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반도체 보조금 분배에 월가 동원…워싱턴서 팀 구성
기업 투자 의향서 검토, 대출 방안 마련까지
벤처캐피털 출신 장관, '세금 사용 신중' 언급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반도체지원법(CSA)'에 따른 보조금을 연내에 지원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월가 전문가로 구성된 팀이 보조금 배분을 위해 분주하게 작업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지역민심에 큰 영향을 끼칠 반도체 보조금 배분을 둘러싸고 중앙정부, 기업은 물론 지방정부들까지 과열양상을 보이면서 질서있는 배분을 위해 전문가들이 대거 투입된 것으로 풀이된다.
15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워싱턴DC 백악관 인근의 상무부 건물 한 켠에서 월가 출신 직원들이 팀을 구성해 반도체지원법에 따른 보조금 지급 관련 검토 작업을 하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지난해 8월 반도체지원법을 시행한 이후 전체 보조금 520억달러(약 69조원) 중 제조시설 투자에 지원하는 390억달러 지급 분배를 놓고 연내 보조금 지급을 목표로 업무를 진행 중이다.
상무부는 지난 2월 140명 규모의 '칩스포아메리카(Chips for America)' 팀을 만들었다. 이 중 월가 인력 30여명을 중심으로 팀 하나가 구성됐다. 팀원은 23~64세로 연령대가 다양하며 절반가량이 여성이라고 한다. 이 팀을 두고 정부 내 '스타트업'이라고 팀원들은 표현한다고 WSJ는 전했다.
미국 대형 투자사인 KKR 임원 출신인 토드 피셔가 팀을 이끌고 글로벌 컨설팅 업체 매킨지 파트너 출신의 사라 오로크, 세계 최대 사모펀드 블랙스톤에 있었던 파르하 파이살이 팀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골드만삭스 은행원 출신인 케빈 퀸과 스루얀 링가, JP모건 은행원이었던 매리 알렉스 스미스도 포함됐다.
시장과 경제학계에서는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나 스티븐 므누신 전 재무부 장관처럼 월가 출신이 행정부 내 고위직을 맡는 경우는 종종 있었지만, 이처럼 행정부 내 팀 전체가 월가 출신으로 채워지는 건 전례 없는 일이라는 평가를 하고 있다.
WSJ는 "미국의 반도체 산업을 살리기 위해 바이든 행정부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 규모의 정부 차원 부흥 정책을 시작한 상황에 자유 시장의 마스터(월가 인력)에게 의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 팀의 성과가 미국의 반도체 산업 재부흥을 성사할 수 있을지를 판가름할 초기 시험대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국 내에서는 정부 주도의 이러한 산업 부흥 정책이 성공을 거두기 어려울 것이라는 회의적인 전망이 이어지고 있다. 내년 대통령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자본의 효율성을 극대화해야 할 산업 정책이 표심으로부터 자유롭기가 쉽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결국 한정된 자원 속에서 일자리 창출을 약속하며 표심을 사로잡기 위한 도구로 활용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하지만 벤처캐피털 창업 경험이 있는 러몬도 장관이 월가와 유사하게 프로젝트 검토가 이뤄지도록 이 팀에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현재 상무부에 보조금 신청 의향서를 제출한 기업은 460여개인데, 개별 프로젝트를 맡을 담당자가 결정되면 우선 프로젝트 성공 여부를 먼저 평가하고 이후 바이든 행정부의 정치적 의제에 부합하는지 등을 확인한다. 이 과정에서 국방, 경제 등 정부 내 전문가와도 협력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단순히 배분뿐만 아니라 중장기적으로 보조금이 미국의 반도체 산업 육성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방안을 마련 중이다.
골드만삭스 출신이 링가가 이끄는 팀은 반도체 공급업체가 미국 내에서 보험사 등에서 장비, 지식재산권, 인프라 등을 담보로 대출을 받는 방안과 같이 자국 내에서 반도체 업체들이 자금을 조달할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또 블랙스톤 출신의 파이살이 이끄는 팀은 당장은 외국 기업들이 미국에 투자하는 것을 목적으로 보조금을 지급하지만, 장기적으로 미국 반도체 산업 자체가 성장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피셔 팀장은 "시장이 항상 완벽하게 작동하지 않는다"면서 "다른 국가에서 이로 인해 혜택을 보려 하고 있어서 (보조금이) 잘못 분배되는 것을 바로 잡으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민간 기업의 투자를 장려하고자 보조금을 지급하는 방법을 제대로 찾지 못한다면 우리는 성공을 거두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현진 기자 jhj48@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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