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칼럼] 새만금 갯벌에 발목잡힌 대한민국
LG서 스마트팜 제안했지만… 전북도의회, 농민 결사반대
지금은 새로운 성공 방정식 필요… 미래 위해 모두 마음 열어야
“1950년 이승만 정부의 농지개혁이야말로 대한민국이 여기까지 오는 가장 결정적 장면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7월 15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제주 해비치호텔&리조트에서 열린 ‘제46회 대한상공회의소 제주포럼’ 강연에서 내놓은 발언이다. 이승만 정부의 농지개혁이 지니는 긍정적 의의를 되새기며, 미래를 위한 발전적 제도 개혁의 필요성을 역설한 것이다.
우리의 역사가 그랬다. 북한과 국경을 마주하고 체제 경쟁을 벌이고 있던 신생 국가 대한민국은 ‘유상 몰수 유상 분배’ 원칙에 기반한 토지개혁을 단행했다. 소규모 자영농들이 스스로 농사짓는 토지의 주인이 될 수 있게끔 한 것이다. 공산국가 북한의 침략에 맞서 사람들은 ‘내 땅’을 지키기 위해 싸웠다. 내 땅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자녀들을 교육해 오늘의 경제성장을 이루었다. 농지개혁은 1948년 건국 이후 75년 만에 이루어낸 기적의 근본이었다.
문제는 과거의 성공 방정식이 현재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11일 K팝 콘서트와 함께 마무리된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가 그 단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준비 기간 6년, 예산 총 1천억 원이 넘게 들어간 이 행사는 왜 이토록 엉망이 되고 만 것일까?
새만금은 본래 한반도에 존재하지 않던 옥토가 되도록 예정된 땅이었다. 1987년 대선을 앞두고 노태우 당시 민정당 대통령 후보가 내세운 공약에 따르면 그랬다. 하지만 선거가 끝나자 추진 동력이 떨어졌다. 농민들은 보조금 혜택을 받는 쌀농사에 편중되었다. 그 결과 쌀은 남아돌고 다른 농작물은 비싼 기형적 농업 구조가 만들어졌고, 새만금의 갯벌을 메워서 염분을 빼고 농토로 만들어야 할 이유도 점점 사라졌다.
1987년 개헌 이후 본격화된 지방자치제 문제도 빼놓을 수 없다. 새만금은 수지타산이 안 맞지만 중단할 수도 없는 사업이 되었다. 지역의 민심, 표심, 이권이 걸렸기 때문이다. 국제공항을 짓자는 둥, 크루즈 여객선 부두를 건설하자는 둥, 태양광 패널을 깔아서 ‘에너지 농사’를 짓자는 둥, 온갖 비현실적 계획이 난무하는 가운데, 국책 사업에 끼어들어 한몫 잡으려는 업자들, 책임 의식 없는 지역 공무원, 표심을 노리는 정치권이 결탁해 아무리 예산을 퍼부어도 빠져나올 수 없는 수렁이 되어버렸다. 새만금 잼버리는 그 난맥상을 온 국민에게 알린 사례 중 하나일 뿐이다.
정치권은 이 사건을 두고 길고 지루한 공방을 벌일 듯하다. 물론 책임 소재와 잘잘못을 따지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지만 우리는 좀 더 근본적인 문제를 살펴야 한다. 새만금 갯벌이 ‘산으로’ 간 것은 쌀농사, 더 나아가 농업 전체가 저부가가치 산업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만약 새만금에서 흔한 쌀 대신 전통주를 빚는 고급 품종을 개량, 육성할 수 있었다면, 질 좋은 야채를 생산해 수도권과 여러 광역시로 공급하는 물류망을 구축할 수 있었다면, 새만금의 현실은 지금과 퍽 달랐을 수 있다.
실제로 그런 미래가 눈앞에 보인 적이 있다. 지난 2013년 동부그룹 계열사였던 팜한농이 제시했던 화옹 간척지 스마트팜 계획이 그렇다. 팜한농은 LG 그룹에 인수되었고, 2016년 LG CNS는 새만금 스마트팜의 청사진을 제시했다. 이스라엘, 네덜란드 등의 선진 사례를 연상시키는 첨단 농업을 시도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 꿈은 오래가지 못했다. 전국농민회총연맹 등 농민 단체는 LG CNS와 대화하기를 거부한 채 반대 시위를 벌였다. 전북 도의회는 ‘농민 생존 위협하는 LG의 농업 진출 저지 결의안’을 채택했다. 원래 농사를 짓기로 한 땅에 고부가가치 스마트팜을 지으려던 시도는 단지 그 주체가 기업이라는 이유로 좌초해버렸다. 한때 대한민국의 경제 기적을 가능케 했던 경자유전 원리가, 이제는 지방자치제를 등에 업은 지방 세력과 토호들의 구호가 되어, 빠져나올 수 없는 갯벌로 나라 전체를 이끌고 있는 셈이다.
경자유전 원리는 신생 국가 대한민국의 성공 방정식이었다. 하지만 2023년의 우리는 더 이상 과거의 극빈 농업국이 아니다. 1950년 이후 수십 년간 유지되어왔던 원칙을 넘어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아야 할 때다. 억지 춘향 잼버리 대신 한국의 첨단 농업을 배우러 외국 청년들이 몰려오는 것, K팝 국제 학교가 아닌 K스마트팜이 새만금의 이름을 빛내는 것이 좀 더 바람직한 미래의 모습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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