따져야 하는 과실치사 협의에 하급간부를 4명이나 포함시킨 건 과하다는 지적 역시 나온다.


유족 “정신적 고통” 호소에도…정치공방 확산

오는 19일이면 채 상병이 순직한지 한 달째지만, 정작 순직이라는 사건의 본질에 대한 경찰의 ‘실제 수사’는 착수조차 하지 못했다. 그 사이 정치권까지 가세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 회의에서 “정부가 진실을 밝히려는 군인의 입을 막으려고 항명이라는 누명까지 씌운다”며 특검 도입을 요구했다. ‘선악(善惡) 구도’에 따른 자체 결론에 따라 구성에만 몇달이 걸릴지 모를 특검 등으로 이슈를 최대한 끌고가겠다는 계산으로 풀이된다.

이와 관련, 미묘하게 달라져온 박 대령의 입장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박 대령은 ‘이첩 보류’ 지시에 대해 “서면 명령이 없었기 때문에 지시가 아니었고, 따라서 항명은 성립하지 않는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명시적 이첩 보류 지시는 이첩을 한 이후에야 받았다고 주장한다.

박 대령은 또 자신에게 이첩 보류를 지시한 법무관리관이 신범철 국방부 차관의 문자 메시지 등을 근거로 ‘특정인을 배제하라’는 취지로 외압을 행사했다고 주장했다. 특히 “사건보고서의 내용을 국가안보실에서 보고싶어한다는 말을 들었다”며 대통령실을 '배후'일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신 차관은 “통신기록까지 확인해 제시했다”며 “(특정인을 배제하라는)문자를 보낸 사실이 없다”고 반박했다. 대통령실 관계자 역시 “사실 무근”이란 입장을 밝혔다. 국방부 조사본부도 사건 이첩 시 박 대령이 주도해 작성한 보고서 원본을 함께 경찰에 보내겠다며, 사건 축소ㆍ은폐 가능성이 없음을 강조하기도 했다.

지난달 집중호우 피해 실종자 수색작전 중 순직한 고(故) 채 상병 사고 조사결과 보고서를 경찰에 이첩했던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이 ㅈ난 11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후문 민원실에서 국방부 검찰단에 출석하기 전 변호사들과 대화를 하고 있다. 박 전 해병대 수사단장은 기자단에 입장문을 보내 국방부 검찰단의 소환조사에 응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뉴스1

사건의 본질과 무관한 엉뚱한 공방이 본격화하는 가운데 채 상병의 부모는 해병대에 “아들의 이름이 계속 노출되면서 정신적 고통이 심하다”며 “아들의 실명을 쓰지 말아달라”고 요청했다.

고등군사법원장 출신인 최재석 변호사는 “군사법원법 개정에 대한 찬반과는 별개로 군이 당초 해병대수사단에 초동 수사를 맡기기로 했다면 국방장관 역시 끝까지 개입하지 않는 것이 법의 정신”이라며 “장관의 최초 결재 때 아무 의견을 제시하지 않았다가 의사 결정을 번복한 군의 ‘아마추어리즘’ 때문에 군이 국민적 불신 가중을 자초한 면이 크다”고 말했다.

강태화·이근평 기자 lee.keunp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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