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이탈리아 비전: 파르네시나 컬렉션' 답이 아닌 질문인 예술을 만나다 #요즘전시
지난 5월, 오랫동안 미루던 이탈리아 일주를 다녀왔다. 고대의 찬란한 문명이 곳곳에 남아있는 로마, 순간의 흔적을 고스란히 품은 폼페이부터 중세 도시의 모습이 고이 보존된 오르비에토, 시에나, 아시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이 자리한 볼로냐, 르네상스의 보고 피렌체에 이르기까지 이탈리아 곳곳에 문화유산이 수천년 역사를 머금고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여행이 기억에 남았던 이유는 이탈리아의 대표 화랑인 콘티누아(Galleria Continua)의 본고장을 우연하게 마주했기 때문이리라.
콘티누아는 토스카나 주의 산 지미냐노(San Gimignano)에서 3인의 친구가 의기투합해 시작되었다. 1990년 오래된 영화관에 문을 연 갤러리는 고대 예술이 숨쉬는 환경에서 현대 미술에 연속성을 부여하려는 의도에서 시작되었다. 이내 베이징, 쿠바 하바나, 파리, 두바이까지 확장해 나갔다.
작은 중세 도시에서 이토록 훌륭한 현대미술공간을 만날 수 있었던 저력은 이탈리아 미술사는 찬란함의 연속이라는 것에서 비롯된 것이 자명하다. 고대 로마부터 철학, 문학, 과학과 궤를 함께해왔으며,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에 이르는 르네상스 시대 거장의 걸작은 여전히 깊은 울림을 선사한다. 인간 중심주의 사상은 무명의 장인을 이름난 예술가로 만들어, 다양한 개성을 묘사하는 발판을 마련했고, 이 시기 발명된 원근법은 새로운 지평을 열며, 서양 회화의 기초로 거듭났다. 20세기 미래주의, 아르테 포베라(Arte Povera)를 거쳐 현재에 이르는 이탈리아 미술은 다채로운 표현 양식과 개념을 역동적으로 풀어냈다.
이탈리아 근현대미술의 풍요로운 정체성을 기록한 〈위대한 이탈리아 비전: 파르네시나 컬렉션〉 순회전이 8월 20일까지 아트선재센터 스페이스 2에서 개최된다. 이탈리아 외교협력부 소장품 중 엄선된 근현대미술 대표작 70여 점을 한데 모은 전시다.
“내 인생에서 내디딘 모든 발걸음이 나를 지금 여기로 데려왔다”는 텍스트가 적힌 알베르토 가루티(Alberto Garutti)의 작품이 전시 입구에서 관람객을 맞이한다. 움베르토 보초니(Umberto Boccioni)의 미래주의 청동 조각부터 일상 속에서 흔히 만나볼 수 있는 거울을 활용한 아르테 포베라 운동의 대표 작가 미켈란젤로 피스톨레토의 회화에 이르기까지, 과거 답습에 얽매이지 않은 작가 63인의 장르를 넘나드는 전위적인 작품들이 자유롭게 펼쳐진다. 소리와 영상, 추상과 구상이 어우러지고, 특정 사조 하나에만 묶이지 않은 채 지속적으로 흐름을 짚어내며 관객과 호응한다.
83세 나이에도 현역으로 활발한 활동을 이어 나가며 이번 전시 기획에도 참여한 아킬레 보니토 올리바(Achille Bonito Oliva)는 전시 첫날 개최된 강연에서 “예술은 아이러니하게도 세상을 변화시키기에는 역부족”이라고 실토한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과정에 필요하지만 예술 그 자체가 현실을 담보할 수 없는 만큼, 어떻게 쓰임새 있는지에 대해서 회의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예술은 답이 아니라 질문이라 덧붙인 이 전설적인 큐레이터는 긍정적 낙관주의를 포기하기 원치 않았다. 민족 간 갈등, 자유와 기후 위기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위기의 시기를 살고 있는 현대인에게 그 어떤 선입견으로부터 해방되어 자유를 지향할 수 있도록 예술이 대화와 교육에 이바지해야 한다는 교훈을 선사한다. 노장의 위대한 지혜가 고스란히 스며든 전시를 놓치지 말고 만나보자.
장소 아트선재센터 스페이스 2
일시 2023. 7. 15 - 2023. 8.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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