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영옥의 컬처 아이] 저작권의 그늘, 이중섭은 알고 박수근은 모를라

손영옥 2023. 8. 17. 04:08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빈센트 반 고흐(1853∼1890), 파블로 피카소(1881∼1973), 이중섭(1916∼1956), 박수근(1914∼1965), 김환기(1913∼1974). 이들을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저작권이 고흐, 이중섭은 소멸됐고 피카소, 박수근, 김환기는 살아 있다.

그런 김환기보다 저작권이 비싼 작가도 등장하는 실정이다.

그러니 저작권이 소멸된 이중섭 책만 계속 나오고 있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빈센트 반 고흐(1853∼1890), 파블로 피카소(1881∼1973), 이중섭(1916∼1956), 박수근(1914∼1965), 김환기(1913∼1974)…. 이들을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그 기준은 저작권 유무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화가, 소설가 등 창작자의 저작물에 대한 권리는 사후 70년까지 보장해준다. 저작권이 고흐, 이중섭은 소멸됐고 피카소, 박수근, 김환기는 살아 있다. 한국 작가의 경우 2013년 저작권법이 개정되며 저작권 보호 기간이 기존 50년에서 70년으로 늘어났는데, 이중섭은 혜택을 보지 못하고 2006년에 만료됐다.

저작권을 실감하지 못하다가 신간 ‘이건희 홍라희 컬렉션’(자음과모음 출판사) 출간을 계기로 그 영향을 뼈저리게 느꼈다. 책에는 이중섭에서 피카소까지 국내외 작가 38명의 작품 도판이 140장 남짓 들어간다. 저작권자인 화가와 유족을 접촉하며 ‘내가 물정을 몰랐구나’ 절감했다. 출판시장에서는 매년 고흐와 이중섭 책만 마르지 않는 수도꼭지 물처럼 나온다. 이를 두고 출판사들이 돈벌이에만 관심을 갖고 외연을 확장하는 노력을 소홀히 한다고 출판사 탓만 했다.

그 이면에 값비싼 저작권 사용료라는 높은 벽이 있었던 것이다. 도판 사용료는 상상 이상으로 비싸기도 했지만 고무줄 잣대인 게 더 문제였다. 유료인 경우 도판 1장당 100만원에서 7만5000원까지 작가마다 달랐다. Y작가 유족의 경우 교육용 출판은 10만원, 상업용 출판은 100만원으로 구분을 뒀다. 그런 이분법은 적절하지 않다. 교육은 꼭 강의실에서만 일어나지 않는다. 광범위한 독서야말로 교양시민을 위한 교육 아닌가. 그러니 책에 사용되는 도판을 에코백에 들어가는 도판과 마찬가지로 상업용으로 묶는 것은 비합리적이다. 이런 취지를 수긍해 장당 10만원으로 했다고 하더라도 작가마다 도판이 2∼5장씩 들어가는 걸 감안하면 그 부담이 적지 않다. 생각해보라. 들어간 도판이 140여장이다. 그나마 무료 게재를 허가해준 유족 덕분에 비용 부담을 완화할 수 있었다.

도판 사용료 부담은 확실히 출판시장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2010년 이후 국내에서 출간된 김환기 관련 책을 조사해보니 겨우 2권이다. 그나마 1권은 환기재단에서 냈다. 김환기 작품 저작권이 비싼 것은 미술 바닥에 소문나 있다. 그런 김환기보다 저작권이 비싼 작가도 등장하는 실정이다. 그러니 저작권이 소멸된 이중섭 책만 계속 나오고 있다. 같은 시기 이중섭 관련 대중서는 40권이 넘는다. 결국 창작자 권리를 보호한다는 취지의 저작권이 미술가를 대중에게 노출시키는 기회를 줄이는 역작용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세월이 쌓이면 그 부작용은 체감된다. 미술사가 C씨는 “근대 작가 P씨에 대한 연구 성과를 대중서로 내고 싶어도 도판 사용료 부담 때문에 원고를 묵혀 두고 있다”고 토로했다. 60∼70년대 인기를 구가했던 운보 김기창의 경우 비싼 저작권료로 원성을 샀다. 미술사가 J씨는 “결국 운보에 대한 책과 달력 등이 시장에서 유통이 안 되면서 지금 운보를 아는 MZ세대는 거의 없는 것 같다”며 안타까워했다. 저작권 유무가 그 미술가의 미래 인지도를 결정하는 아이러니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예컨대 도판 사용료 부담 때문에 책이 덜 나온다면 박수근을 인기 방송인 이수근의 이름과 혼동하는 MZ세대가 나오지 말라는 법은 없다.

지금 저작권료는 부르는 사람 마음이다. 합리적인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 한국미술저작권관리협회(SACK)에서 관리를 대행하는 이응노, 피카소, 샤갈, 미로 등은 장당 14만원이다. 서울시에서 관리를 맡는 천경자의 경우 장당 7만5000원이다. 저작권자를 일일이 수소문하는 수고와 법적 분쟁을 줄이기 위해서 관리를 일원화할 필요도 있다.

손영옥 문화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yosohn@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