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서자 탄성 터져나온 이 곳, 꼭 한번 가보세요
2023년 4월부터 42일 동안 스페인(바르셀로나, 산세바스티안, 빌바오, 마드리드, 세비야, 그라나다), 포르투갈(포루투, 리스본), 모로코(마라케시, 페스, 쉐프샤우엔, 탕헤르)의 12개 도시에서 숙박하며 여행했습니다. 단체관광 마다하고 은퇴한 부부 둘이 보고 듣고 느꼈던 이야기를 씁니다. <기자말>
[김연순 기자]
마드리드에 5일간 숙박하는 동안 하루 당일치기로 인근 세고비아와 톨레도를 가보기로 했다. 인터넷 검색해 차량을 포함한 한국인 가이드를 신청해 두었다. 아침 9시, 프라도 미술관 안에 있는 고야 동상 앞에서 가이드를 만났다. 모이고 보니 혼자 온 사람도 있고 엄마와 딸, 혹은 친구끼리, 그리고 우리처럼 부부가 온 사람들, 다 합해 7명이다.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미니버스에 올랐다. 세고비아까지는 한 시간 반 정도 걸렸다.
▲ 세고비아 알카사르 |
ⓒ 김연순 |
돌들이 서로 기대어 있는 아치형 수도교
▲ 이천여년 전 로마인이 만든 수도교 |
ⓒ 김연순 |
수도교는 맨 위 상단에 홈을 파서 물이 흐를 수 있게 수로를 만든 것이다. 이 수도교가 건설되기 전까지는 먼 곳에서 힘겹게 물을 길어다 먹었단다. 주거지 가까운 곳까지 물을 운반하는 다리(길)가 생겼으니, 얼마나 삶의 질이 좋아졌겠는가.
2만여 개의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이 건축물은 모든 접착제 없이 오로지 아치 구조로만 만들어져 있다. 돌들이 서로를 의지하며 기대어 있는 듯 보인다. 잠시 눈을 감고 기둥의 돌들을 어루만져 보았다. 오래전의 그들, 2천여 년 전 로마인들의 숨결이 느껴지는 것 같다. 마치 내게 "그래. 여기까지 잘 왔어" 속삭이는 것 같다. 이런 시간이 좋다. 오래된 유적지와 유물에서 느껴지는 찌릿한 감동이 있다. 역사 속의 과거와 현존하는 내가 만나는 이 시간, 한없이 감개무량하다.
1884년까지 이 수도교를 통해 물이 공급되었다. 요즘은 건기라 물이 없지만 비가 많이 오면 지금도 수도교에는 물이 흐른다. 안타깝게도 예전의 수도교에 문제가 생겼을 때, 납으로 물길을 보수해 버렸다. 그 결과 납중독이 생겼고 이후 식수로 사용은 불가능해졌다고 한다. 지금도 비가 많이 오면 물이 흐르기도 하지만 여전히 마실 수는 없다. 입구를 쇠창살로 막아 두었다.
점심시간이 되었고 메뉴를 선택해야 했다. 세고비아에 오면 누구나 한 번쯤 들러 먹는다는 식당이 있다. 새끼 돼지 통구이 식당이다. 대를 이어 영업을 해오고 있고 예약 없이는 가기 어려울 정도로 인기란다. 고기의 육질이 부드럽다는 걸 보여주려는 퍼포먼스로 칼 대신 접시로 고기를 잘라 준다고 한다. 가이드는 여기를 가거나 아니면 한국인이 자기 집에서 만들어 주는 가정식 식사,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
고기를 먹지 않는 나는 새끼 돼지 통구이 식당은 아예 들어가지도 못한다. 상상만 해도 끔찍한데 어찌 들어가겠나. 만약 그리 결정되면 남편과 나는 따로 식당을 찾아야겠다 싶었다. 투어 멤버 7명이 의논한 결과, 다행히 한국인 가정식 식사로 결정되었다. 고기를 먹기는 하지만 새끼 돼지를 통구이 한다는 게 너무 잔인한 것 같다고들 말하며 가정식 한식으로 기울었다. 참으로 다행이었다.
