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 치달은 두 학부모, 웃으며 화해한 방법
[강지영 기자]
▲ 2023년 여름 한낮의 인천OO초등학교. |
ⓒ 강지영 |
"선생님, 우수(가명) 엄마가 여상(가명)이를 울렸대요."
"엥, 그게 무슨 소리야?"
자리에 가보니 여상이가 책상에 엎드려 울고 있다. 왜 우느냐고 물었더니 말을 하지 못하고 꺼억꺼억 울기만 한다. 말을 하려고 고개를 잠시 들었다가는 다시 끄윽끄윽 운다. 말 못 할 사정이 있는가 보다, 하고 기다렸다.
조바심이 났다. 반 학생들에게 물어보아도 사건의 진상을 알기 어려웠다. 여상이가 울음을 그치고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후, 알게 된 사실은 충격적이었다. 우수 엄마가 아침 일찍 교실로 와서는 자기 딸을 괴롭힌 여상이를 화장실로 데리고 가서 문을 잠근 후에 때렸단다. 세상에 어찌 이런 일이.
우수는 그림도 노래도 게다가 공부도 잘하는 아이였다. 조금 말이 없고 수줍음을 잘 탔다. 친구는 많지 않고 한둘 정도. 여상은 그 반대로, 그림도 노래도 공부도 못했다. 여상이 주변엔 친구들이 가득했다. 그만큼 사교성이 좋았다.
지금 기억으로, 우수가 그리기 대회에서 높은 등급의 상을 탔던 것 같다. 여상이는 그게 질투가 났는지 우수의 친구에게 우수와 놀지 말라고 했다고 한다. 여상이는 우수와 단짝이던 친구들에게 간식을 사줘 가며 친구를 빼앗았다. 뚱뚱하다고 놀리기까지. 화가 난 우수의 엄마가 아침 일찍 교실로 와서는 여상이를 화장실로 데리고 가서 문을 잠근 후, 뺨을 때렸다는 것이었다. 담임교사 출근 전에.
그날, 수업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은 당연한 일. 우선 여상이를 진정시키고 우수 엄마와 여상이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오후에 학교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두 사람이 교실에 왔다. 만나서 아무리 얘기해도 두 분의 주장이 좁혀지지 않았다. 두 사람 다 자기 입장만 말했다. 우수 엄마는 이간질과 놀림을 당한 우수가 피해자라고 했다. 여상이 엄마는 뺨을 맞은 여상이가 피해자라고 했다. 사방이 어두워질 때까지 이야기를 나눴어도 먼저 사과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 당시엔 '학교폭력위원회'가 없었다. 지금 같았으면 당연히 학폭위가 열렸을 사안이다. 담임교사인 나도 지도력 부족으로 비난받고 신고 대상이 됐을 것이다.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다음날, 교장 선생님께 자초지종을 알렸다. 교장 선생님은 학부모에게 학교방문을 요청하라고 했다. 전화를 걸었고, 두 학부모가 교실로 왔다. 교무실로 내려갔다. 세 사람 모두 말없이. 냉랭한 분위기가 못 견디게 괴로웠다. 교무실에 도착했다. 퇴근 시간을 넘긴 시각이라, 교무실엔 아무도 없었다. 교무실 안 쪽에서 문을 열고 들어가면 교장실이 있는 구조였다. 교장 선생님이 교무실로 나와서 서로 인사했다. 그리고 한 사람씩 들어가서 교장 선생님과 대화를 나눴다.
먼저, 우수 엄마가 교장실로 들어갔다. 여상이 엄마와 나는 커피 포트 물을 끓여서 커피를 타놓고 마시지도 못했다. 나와 여상이 엄마는 말없이 교무실 소파에서 대기했다. 찻잔이 다 식어서 마실 수 없을 때까지였으니 교장실에서는 한참이나 대화가 길어졌다. 우수 엄마는 울면서 나왔다.
교장 선생님은 이번에는 여상이 엄마를 불렀다. 여상이 엄마가 교장실로 들어갔다. 우수 엄마는 소리 없이 눈물만 흘렸다. 한참 후에 우수 엄마는 내게 "미안하다"고 했다. 또 한참 후에 교장 선생님은 우수 엄마를 다시 교장실로 들어오라고 했다. 몇 분이 지나 세 사람이 웃으면서 나왔다. 나는 너무 의아했다. 무슨 영문인지 알 수가 없었다. 서로 인사를 나누고 학부모는 돌아갔다.
교장 선생님께 물었다.
"교장 선생님, 어떻게 된 일이죠? 어떻게 화해가 된 거죠?"
"그냥 그런 거죠, 뭘. 아휴, 퇴근 시간이 훌쩍 지났네. 강 선생님도 어서 퇴근해요."
다음 날, 두 학부모는 우리 반 전체 학생에게 공개사과를 하겠다고 했다. 귤 한 박스를 비롯한 다른 간식을 교실로 가지고 와서 우리 반 아이들에게 나눠 주고, 두 분은 아이들에게 공개 사과를 했다. 미안하다고. 아름답고 훈훈한 분위기, 지금도 생생하다.
따지고 보면 그리 먼 얘기도 아니다. 길다면 길겠지만 그리 먼 과거도 아니다. 요즘같이 학교가 어수선한 분위기에서는 상상하기도 어려운 일이다. 학부모가 교사를 고소하고, 교사가 학생에게 맞고, 교사가 세상을 떠나고... 20년 동안 우리 사회에 우리나라 학교에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이 지경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그때 교장 선생님이 무슨 대화를 나눴길래 상담 한 번으로 일이 처리됐는지 정확히는 모른다. 이 글을 쓰면서 곰곰이 생각해 본다. 무엇이 두 학부모의 화해를 가능하게 했을까.
그건 아마도 역지사지(易地思之)였을 것, 그렇게 추정한다. 상대편의 처지나 형편에서 서로의 입장을 헤아려보기. 한마디로 입장 바꿔 생각해 보는 것. 많은 사람들이 이 말 뜻은 알고 있겠지만, 실천하기는 그리 쉽지 않다. 안다. 그러니 노력해야 한다.
▲ 인천OO초등학교의 표지석 '꿈과 추억이 있는 아름다운 우리학교'. |
ⓒ 강지영 |
오늘은 조 교장 선생님과 함께 근무했던 학교를 방문했다. 경비실에 들러 방문증을 받아 목에 걸었다. 학교 전체가 너무나 조용해서 방학 중인 줄 알았는데, 오늘 개학했다고 한다. 건물로 들어가는 입구, 표지석의 글귀가 내 눈을 사로잡았다. 그 당시에도 표지석이 있었건만 오늘따라 의미 있게 다가온다.
"꿈과 추억이 있는 아름다운 우리 학교"
학생과 학부모와 교사가 꿈과 추억이 있는 아름다운 학교를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그건 아마도 서로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넉넉한 마음, 역지사지의 미덕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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