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년 전 원조 걸그룹 ‘저고리시스터’ 아십니까
“립싱크도, 미디(전자악기)도 없던 시절의 ‘미친’ 무대가 한국음악의 역사를 열었어요. 그렇게 살아온 분들이 60·70대에도 여전히 음악을 하고 있죠. 후배들이 세계적으로 판치는 때에 그런 선배들을 조명하고 싶었어요.”
뮤지컬 스타 박칼린(56·사진) 음악감독이 K팝 걸그룹의 선조들을 쇼 무대 위에 부활시켰다. 쇼 뮤지컬 ‘시스터즈(SheStars!)’가 다음 달 3일부터 서울 종로구 홍익대 대학로아트센터에서 초연한다. 전수양 작가와 공동 극본을 맡아 80년 넘은 걸그룹 역사를 소환했다. 9일 서울 청담동에서 만난 그는 “십수 년 준비한 숙원사업을 풀었다”며 웃었다.
우리 역사 속 최초의 걸그룹은 1935년 조선악극단 여성단원으로 구성된 ‘저고리시스터’다. 그 멤버이자 ‘목포의 눈물’의 가수 이난영은 1953년 자신의 두 딸과 조카로 ‘김시스터즈’를 만들어 미국에 진출시켰다. 1960년대 윤복희의 ‘코리안 키튼즈’, ‘울릉도 트위스트’를 히트시킨 ‘이시스터즈’, 쌍둥이 걸그룹 ‘바니걸스’, 인순이의 ‘희자매’ 등 걸그룹 멤버 18인의 인생사가 히트곡과 함께 시대순으로 교차한다.
일제 순사들 앞에서 이난영이 민요 ‘아리랑’을 섞어 부른 ‘처녀합창’이 무대를 연다. 한국전쟁 중 주린 배를 채우려 노래한 윤복희는 루이 암스트롱 등과 공연하는 한류 스타가 된다. 김시스터즈의 ‘유 아 마이 선샤인’을 라디오로 듣던 수도여고 3학년 김명자(김희선으로 개명)는 이시스터즈로 데뷔한다. 이시스터즈의 ‘울릉도 트위스트’에 맞춰 춤추던 김인순(인순이)은 훗날 희자매를 결성한다. 차별을 딛고 음악으로 꽃피운 인순이의 삶은 ‘거위의 꿈’에 담았다.
박 감독은 “음악은 한국음악저작권협회에 돈을 내면 되는데, 선생님들 스토리는 함부로 쓸 수 없었다. 돌아가신 분 빼곤 다 직접 만나 뵀다”며 “이 프로젝트를 미리 알고 있던 윤복희 선생님은 ‘왜 찾아왔어. 그냥 (공연)해’ 하셨다. 나머지 분들은 전화번호 구하는 것부터 난제였다”고 말했다.
그는 또 “바니걸스 고재숙 선생님은 같이 활동했던 언니(고정숙, 1955~2016) 얘기를 하며 우셨다. 대중에게 잊힌 채로 먼저 떠난 걸 슬퍼한 것”이라며 “대부분 한국음악 역사의 일부로 자신들 이야기를 뮤지컬 무대에 올린다는 제안을 반겨줬다”고 전했다.
그는 “연습하다가도 ‘선생님, 그때 오디션 뭐 입고 가셨어요’ 등등 수시로 전화드렸다. 그 과정이 즐거웠고, 또 매번 울컥했다”며 “연주자들도 눈물을 글썽였다. 그분들 스토리가 결국 지금 우리 얘기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시스터즈’는 특정 걸그룹이 아닌, 무대 위 삶 자체가 주제다. 등장 걸그룹은 음악 역사상 두드러진 장면을 되짚어 선별했다. 공연마다 유연·신의정·김려원·선민·하유진·이예은·정유지·정연·이서영·홍서영 중 6명의 배우가 여러 배역을 바꿔가며 맡는 방식을 택했다. 남자배우로는 황성현이 해설자 겸 멀티맨으로 출연한다.
선곡도 드라마가 먼저였다. 박 감독은 “이시스터즈는 가장 많이 리메이크된 곡을, 코리안 키튼즈는 누구도 못 따라갈 에너지를 발산했던 공연 장면 위주로 썼다”고 설명했다. 걸그룹 역사는 그렇게 현재로 이어졌다. 올해 66세 인순이는 99번째 뮤지컬 무대에 서고, 77세 윤복희는 여전히 현역으로 노래한다.
박 감독은 “한국 현대사의 사건들 속에 어떤 음악이 있었고, 어떤 가수가 있었는지 기리고 싶었다”며 “한 명의 수퍼스타가 아닌 무대 위의 삶, 동료애가 중요했다. 배우들도 선배들이 이어온 거대한 역사 속에 자신들도 놓여있다는 걸 느끼길 바랐다”고 말했다.
‘시스터즈’는 최근 한국 창작 뮤지컬 소재로 서구 역사·인물이 늘어나는 추세 속에서 등장한 매우 의미 있는 작품이다. 박 감독은 “1920년대 이후 한국을 다룬 외국자료를 뒤졌다. 신민요부터 한국음악 역사와 변천사를 조사한 미국 논문이 있었다”고 말했다. 서울대 대학원에서 국악 작곡을 전공한 그가 음악감독을 맡은 첫 뮤지컬은 ‘명성황후’였다.
한국·리투아니아계 미국인인 자신을 가리키며 “이렇게 생긴 사람이 한국 소재 작품을 하고, 한국 사람들은 외국 소재 작품을 한다”는 농담으로 운을 뗀 그는 “지금 한국 관객에게 뭐가 필요한지 생각해서 작품을 하지는 않는다. 창작자는 이기적이다. 내 삶에 꽂히는 뭔가에 눈이 확 뜨인다”고 말했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안 좋은 일' 당한 89년생…무심코 켠 PC서 목격한 좌절 | 중앙일보
- 사단장·하급간부, 누구 빼려했나…軍 뒤집은 해병수사 항명 파동 | 중앙일보
- 월1600만원 생활비로 아내는 성매매…과로사한 '기러기 아빠' | 중앙일보
- "한국어 3급은 유치원 수준인데"…'유학생 30만' 관리 어쩌나 | 중앙일보
- 김연경 소속사 "악의적 글 강경 대응…어떤 경우도 선처 없다" | 중앙일보
- 블핑 리사, 루이뷔통 회장 아들과 또 열애설…이번엔 공항 포착 | 중앙일보
- 의료 면허도 없이…"서울대 상위 1%" 내세운 '왕의 DNA' 대표 | 중앙일보
- "50억 건물주 됐다"…70억 로또 당첨된 직장인 7개월 만 근황 | 중앙일보
- 대구 튀르키예 여성 칼부림…같은 국적 30대男 찔러 살해 | 중앙일보
- 20대女 2명, 50대男과 모텔서 마약…여성 1명 숨졌다 |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