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0억 내더라도 접겠다" 중국에 막힌 인텔 '파운드리 묘수'
인텔이 결국 이스라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인 타워세미컨덕터(타워) 인수를 접었다. 파운드리 경쟁력 강화를 위해 내놓은 ‘회심의 카드’였지만 중국 정부의 승인을 받아내지 못하면서다. 반도체와 금융투자 업계에서는 앞으로 적극적인 반도체 인수합병(M&A)이나 신규 투자가 갈수록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5일(현지시간) 인텔은 “오늘 타워와 상호 합의해 양수도 계약을 종료하기로 했다”고 자사 뉴스룸을 통해 공식 발표했다. 인텔은 지난해 2월 15월 54억 달러(약 7조2000억원)를 들여 타워를 인수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주요 국가 승인에 1년가량 걸릴 것으로 보고 계약 기한을 올해 2월 15일로 설정했다. 하지만 유독 중국의 시장 규제 관리국(SAMR) 승인이 떨어지지 않아 그동안 합병 기한을 6월 15일→8월 15일로 두 차례 연장한 바 있다.
이번에도 중국 SAMR은 꿈쩍도 하지 않았고, 인텔은 합병 계약 종료를 선언한 것이다. 인텔은 “타워에 3억5300만 달러의 수수료를 지불할 것”이라고 밝혔다. 5000억원 가까운 비용을 내더라도 계약을 종료하는 게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로이터통신은 이날 “인텔이 계약을 추가로 연장했더라도 중국이 거래를 승인했을지는 불확실하다”고 보도했다.
사실 파운드리 시장에서 타워의 시장 점유율은 1.3%로 미미한 수준이다. 차량용 반도체와 무선 주파수, 전력관리 반도체, 이미지센서 등을 주로 생산한다. 하지만 미국 나스닥에 상장했고, 이스라엘·미국·일본 등에 제조 공장을 두고 있는 등 레거시 공정 분야에서는 입지를 단단히 구축한 기업으로 꼽힌다. 파운드리 시장에서는 TSMC(60.1%)와 삼성전자(12.4%)가 점유율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어 나머지 업체의 존재감은 상대적으로 미약하다.
타워는 7위 업체다. 그런데 바로 위에 SMIC(5위)·화홍(6위) 등 중국 업체가 자리를 지키고 있다. 대만 과기신보는 이에 대해 “만일 인텔이 타워를 인수하면 레거시 공정 개발을 위해 현지 파운드리를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중국에 강력한 경쟁자가 될 것”이라며 “인수에 동의하는 것은 현지 정책과 맞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반도체 업계 M&A는 끝났다?
인텔의 타워 인수가 무산되면서 향후 반도체 업계에서 굵직한 M&A를 보기 힘들 거라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주요 각국에서 자국 반도체 산업 육성에 집중하는 가운데 M&A를 지렛대 삼아 크게 주목받는 걸 서로 원치 않기 때문이라는 견해에서다.
인텔이 여기에 딱 들어맞는 사례다. 타워 인수 실패로 인텔의 ‘파운드리 드라이브’에는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인텔은 2021년 인텔파운드리서비스(IFS)를 별도 조직으로 설립했다. 그러면서 성장 가능성이 큰 차량용 반도체를 집중 공략했다. 타워 인수도 이 같은 계획의 일환이었다. 하지만 중국의 ’몽니’에 한순간에 물거품이 된 것이다. 앞서 엔비디아 역시 영국 반도체 설계자산 기업인 ARM을 인수하려 했지만, 반독점 규제 승인의 벽을 넘지 못했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등 국내 기업도 M&A를 통해 시장 경쟁력을 키우는 방안이 쉽지 않을 거라는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반독점 규제는 그야말로 시장의 독점적 지위에 대한 영향력을 평가해야 하지만 이를 떠나서 자국 반도체 산업에 어떤 영향력을 줄지가 평가 기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김용석 성균관대 전자전기공학부 교수는 “M&A마다 상황이 다를 수 있지만 각국이 자국 기업의 이익과 관련해 판단하는 경향이 더욱 짙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박해리 기자 park.hae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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