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은둔형 외톨이가 ‘묻지마 범죄자’인가
‘은둔형 외톨이’는 최근 몇 년간 한국사회에서 가장 주목받는 이슈 중 하나다. 국무조정실과 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국내에는 24만~53만 명의 청년이 고립이나 은둔 상태에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규모부터 놀라울 정도다. 최근 정유정·신림동·서현역을 키워드로 하는 엽기적 사건이 잇따라 터지면서 은둔형 외톨이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함께 우려도 확산하고 있다.
사회적 관심은 반가우면서도 동시에 걱정스럽다. 많은 언론은 가해자들이 하나같이 은둔형 외톨이로 지내왔다고 지적했다. 일부 전문가의 말을 인용해 “고립에 대한 불만이 사회를 향한 분노가 되고 불특정 다수에 대한 ‘묻지마 범죄’로 이어진다”고 분석했다. 범죄심리 학계의 한 유명 전문가는 은둔형 외톨이와 묻지마 범죄 증가의 관계가 깊다고 주장했다. 정말로 은둔형 외톨이는 사회를 향해 칼을 휘두를 ‘잠재적 범죄자’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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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립·은둔 청년들 최대 53만명
남보다 자기 잘못 탓하는 경향
돕지 못할 경우면 예단 말아야
」
하지만 심리학자인 필자가 은둔·고립 청년들을 지원하는 기관에서 8년 전부터 직접 만난 수백 명의 은둔형 외톨이들은 최근 언론이나 일부 전문가들의 묘사와는 매우 거리가 멀었다. 이들은 타인이 아닌 자신에 대한 분노·실망과 능력 부족에 대한 자책을 신음처럼 토해냈다. “아무리 경쟁적이고 유능함을 강조하는 세상이라 해도 다들 평범하게 살아내는데 그러지 못하는 내가 못난 거죠.” 자책하는 이런 목소리가 지난 1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은둔·고립 청년들의 공통된 요지다.
이런 목소리가 최근 발생한 강력 사건의 가해자들이 보여준 사이코패스적이고 치밀한 공격성과 닮았나? 필자가 보기에 은둔형 외톨이는 사람을 만나지 않는다는 점을 제외하면 모든 면에서 최근 사건의 가해자들과 너무나 다르다.
우리가 사용하는 은둔형 외톨이라는 용어는 ‘은둔형’과 ‘외톨이’라는 두 일반 명사의 조합이다. 하지만 사회적으로는 이미 일정 기준에 부합하는 대상을 지칭하는 용어처럼 통용되고 있다. 따라서 은둔형 외톨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다른 대상을 지칭하며 이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
예컨대 사과는 빨갛지만, 빨간 것이 모두 사과는 아니다. 특히 전문가의 진단을 인용한 맥락에서는 더더욱 아니다. 전문가는 그 영역에 대해 더 많이 더 정확하게 알 것이라는 믿음으로 인해 사회적 영향력이 크다. 이는 동시에 사회적으로 막중한 책무를 갖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일부 전문가의 말을 인용해 쏟아내는 언론 보도대로라면 한국사회는 향후 은둔형 외톨이들에게 어떻게 대응할까. 묻지마 범죄의 해결책으로 범죄 예방 순화 교육, 위험자 격리 조치, 돌발 행동 예의주시, 처벌 등이 주가 되지 않을까. 이런 우려를 확인이라도 해주듯 위에서 언급한 그 유명 전문가는 “사회화의 범위 바깥에 있는 비사회화된 청소년기부터 시작된 젊은 친구들에게 여전히 사회적 규범을 알려줄 필요가 있다”는 해법을 제시했다. 은둔형 외톨이에게 더욱 명확한 사회화 규범을 주지시켜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것인데 이것이 우리 모두를 위한 올바른 방향일까. 필자는 강한 의문이 든다.
정부와 몇몇 지자체들은 은둔형 외톨이에 대한 다양한 지원책을 마련하고 있고,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이들을 돕는 민간기관이 늘고 있다. 한쪽에서는 이들이 세상과 어우러져 살아갈 수 있도록 돕고, 다른 쪽에서는 묻지마 범죄와 인과관계가 있다고 주장하며 몽둥이를 내세운다. 이들에게 세상은 도망쳐야 하는 곳임을 각인시키고 있다.
그러나 은둔형 외톨이는 사회적 시선이 무서워 숨은 사람들이다. 이들을 더 깊은 방안으로 숨도록 해서 무엇이 누구에게 유익한가. 특정 사회구성원에게 부정적 프레임을 씌우면 그들은 그 프레임에서 벗어나기 위해 스스로 그렇지 않음을 애써 증명해야 한다. 누구에게나 이런 몸부림은 처절하다. 특히 자신을 표현하고 주장하는 데 가장 취약한 은둔형 외톨이들에게는 감당하기 어려운 부당한 형벌이 된다.
한국 사회가 최근 발생한 비극적 사건을 은둔 문제로 예단하는 동안 가해자가 갖고 있을 더 많은 원인은 더욱 파악하기 어렵게 된다. 더욱이 많은 청년을 방안으로 도망치게 한 우리 사회의 책임은 보지 못하게 된다. 이들을 돕지 않을 거라면 무책임한 위협이라도 하지 말아야 한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혜원 호서대 청소년 문화 상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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