30분 정도 이동해 도착한 한국인 가정집은 정원이 잘 가꾸어진 아름다운 집이었다. 거기서의 가정식 식사는 대만족이었다. 각종 나물에 전, 불고기와 생선까지 마치 생일날 밥상처럼 화사했다. 게다가 와인에 후식으로 커피와 사과까지, 어느 누군들 좋아하지 않을 수 있겠나.
오랜만에 한식을 맘껏 먹을 수 있는 데다, 거기 모인 사람들이 다 한국인이니 맘껏 한국말 해도 되고 마냥 행복했다. 처음의 어색함은 온데간데 없이 수다와 웃음꽃이 가득한 식사 시간이었다. 여행 내내 맨날 남편하고만 단둘이 말하다가 다른 사람들과도 말을 섞으니 신선한 공기를 마시는 듯했다. 그렇지, 역시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지 새삼 느꼈다.
도시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이라니
▲ 톨레도 대성당 전경 |
ⓒ 김연순 |
톨레도 대성당은 스페인 3대 성당 가운데 하나일 정도로 규모가 크다. 1226년 이슬람 세력을 물리친 것을 기념해 이슬람 모스크를 허문 바로 그 자리에 짓기 시작, 1493년에 완공했다.
고딕 양식의 이 성당은 정면에 세 개의 문이 있다. 정면에서 볼 때, 가운데 문은 '용서의 문' 오른쪽 문은 '심판의 문' 왼쪽은 '지옥의 문'이다.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깊숙한 곳에서부터 아, 소리가 나며 입이 절로 벌어졌다. 장대하고 웅장하고 화려했다.
대성당의 가운데엔 나무로 된 등받이 의자들이 양옆으로 길게 늘어서 있는데 바로 성가대석이다. 호두나무로 만들어진 50개 의자 하나하나의 장식이 너무도 정교하고 아름답다. 예수와 성모마리아의 일대기와 가톨릭의 이슬람 정복 과정을 묘사하고 있다.
성가대석 맞은편으로 다가가니 벽의 한 면 전체가 황금색이다. 예수와 성모마리아의 일생을 그린 조각품으로 바탕의 나무엔 황금을 칠하고 인물들은 다양한 색으로 채색한 그야말로 화려함의 극치다. 어마어마한 규모도 놀랍지만, 기도하는 손 하나, 머리카락과 수염, 옷의 주름 하나하나가 자연스럽다. 이게 사람의 손으로 가능한가 싶을 정도로 세밀함과 정교함이 극에 달한다.
▲ 바로크 양식의 트란스파렌테 |
ⓒ 김연순 |
화려한 대성당 안에 특히나 눈에 띄는 곳이 있다. '트란스파렌테'라는 제단인데 18세기 바로크 양식으로 나르시스 토메의 작품이다. 조각과 그림으로 장식된 이 제단의 천장 한편에는 채광창의 역할을 하는 천창이 뚫려있다. 천정에서 나오는 듯 화사한 푸른빛은 주위와 대조를 이루며 경외감을 일으키게 한다. 그 푸른빛에 빠져 한참을 서서 보고 또 보았다. 푸른빛 창으로 마치 내 몸이 빨려 들어갈 듯 느꼈다.
옆으로 돌아가니 화려하지만 조금 전과는 다른 부드러운 느낌의 천장화가 보인다. 루카 조르다노라는 화가가 10년에 걸쳐 그렸다고 한다. 천장화의 끝이 만나는 벽에는 빨간색 옷을 입고 있는 예수의 그림이 보인다.
▲ 톨레도 대성당 천장화와 엘 그레코의 ???????'그리스도의 옷을 벗김' |
ⓒ 김연순 |
대성당을 둘러보고 나오니 그 화려함과 웅장함에 눌려 말문이 막혔다. 잠시 돌계단에 앉아 머릿속 가득한 화려함의 기운을 얼굴을 스치는 시원한 바람에 식혔다. 화려한 아름다움도 좋지만 오랜 시간 속에 켜켜이 쌓인 소박하고도 자그마한 스토리도 아름답다. 이 두 가지를 적절하게 안배하며 남은 여행지를 둘러봐야지, 생각했다.
▲ 톨레도 파라도르에서 본 톨레도 전경 |
ⓒ 김연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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