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영혼을 위해 함께 우는 사역자… 작은 공간 속 커지는 꿈 ‘힐링처치’
양평 주품동산교회 최다윗 목사
하나님이 사명자로 택하시면 세월이 지나도 반드시 하나님께 돌아온다. 때늦은 나이에 하나님께 부름받고 미국에서 신학공부를 마치고 돌아와 코로나가 한창이던 2021년 경기도 양평에 주품동산교회를 세웠다. 말이 교회이지 아직은 아담한 채플룸과 쉐어룸이 전부다. 찬양으로 상처를 치유하고 평안히 쉬며 깊이 주님을 만나는 공간으로 꾸몄다. 힐링처치 사역을 펼치는 최다윗(61)목사를 5일 서울 영광교회에서 만났다.
최 목사는 일반교회 사역과는 다르게 찬양중심의 힐링처치 사역을 펼치고 있다. 삶 가운데 힘들고 지친 사람들과 함께 찬양중심의 예배를 드리는 사역이다. 그리고 방문하는 성도들 또는 초청하는 교회의 공예배나 집회에서 찬양을 통해 치유와 회복의 역사들을 경험하고 있다.
필자가 최 목사를 만난 계기는 지인이 소개한 찬양곡 때문이다. 목양실에서 설교 준비를 하다가 지인이 소개한 찬양곡을 유튜브를 통해 듣게 됐다. ‘주님이면 충분합니다(작사 작곡 최다윗)’다. 이 곡을 50번 정도 반복해 들은 것 같다. 나도 모르게 마음 깊은 곳에서 나오는 벅찬 감사의 눈물이 흘렀다. 이것이 계기가 돼 주일예배까지 초청해서 온 성도들과 함께 은혜의 시간을 가졌다.
최 목사는 중학교 때부터 작곡을 하고 대학가요제에 나가 무대에 서는 꿈을 가지고 고등학교 내내 음악에 미쳤었다. 그러나 가정 형편이 어려워 대학 입학을 포기하고 그토록 대학가요제 무대에 서고 싶었던 꿈도 접게 되었다. 일반 대중음악으로 돈 벌 수 있는 기회도 있었지만 모두 거부하고 교회에서 찬양사역에 힘써왔다. 극동방송 주최 복음성가경연대회에도 참가해 본선에 진출, 실력을 인정받기도 했다.
최 목사는 “고등학교 때 교회 학생회 여학생 오빠가 가수 조용필씨 밴드 ‘위대한 탄생’ 기타리스트였다. 그때 기타를 배우고 싶어 매일 아이스크림을 사들고 찾아가서 기타를 가르쳐 달라고 졸랐다. 그런데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찾아가 결국 허락을 받아 배우기 시작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고등학교에서는 기타를 제일 잘 연주하는 학생으로 이미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현역 프로에게 본격적으로 배우게 되니 놀랍게 실력이 향상됐다. 어떤 곡이든 들으면 그 자리에서 바로 연주할 수 있는 실력까지 되었다. 한 날은 음악 기획사를 하는 분이 실력을 보고 당시 밤무대가 유행할 때 명동 호텔의 지하 클럽으로 불렀다. 이유는 밤무대에서 연주를 해달라는 제안 때문이었다. 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흔들리기도 했지만 당시 학생회 회장을 하고 있었기에 마음이 허락하지 않아 거절했다”고 했다.
그때 최 목사는 “처음으로 밤무대 클럽을 보고서 ‘이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이후 일반 대중음악을 꿈꿔 왔던 것을 모두 내려놨다. 이제 앞으로 하나님이 기뻐하는 찬양곡만 하겠다는 마음을 가졌다. 만약 그때 클럽 현장에 가보지 않았다면 밴드에 미쳐서 계속 일반 대중음악을 했을 것이다. 이때부터 교회에서 하는 모든 찬양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중고등부 학생회 문학의 밤이 엄청 인기가 있었다. 그래서 학생회를 부흥시키려고 1년 전부터 준비했다. 그러나 목사님이 보수적이어서 걱정이 됐는데 부장 집사님이 걱정하지 말고 준비하라고 해서 당시 유명한 대광고등학교 밴드팀까지 초청했다. 중랑구 인근 중·고등학교와 골목마다 포스터를 붙였다. 문학의 밤 행사 당일 교회에 앉을 곳이 없도록 학생들이 가득찼다. 행사 중간쯤 대광고등학교 밴드부가 출연할 시간인데 갑자기 담임목사님이 들어와 큰소리로 ‘무슨 난리냐’로 화를 내시며 ‘모두 돌아가라’며 해산시켰다. 그 이후로 학생들이 시험들어 뿔뿔이 모두 흩어졌다. 이후 나는 군대갔다온 뒤 누나가 다니는 금란교회로 옮겼다. 그때 금란교회가 김홍도 목사님이 부임해오시면서 놀랍게 부흥할 때였다. 청년회 수련회 때 주님을 만나고 내게 주신 음악적 재능을 통해 복음을 전하겠다고 하나님께 서원했다. 이후 교회에서 찬양부장을 맡겨줘 열심히 섬겼다”고 했다.
청년 이후에는 YMCA에서 지도자교육을 받고 전국의 문화센터와 백화점에 노래교실과 레크레이션 프로그램을 최초로 개설하는 일을 했다. 이때부터 전국에 노래교실 붐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이벤트 기획사를 운영했다. 주변에서는 신학을 하라는 권면도 있었지만 사업이 너무 잘되어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나 이후 사업은 갈수록 점점 어려워지고 결국 정리하고 목회자가 되기를 결심하고 미국 유학을 택했다.
최 목사는 “사역의 비전은 ‘한 영혼을 위해 울자’이다. 최근 한 영혼이 너무도 귀한 것을 깨달았다. 하나님의 마음으로 지체들을 품고 긍휼을 구하는 사역에 힘쓸 것이다. 그리고 어디든 부르면 달려가 함께 찬양하며 예배하는 자로 쓰임받고 싶다. 쉽지 않은 코로나 시기에 사역을 시작했지만 마음만큼은 뜨겁다. 주품동산이 단 한명이라도 아픔과 상처가 치유되고 하나님께 돌아올 수만 있다면 언제든지 함께 찬양하며 예배하는 공간으로 쓰임받고 싶다”고 밝혔다.
김변호 목사 jonggy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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