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용차에 '망치' 넣고 다니는 공기업 CEO…"잘못된 곳이 보이면 즉시 깨부숴라"
지난 5월 초 경기주택도시공사(GH) 주택사업지구 중 하나인 화성동탄 A105BL 행복주택 현장을 김세용 GH 사장이 불시에 방문했다. 4월 인천 검단신도시 지하주차장 붕괴사고 이후 GH 주택사업 현장의 품질 문제를 직접 챙기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평소 ‘품질 경영’을 강조해오던 그의 자발적 행보였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무량판 아파트 사태가 터지기도 전이었다.
이날 화성동탄 현장을 연락도 없이 방문해 건축 중인 행복주택을 샅샅이 훑던 그의 눈에 한 건물 지하 재활용 보관소 출입문 상부의 마감처리가 미흡한 부분이 발견됐다. 즉시 그는 평소 관용차에 구비하고 다니던 망치를 꺼내 와 벽돌벽을 내리쳐 그 자리에서 부수고 출입문 보완 시공을 지시했다. 고려대 건축학과 교수이자 공학한림원 정회원을 지낸 그의 현장 감각이 빛을 발했던 순간이었다.
이후 김 사장은 GH 임원들에게 현장 점검을 강조하며 "망치를 차에 싣고 다니다가 잘못된 점은 그 자리에서 깨부수라"고 지시했다. 이에 대해 그는 "GH가 현장의 품질에 직접적인 책임과 주인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과 더 나아가 GH 임직원 모두가 품질 경영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책임감을 갖고 있음을 강조하고 싶다"고 말했다.
현재 건설 중인 아파트 4곳을 대상으로 전수검사도 실시했다. 검사 결과 구조적 문제는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그는 "최근 5년 내 준공한 6개 단지에 대해서도 정밀 안전 점검 기관을 통해 비파괴검사, 콘크리트 검사 등을 실시했고 결과가 나올 예정"이라고 했다.
"무량판 공법 아닌 ‘설계→시공→감리’ 총체적 부실이 LH 사태 키워"
최근 논란이 이어지고 있는 LH 철근 누락 사태에 관해 묻자 김 사장은 설계→시공→감리로 이어지는 구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탓에 이번 사태가 불거졌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부실시공의 대명사처럼 굳어진 ‘무량판’ 구조에 대해 무량판 공법 자체는 문제가 없다고 했다. 무량판 공법은 내력벽이나 수평 기둥인 ‘보’ 없이 하중을 지탱하는 공법으로 개방감을 위해 층고를 높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제대로 짓기만 한다면 시간과 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
그는 "무량판 구조 자체는 아무런 문제 없다"며 "실행과정에서 숙련공 부족으로 인한 부실시공, 감리에서 이를 잡아내야 하지만 조직적인 짬짜미로 인한 감리 부재 등이 겹쳐 무량판 구조의 안정성 문제가 터졌다"고 했다.
현재 한국도시설계학회 회장을 맡고 있는 김 사장은 "철근이 제대로 들어가 있는지 등을 숙련공이 계산해야 하는데 철근 쪽 숙련공이 부족한 실정"이라며 "10년 전만 해도 조선 동포 혹은 한국인 작업반장이 현장을 지휘했는데 이제는 도면도 제대로 읽지 못하는 외국인들이 건설 현장을 채우고 있다"고 토로했다. 그나마 남아 있는 숙련공도 몇 명 되지 않을뿐더러 은퇴를 코앞에 둔 60대 노인이 대부분이라고 우려했다.
"GH 역할 이제 바뀌어야… 공급자가 아닌 타운 매니저(Town Manager)로"
GH는 9월 초 새로운 사업 모델을 최초로 공개할 예정이다. 바로 지난해 12월 취임한 김 사장이 올 2월 새로운 비전으로 내세운 ‘기회’ 브랜드를 통해서다. 이는 주택사업, 오피스 등을 포괄한 사업 모델로 무주택자 혹은 창업을 준비하는 사람이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도록 GH가 기회 파트너로 자리매김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김 사장은 "이는 경기도정이 언급한 기회의 개념과 궤를 같이하는 것"이라며 "우리 사회에서 가치를 창출하지만 적절한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는 부분을 발굴해 기회를 제공하는 파트너가 되겠다"고 강조했다.
특히 9월 공개되는 경기도형 주거모델은 임대형, 자가형 등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된다. GH는 우선 세 가지 주택 모델을 공개한 뒤 수요자들의 반응을 살펴본 후 향후 모델 수를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김 사장은 "3년 내 착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며 "공급 규모는 지자체장이 바뀌면 변동이 있다는 점을 고려해도 착공식 때 몇만 호는 가능하다고 본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기존과 같은 방식의 공공분양은 하지 않겠다고 했다. 분양 사업 자체가 민간의 영역이라는 이유에서다. 다른 공기업들이 공공분양 사업을 확대하거나 진행하다가 민간과의 무리한 경쟁을 의식해 뒤탈이 생기는 것을 목격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공기업이 분양에 손을 대는 것은 시장 원리에도 부합하지 않을뿐더러 집값을 낮추는 효과도 없다고 설명했다.
임기 동안 이루고 싶은 목표 중 하나로는 GH의 체질 개선을 꼽았다. GH가 전통적인 공급자 역할에서 한발 더 나아가 타운 매니저(Town Manager)로 거듭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건물을 짓고, 일대를 개발한 뒤 손 털고 나가는 방식이 아닌 입주 후 관리까지 꼼꼼하게 살펴야 한다는 얘기다.
김 사장은 "GH는 주택 공급보다는 택지개발, 산업단지 개발 등 과거 한국토지공사의 성격이 강한 조직"이라며 "앞으로 택지개발 수요는 거의 없다는 점을 떠올리면 빌더(builder)가 아닌 타운 매니저로 도시 운영 관리까지 해주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라고 귀에 못이 박이도록 강조한다"고 했다.
한 마디로 ‘변신하라’는 주문이다. 말로만 그치지 않기 위해 자회사 설립을 통한 구체적인 방법도 제시했다.
김 사장은 "한 번 만들어진 도시를 재건축할 때까지 계속 하자 유지·보수해주자는 의미로 유지·보수 업무만 전담하는 자회사를 별도로 설립할 계획"이라며 "광교나 판교에 유지관리공단을 만들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민영 기자 argu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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