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응교의 가장자리] 새만금에서 도요새, 인사드려요
지구를 당기는 달과 태양의 만유인력 때문에 생긴 갯벌은 앙증맞은 흰발농게의 영지예요. 당근처럼 붉은 부리가 매혹적인 검은머리물떼새 엄마가 갯벌 색깔로 깃털이 진화하여 찾기 힘든 아기 새와 숨바꼭질 하는 놀이터가 바로 여기예요.
2006년 4월 21일은 이 갯벌을 죽인 날이에요. 부안과 군산을 잇는 방조제가 생긴 그 날, 바다와 간척지는 생명/죽음으로 나뉘었어요. 방조제 안에 죽은 진흙뻘에서 썩은 내 진동해요.
저희를 좋아하던 새만금 주민들 삶도 파괴됐어요. 갯벌을 긁어서 조개를 끌어모으는 갈고리를 주민들은 ‘그레’라고 해요.
■
「 다큐 ‘수라’에 등장하는 도요새
스크린 가득 채운 감동의 군무
간척지 만들며 사라진 생명들
잼버리 다음에 공항 짓는다고?
」
“그레질 해서 조개 한 바구니 가득 담으면 7만5000원은 받지. 그제는 12만원 받았구.”
어민들이 그레질 하면 하루에 못해도 10만~15만원은 벌었다고 해요. 갯벌이 없어지자, 방수제 잔디를 깎는 풀베기를 종일 하고 몇만원, 그것도 며칠밖에 일거리가 없는 일용직이랍니다.
펄에서 하루만 일해도 34만원은 벌던 계화도 할아버지는 공공근로로 도로 청소하고 한 달에 20만원 받는다고 글썽입니다.
다큐 영화 ‘수라’(2022)를 보시면, 저희 도요새가 떼 지어 날아가는 장관이 나와요. 떼 지어 휘몰아치며 허공을 날아갈 때 그 감동스런 울림은 거대한 스크린을 갖춘 돌비 시네마 극장에서 체험하지 않으면, 허탕이래요. 새만금 수라갯벌에 오시면 저희의 황홀한 떼 춤을 보실 수 있어요. 이 장면에서 황윤 감독이 말하더군요.
“아름다움을 본 것도 죄일까? 그럼 이제 나도 죄인이 된 걸까?”
혹시 저희 도요새가 어떻게 이동하는지 아세요? 도요새는 정말 여러 종이 있는데, 새만금에서 지내는 저희는 시원한 곳을 찾아 1만~3만㎞ 여로를 날아다녀요. 봄철 3~5월엔 새만금 수라갯벌에서 지내는 저희들은 여름이 다가오면 땡볕을 피해 러시아 툰드라, 북미 알래스카로 날아가요. 싸늘한 바람이 불면 툰드라, 알래스카에서 한반도 서해안으로 날아와 8~10월을 지내고요. 새만금에 겨울이 오기 전에 따스한 호주 북서부해안까지 편도로 6140㎞를 날아가요.
놀라지 마세요. 한국에서 호주나 뉴질랜드까지 우리는 단 한 번 쉬지 않고 태평양 위를 밤낮없이 날아가요.
문제는 사람들이 새만금을 간척하고 일어났어요. 꼬박꼬박 만조에는 들어오던 바닷물이 들어오지 않는데도, 갯벌에서 150여 종의 생물과 게들은 바닷물을 계속 기다렸겠죠. 방조제 끝물막이 공사 이후 바닷물이 안 들어온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던 조개들은 어느 날 비가 쏟아지자 모두 흙 위로 기어 나옵니다. 바닷물인 줄 알고 속았던 거죠. 빗물이 스며들자 갯벌 위로 올라온 조개들이 허옇게 입을 벌린 해골처럼, 신음소리 들리지 않는 킬링필드의 압권. 정확한 수치는 파악하기 어렵지만 수십만 마리 도요새가 새만금에서 떼죽음을 당했어요. 제대로 먹지 못한 도요새는 남방으로 향하다가 기력이 떨어져 바다에 빠져 죽었고요.
생태계가 보호되고 그 곁에 푸른 숲에서 새만금 잼버리가 열렸다면 얼마나 좋았겠어요. BTS도 부러워할 매혹의 도요새 군무를 보여드릴 수 있었을 텐데 말이죠. 갯벌에 흰발농게도 허공에 두 손 휘저으며 환영했겠죠.
무능 무책임한 정부, 정치계와 토건개발 카르텔의 비리요? 저희는 잘 모르지만, 그 이전에, 왜 생명이 아직도 죽어가는 새만금에서, 생명을 중시한다는 스카우트 청소년들의 잼버리를 연다는 발상을 했는지요. 저희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요. 세계 최대의 간척지인 세계 최대의 생명학살지에서, 세계 최대의 잼버리를 시도했다가 ‘가이아의 복수’를 당한 꼴이 아닌지요.
지금 남은 수라갯벌에 새만금 신공항을 짓는다고, 군산에 사는 분은 불안하대요. “바로 옆에 군산비행장도 적자인디 머땀시 신공항 짓는다는 거여? 중국 겨냥하려구 근처 미군비행장을 늘리는 군사공항 아니여?”
사람들 불안해하건 말건, 저희 도요새는 그저 다만 비행기와 저희들이 충돌해서 사고 날까 걱정이죠.
“너무 아름다운 것을 본 죄.”
‘수라’에서 이 말이 몇 번 나오는데, 수라갯벌을 하늘에서 날면서 보면, 눈 아릴 정도로 아름답게 수놓은 비단천이에요. 수라갯벌이나 우포늪은 지구의 변두리이면서 중심이며 지구의 허파래요. 일회용컵을 쓰지 않는 개인적 환경운동도 중요하지만, 정치가와 토건업자들이 결단해야 한대요. ‘새만금 잼버리’라는 망신살도 씻어야겠지만, 이렇게 가다간 진짜 재앙이 온대요.
‘수라’ 엔딩 크레딧 꼭 보세요. ‘날고 기는 배우들’이 나와요. 농게·검은머리갈매기·생합·저어새·고라니·개개비, 제 이름도 나오걸랑요. 이거 보면서 몇몇 사람은 울었대요. 멸종 위기종이 많아서 그러나? 저희도 멸종위기종이에요. 수라갯벌 살리셔요. 비단천 수라갯벌은 다음 세대에 큰 선물일 거예요. 세계에 내놓을 자랑거리 될 거에요.
김응교 시인·문학평론가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안 좋은 일' 당한 89년생…무심코 켠 PC서 목격한 좌절 | 중앙일보
- 사단장·하급간부, 누구 빼려했나…軍 뒤집은 해병수사 항명 파동 | 중앙일보
- 월1600만원 생활비로 아내는 성매매…과로사한 '기러기 아빠' | 중앙일보
- "한국어 3급은 유치원 수준인데"…'유학생 30만' 관리 어쩌나 | 중앙일보
- 김연경 소속사 "악의적 글 강경 대응…어떤 경우도 선처 없다" | 중앙일보
- 블핑 리사, 루이뷔통 회장 아들과 또 열애설…이번엔 공항 포착 | 중앙일보
- 의료 면허도 없이…"서울대 상위 1%" 내세운 '왕의 DNA' 대표 | 중앙일보
- "50억 건물주 됐다"…70억 로또 당첨된 직장인 7개월 만 근황 | 중앙일보
- 대구 튀르키예 여성 칼부림…같은 국적 30대男 찔러 살해 | 중앙일보
- 20대女 2명, 50대男과 모텔서 마약…여성 1명 숨졌다 |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