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기 뺀 주유소…‘플랫폼 플레이’ 생존 경쟁

정진주 2023. 8. 16.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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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사, 친환경 충전소·물류 거점 등 주유소 활용
국내 주유소 수, 2040년 현재 4분의 1 수준 전망
주유 부문 수익 감소, 주유소 사업 다각화로 보완
경기 시흥시 SK시화산업주유소 ‘복합 에너지플랫폼’ 조감도. ⓒSK에너지

‘기름집’이라 불리던 주유소에서 ‘기름 냄새’가 옅어지고 있다. 이제 소비자들은 기름을 채우러 가는 것이 아니라 택배를 찾으러, 게임을 하러, 예술을 즐기러 주유소를 찾는 일이 더 많아질수도 있겠다. 주유소 본연의 역할이 점차 축소됨에 따라 정유사들이 이를 미래 지향적인 플랫폼으로 전환하고 있어서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정유사들은 친환경 시대에 대응하기 위해 주유소를 친환경 충전, 물류 거점, 문화공간 등으로 활용하며 사업 다각화를 하고 있다.

정유업계 맏형인 SK에너지는 태양광·연료전지 중심으로 전기·수소 충전소 보급 확산에 힘쓰고 있다. 기존 법안으로 막혀있던 자가발전이 지난해 규제 샌드박스로 실증이 가능해지면서 SK에너지는 주유소에서 신재생에너지 생산에 나섰다. SK에너지는 이를 친환경차 충전에 활용하는 등 에너지 슈퍼스테이션으로 확장시킬 계획이다.

또 SK리츠와 함께 직영주유소 부지를 ‘복합 에너지플랫폼’으로 개발하는 사업도 추진한다. SK에너지는 경기 시흥시 SK시화산업주유소에서 사업의 첫걸음을 뗐다. 연내 착공을 목표로 기존 캐노피식 주유소를 철거하고 당일 배송이 가능한 도심형 물류시설로 탈바꿈시킬 계획이다. 이 새 주유소 옥상에도 태양광, 연료전지 시설을 설치할 예정이다.

GS칼텍스 삼성로주유소 픽업서비스 공간. ⓒGS칼텍스

GS칼텍스는 주유소를 에너지·물류·라이프스타일·모빌리티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간으로 확장하고 있다. GS칼텍스는 기존 내연기관차의 연료뿐만 아니라 전기·수소차 충전소를 설치해 통합 에너지스테이션을 구축했다. 커넥티드 카 기술·셰어링카·전기차 충전소 정보제공 플랫폼 개발업체 등에도 투자해 새로운 서비스를 제공할 방침이다.

GS칼텍스는 주유소를 물류거점으로도 활용하고 있다. GS칼텍스는 이케아와 여행짐 서비스 업체와 협업해 시작한 주유소 픽업 센터를 전국으로 확대하고 있다. 이를 통해 고객들은 해당 업체들의 물품을 구입 또는 짐 배송 서비스 이용 시 가까운 주유소에서 물건을 수령할 수 있다. 주유소를 무인·자동화 물류시설로서 활용하기 위해 서울시가 진행하는 실증사업에도 참여하고 있다.

에쓰오일은 에너지 스테이션으로서 전기차 신사업자를 정관에 등록하고 전기차 충전 서비스 관련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하고 있다. 파주에 초대형 복합 에너지 스테이션을 열고 회사를 대표하는 랜드마크로 육성할 계획이다.

에쓰오일은 예술의 전당 맞은편 주유소에 팝아트 디자인을 적용해 예술 공간으로서도 변신을 꾀했다. 방송인 노홍철이 운영하는 ‘홍철빵집’을 입점시켜 색다른 볼거리를 선사하고 스마트편의점도 도입해 고객 이용 편의성을 높였다.

HD현대오일뱅크 주유소에서 판매되는 미니 굴착기. ⓒHD현대오일뱅크

HD현대오일뱅크는 정유사 중 국내 최초로 하는 사업들을 추진하며 가장 혁신적인 도전을 이어가고 있다. HD현대오일뱅크는 HD현대인프라코어와 이색 협업해 주유소에서 미니 굴착기를 판매한다. 또 주유소에 게임 테마를 적용해 복합문화공간 ‘파츠 오일뱅크’로 재탄생시켰다. 향후 캠핑카 이동량이 많은 지역에 위치한 주유소에는 덤프스테이션이 설치될 계획이다. 이 시설을 통해 캠핑카에서 나오는 오폐수를 처리할 수 있게 된다.

이 같은 시도는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앞으로 주유소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기 위한 시범적 사업의 일환이다. HD현대오일뱅크는 미래발전팀을 개설해 기존 주유소의 역할에서 탈피해 다양한 가치 교환이 가능한 미래 모빌리티 거점으로 만들기 위해 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런 주유소 공간의 변화 배경에는 친환경차 시장 확대에 따른 정유사들이 새 수익처 발굴이 자리하고 있다.

주유소는 수요보다 사업자가 급증하면서 가격 경쟁이 과열되고 인건비, 임대료 등으로 수익성이 악화하면서 2009년을 기점으로 꾸준히 감소하는 추세다. 여기에 친환경차의 판매가 급증하면서 주유소의 감소세는 더 가팔라질 전망이다.

에너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까지 소폭 감소하던 국내 주유소의 수가 친환경차 가속화됨에 따라 2040년에는 현재 4분의 1 수준인 3000개만 남을 것으로 전망된다. 맥킨지는 주유소 비연료 수익 비중은 2019년 20%에서 2030년 28%로, 2050년에는 50%까지 확대될 것으로 예측했다.

강릉 샘터주유소에 설치된 덤프스테이션. ⓒHD현대오일뱅크

이에 따라 발생하게 될 주유 부문의 수익감소를 복합 에너지 스테이션과 같이 사업 영역을 확대함으로써 보완하는 것이다. 기존 인프라를 활용하는 신사업이기에 비용 절감과 리스크도 축소할 수 있다.

또 도심 주유소들은 대로에 접해 있어 차량 출입하기 좋아 상업용 복합시설이나 물류 거점으로 활용하기에도 적합하다. 이와 함께 전기차는 충전시간이 길기 때문에 충전하는동안 운전자들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다양한 테마 공간의 필요성도 부각되고 있다.

정부도 복합 에너지 스테이션의 시장 정착을 위해 그동안 주유소에 적용됐던 규제를 완화하고 있어 사업 환경은 더욱 유리하게 조성될 것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주유소가 단순히 기름을 보충하는 장소에서 다양한 고객 경험을 제공하는 플랫폼으로 변신하고 있다”며 “국내 정유사들은 에너지 패러다임 전환에 대비해 주유소 공간을 활용한 다양한 신사업을 선보이고 있고 이러한 움직임은 점차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한편, 국내 주유소의 수가 줄어도 정유사의 수익에는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주유소 입장에서는 수익이 악화되겠지만 정유사는 국내 주유소에 팔지 못한 정유를 수출로 판매하면 돼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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