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 중 복귀, 군사작전 방불케 했다…잼버리 숨은 조력자
지난 8일 오전 충남 천안 단국대 천안캠퍼스에 비상이 걸렸다. 태풍 '카눈' 영향으로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야영장에서 조기 퇴영한 스리랑카 대원 170여 명을 수용해야 했기 때문이다. 단국대는 휴가 중이던 직원까지 출근했다.
단국대는 여름방학 중 비워 놓은 기숙사를 점검하고 문 닫았던 식당도 다시 열었다. 단국대는 12일까지 닷새간 이들을 수용했다. 단국대 측은 “정부와 지자체 방침에 따르긴 했지만 급하게 준비하다 보니 어려움도 많았다”고 설명했다.
갑작스러운 통보에 대학마다 전 직원 동원
2023년 새만금 세계 스카우트 잼버리가 파행 속에서 막을 내린 가운데 충청권을 비롯한 전국 대학이 ‘숨은 조력자’로 평가받고 있다. 전국 대학은 자칫 실망감을 안고 귀국할 수도 있던 대원들에게 태권도와 K-POP(팝)·한복 등 한국 문화를 소개하고 의료 지원까지 했다.
잼버리 조기 퇴영으로 가장 분주했던 건 충남 천안지역 대학이었다. 잼버리가 열린 전북과 인접한 데다 서울과 가깝고 수백명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기숙사를 갖췄기 때문이었다. 단국대 천안캠퍼스를 비롯해 백석대 1600여 명, 남서울대 800여 명, 나사렛대 170여 명 등 천안 4개 대학에서만 2800여 명을 수용했다.
이들 대원은 보령머드축제 등 충남지역 축제·행사장에 다녀왔다. 태풍으로 외부 활동이 어려울 때는 대학이 자체적으로 마련한 태권도 배우기와 한국 전통 음식 만들기 체험 등 일정을 소화했다. 천안 독립기념관에 열린 K-컬처 박람회 현장을 찾아 한복을 입어보고 각종 공연을 즐기기도 했다.
태풍 카눈 여파로 영화관도 임시 운영
수원대는 네덜란드 대원 840여명을 수용하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지원했다. 아주대와 경기대도 캐나다와 독일·아이슬란드 대원을 받았다. 토고·세르비아·우크라이나 대원 등이 머무는 인천시 송도 연세대 국제캠퍼스는 영화관도 임시로 운영했다. 단국대 치과병원은 스리랑카 대원에게 구강검진과 잇몸 마사지 등 의료봉사를 하고 호두과자를 선물했다. 스리랑카 잼버리 인솔자인 자나프리스 살린다 페르난도는 “갑작스러운 방문에도 좋은 프로그램을 준비해줘 고맙다. 오래 기억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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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국 안 한 국가 잼버리 대원 배정으로 혼선
갑작스러운 정부 요청에 현장에선 혼선이 빚어지기도 했다. 잼버리 대회 조직위는 지난 8일 충남에 대원 5200여 명을 배치한다고 발표하면서 홍성 혜전대에 예멘 대원 175명을 배정한다고 통보했다. 충남도와 홍성군, 혜전대 관계자는 긴급회의를 열고 기숙사 청소 상태를 점검하고 환영 현수막을 마련했다. 언제 도착할지 모르는 대원들을 위해 특별히 출장뷔페 음식까지 준비했다. 하지만 예멘 대원들이 입국하지 않았다는 소식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자치단체와 혜전대 관계자들은 오후 10시가 넘어서야 현장을 떠날 수 있었다.
천안의 한 대학 총장은 자신의 SNS(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갑작스럽게 잼버리 대원을 수용하게 된 과정을 설명했다. 그는 “교육부로부터 이용 가능한 기숙사를 보고해달라는 요청이 있었고 곧바로 대원 800여 명을 보낸다는 통보가 왔다”며 “관계 기관 모두 숙소와 식사, 프로그램 등 아무런 지침도 없었다”며 불만을 표시했다. 해당 대학은 전 직원이 출동, 군대 비상작전처럼 대원을 맞이했다고 한다.
대전의 한 대학에서는 잼버리 대원의 짐을 실어 나르는데 119구급차가 이용됐다는 민원이 국민신문고에 접수돼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소방본부는 성명서를 내고 “구급차는 응급상황에 출동해야 하는데 잼버리 대원을 구급차를 6대나 동원하는 것은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하는 위험한 행위”라고 주장했다.
잼버리 대원 인솔자 한때 잠적 소동
천안 단국대에서는 스리랑카 대원 인솔자가 한때 잠적해 찾아오는 소동을 빚기도 했다. 단국대 박승환 부총장은 “캠퍼스에 머무는 동안 인솔자가 갑자기 사라져 크게 당황했다”며 “아산 도고읍 한 숙박업소에 숨어있는 인솔자 찾는 과정이 007작전과 같았다”고 말했다.
신진호 기자·전국종합 shin.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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