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발굴단, 남유다왕국 거점 도시 ‘라기스’ 남쪽 성벽 찾았다
한국성서고고학발굴단(한국발굴단)이 최근 이스라엘 텔 라기스(Tel Lachish) 남쪽 경사로에서 BC 10세기 남유다 왕국 르호보암 시대 성벽을 발견했다. 2015년 한국발굴단이 같은 장소에서 북쪽 성벽을 발견한 이후 두 번째 쾌거다. 이로써 남유다 왕국의 거점 도시였던 라기스가 실제로 존재했다는 사실이 다시 한번 입증됐다. 발굴 현장에는 당시 사용하던 토기 조각이 다수 발견됐다. 토기는 시대를 추정할 수 있는 결정적 증거다.
한국발굴단 단장 강후구 서울장신대(성서고고학) 교수는 16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텔 라기스 남쪽 경사면 지역 가나안 시대 지층에서 너비 3m, 길이 20m 넘는 거대한 건물이 발견됐고 르호보암 시대 지층에서 너비 4.5m 규모의 성벽이 발견됐다”며 “이는 여호수아서와 열왕기서 등 구약성경에서 가나안 시대 주요 도시국가로 언급되고 있고, 남유다 왕국의 주요 도시로 언급되고 있는 라기스의 실체를 보여주는 고고학적 건물”이라고 설명했다.
텔 라기스는 예루살렘에서 남서쪽으로 40여㎞ 떨어진 지역이다. 텔 라기스는 히브리어로 ‘쉐펠라’로 불리는 낮은 산지 지대에 속해 있다. 라기스라는 이름 앞의 ‘텔’은 다양한 지층이 쌓여 있다는 뜻이다. 라기스는 여호수아의 가나안 정복부터 앗수르(아시리아)의 남유다 침입 역사를 거쳐 느헤미야 시대 정착까지 성경에는 24번 언급된다.
르호보암 성벽은 8년 전 한국발굴단이 세계 최초로 발견하면서 성서고고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이번 남쪽 성벽 발견으로 한국발굴단은 남유다가 큰 규모의 도시를 요새화할 만큼 힘이 있는 왕국이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데 한 발짝 더 다가섰다. 역대하(11:5~12)에 따르면 르호보암은 남유다의 국방을 강화하기 위해 라기스를 비롯해 15개 성읍을 요새화했다. 르호보암이 원로들의 충고를 거부하고 부왕인 솔로몬보다 더 가혹하게 백성을 다스렸다는 점에서 요새화를 위한 동원은 충분히 가능했을 거란 추측도 할 수 있다.
한국발굴단은 히브리대와 공동으로 지난달 2일부터 지난 3일까지 한 달간 발굴 작업을 진행했다. 강 교수는 “2015년 당시 발굴에서 르호보암 시대 성벽이 발견된 곳은 북쪽 지역이었다. 이후 서쪽과 동쪽, 남쪽도 성벽이 존재할 수 있다는 가정 속에 남쪽 발굴을 시작했고 이번에 성벽이 발견됐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발견으로 성벽이 라기스를 둘렀다는 것을 추정할 수 있다. 성경(대하 11:11~12)에 나온 대로 르호보암은 지휘관을 임명하고 성안에 양식을 저장했으며 창과 방패 등으로 무장해 방비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발견된 남쪽 성벽은 기존 북쪽 성벽(3.5m)보다 두께가 1m나 더 두껍다. 이는 방어적 필요에 따라 요새를 강화해 조성한 것으로 보인다. 강 교수는 “관찰 결과 북쪽 고도가 더 높고 남쪽이 낮았다. 요새화 당시 이를 고려해 남쪽 벽을 더 두껍게 만든 것으로 보인다”며 “남쪽 벽은 이스라엘이 성벽을 쌓을 때 사용했던 방식인 이중 방벽 형태의 포곽성벽이 아니라 오직 돌로 축성된 ‘옹벽’(solid wall)이었다. 성벽 높이는 5~7m에 달했을 것으로 추정한다”고 말했다.
한국발굴단에 따르면 남북 성벽 사이 거리는 최대 375m이며 이를 토대로 동서 간 성벽 거리는 300m가량 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축구장 면적의 4~5배에 달하는 크기다. 강 교수는 “고고학 발굴은 성경이 기술하고 있지 않은 문맥과 배경을 알게 해준다는 점에서 풍성한 이해를 우리에게 준다”고 밝혔다.
세계 고고학계에서는 BC 10세기 남유다 왕국에 대한 신빙성 논란이 있다. 하지만 이번 발굴로 역대하 11장 5~12절의 내용이 역사적 사실을 담고 있으며, 성벽을 축조해 요새화한 것은 후대 히스기야나 요시야 왕의 업적이라는 일부 주장은 설득력을 잃게 됐다.
한편 성벽과 함께 발견된 토기는 BC 10세기 당시 특징을 나타내는 형태와 장식을 하고 있었다. 적색 덧입힘(red slip)과 불규칙적 손마름질(irregular hand burnish) 등이 나타난다고 한국발굴단 측은 밝혔다.
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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