짙은 계곡 속 ‘쉼표’가 안겨주는 청량한 휴식
절기상 입추(立秋·8일)가 지났지만 여전히 후텁지근하다. 제6호 태풍 ‘카눈’이 지나간 뒤 곧바로 폭염 특보가 발령됐고, 여름철 더위는 9월 중순인 추분(秋分·9월 23일) 전후까지 지속될 전망이다. 더위 속 늦은 휴가를 즐기거나 잠시 지친 몸과 마음을 다독이려면 드라이브가 제격이다. 시원한 계곡이 더해지면 금상첨화다.
볼거리·즐길 거리가 많은 강원도 정선이 손짓한다. 그 가운데 화암팔경이 으뜸이다. 1경인 화암약수를 비롯해 4경인 화암동굴, 7경인 몰운대, 8경인 광대곡 등을 품고 있다. 화암동굴을 중심으로 반경 5㎞ 내에 화암 1~8경의 비경이 펼쳐진다.
화암동굴은 1922년부터 광복 때까지 금을 캐던 천포광산이라 불리던 동굴로, 길이 1803m다. 동굴 중간에 넓은 광장이 있고, 광장 주변에 종유석과 석순·곡석·석화 등 다양한 볼거리가 많다. 광장 남서쪽에는 둘레 5m, 높이 8m의 대석주가 서 있고, 동쪽 벽과 천장에는 기기묘묘한 석순과 종유석이 장식처럼 매달려 있다. 동굴 내부가 시원해 더위를 피하기에 제격이다.
화암동굴을 빠져나와 조금만 가면 화암(畵岩)을 뜻하는 ‘그림바위마을’이다. 마을로 들어서면 화암팔경을 주제로 한 벽화와 조형물이 골목과 담장을 장식하고 있다. 2013년 ‘반월에 비친 그림바위마을’ 공공미술 프로젝트로 설치한 작품이다. 옛 변전소를 개조한 작은 미술관 ‘그림마을예술발전소’가 주도했다.
마을 주변에는 화암약수와 2경 거북바위, 3경 용마소가 자리하고 있다. 화암약수는 1910년 이 마을 주민이 군의산(923m) 구슬봉 바위 아래에서 청룡·황룡 두 마리가 서로 엉켜 몸부림치다 승천하는 꿈을 꾼 뒤 그 장소를 찾아가 땅을 파보니 바위틈에서 물이 솟구쳐 약수가 됐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눈병·위장병·피부병 등에 좋다고 알려진 탄산수인데 톡 쏘는 맛이 일품이다. 약수터 주변 산책로는 호젓하게 걷기에 그만이다. 광활한 반석 위로 맑은 물이 흐르는 용마소는 경치 좋은 휴식처로 주목받고 있다. 용마소 상류 나무 사이에서 거북바위가 내려다보고 있다.
그림바위마을 끝에 화표주가 우뚝하다. 보는 방향에 다른 모양으로 보이는 바위 두 개가 솟아오른 거대한 돌기둥이다. 산신령이 이 기둥을 신틀 삼아 짚신을 삼았다는 전설이 서려 있다.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 ‘화표주도’와 닮았다.
화표주부터 7경인 몰운대까지 이어지는 계곡은 ‘정선 소금강’이다. 해발 1000m에 가까운 고산들이 겹겹이 둘러싼 협곡 사이로 절경이 펼쳐진다. 금강산 만물상의 경치를 빼닮았다는 소금강은 4㎞ 남짓 이어진다.
소금강을 지나면 몰운대다. 도로 옆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숲길을 5분 정도 걸으면 수십 명은 족히 앉을 수 있는 암반이 나타난다. 몰운대 정상이다. ‘어천에서 피어오른 안개에 잠겨있는 듯하다’ 해 몰운(沒雲)이란 이름이 붙었다.
몰운대 절벽 끝에 결연히 서 있는 수령 500년 넘는 소나무 고사목이 낭떠러지 위 바위틈을 비집고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풍경에 긴장감을 불어넣고 있다. 한 시인은 ‘죽은 척하는 소나무’라 표현했다. 몰운대 바로 옆에 작은 정자가 있어 바람에 땀을 씻어내기에 좋다.
다음은 8경인 광대곡이다. 광대산(1019m) 서편 자락을 흐르는 약 4㎞ 계곡으로, 하늘과 구름과 땅이 맞붙은 신비의 계곡이다. 사람들에게 가장 덜 알려져 원시 자연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찾아가는 길이 쉽지 않다. 태곳적부터 부정한 사람들이 출입하는 것을 금하는 전설도 품고 있다. 광대사에서 1.7㎞ 떨어진 영천폭포까지 탐방로가 개설돼 있다. 촛대바위, 층대바위, 골뱅이소, 영천폭포 등 바위와 폭포·소(沼)가 이어진다.
초입에 숲길 안내판이 있어 탐방로도 그렇겠거니 여겼다가는 낭패를 겪을 수 있다. 탐방로는 수풀에 가려 제대로 보이지 않는 데다 험한 바위투성이 계곡을 여러 차례 가로질러야 한다.
탐방로로 접어들어 조금만 걸으면 길은 바로 계곡으로 내려간다. 선녀폭포를 지나면 본격적으로 폭포와 소가 이어진다. 떨어지는 물줄기가 바위를 나선형으로 깎으며 돌아 흐르는 골뱅이소가 나타난다. 쉼표(,) 모양을 한 골뱅이소 옆에는 널찍한 암반이 있어 휴식을 안겨 준다.
그 뒤로 바가지소와 영천폭포가 있지만 계곡을 가로지르는 탐방로가 폭우에 유실돼 있다. 계곡물이 많을 때는 더 이상 진행하지 않는 것이 안전하다. 바가지소는 커다란 표주박 모양으로 계곡물을 가득 담고 있는 물웅덩이다.
길 훼손된 영천폭포 나홀로 탐방 금물
곤드레밥·콧등치기·올챙이국수… 별미
영동고속도로에서 중앙고속도로로 갈아타고 제천나들목에서 나와 38번 국도로 영월을 지나 남면 교차로에서 59번 국도로 갈아타고 정선읍 쪽으로 향한다. 정선읍 못미처 덕우삼거리에서 424번 지방도로로 갈아타고 가면 화암면이다. 영동고속도로 진부나들목에서 빠져 59번 국도를 타고 정선읍을 지나 덕우삼거리에서 좌회전하면 424번 지방도로다.
광대곡 영천폭포는 계곡 입구에서 1.7㎞ 정도 떨어져 있다. 찾는 사람이 거의 없고 탐방로가 훼손돼 일행과 함께 가는 것이 좋다. 병방치스카이워크, 정선5일장, 아우라지, 나전역 등도 둘러볼 만하다.
정선은 이름난 토속 음식이 많다. 대표 음식이 곤드레밥이다. 곤드레나물은 단백질, 칼슘, 비타민A 등이 풍부해 영양 보충과 성인병 예방에 좋은 착한 먹거리로 꼽힌다. 된장이나 양념장을 넣어 비벼 먹으면 구수하고 은은한 맛이 일품이다.
메밀로 반죽해서 만든 면이 쫄깃쫄깃 탄력이 있어 ‘면을 후루룩 마시면 면발이 콧등을 친다’고 해서 이름 붙은 콧등치기와 찰옥수수나 메옥수수를 삶은 뒤 맷돌에 갈아 눌러 만들어 올챙이를 닮은 올챙이국수도 별미다.
정선=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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