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월북 미군, 인종차별에 환멸"...유엔 '北 인권' 논의에 반격
북한이 지난달 18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을 통해 무단으로 월북한 주한미군 소속 트래비스 킹 이병이 망명 의사를 밝혔다고 16일 주장했다.
북한은 킹 이병의 월북 사유를 "미군 내에서의 비인간적인 학대와 인종차별에 대한 반감" 때문이라고 밝혔다. 한·미·일이 오는 17일 북한 인권문제만을 논의하기 위한 유엔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회의 소집을 요청하자 오히려 ‘인권 역공’을 펼치려는 의도라는 분석이다.
"미국사회에 환멸 느껴"
북한은 이날 '미군 병사 트래비스 킹에 대한 중간조사 결과와 관련한 조선중앙통신사 보도'를 발표했다. 통신은 "해당 기관에서 조사한 데 의하면 트래비스 킹은 자기가 공화국 영내에 불법 침입한 사실을 인정했다"며 "조사 과정에서 미군 내에서의 비인간적인 학대와 인종차별에 대한 반감을 품고 공화국(북한)으로 넘어올 결심을 했다고 자백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트래비스 킹은 또한 불평등한 미국 사회에 환멸을 느꼈다고 하면서 우리나라나 제3국에 망명할 의사를 밝혔다"고 덧붙였다. 북한이 킹 이병에 대해 공식적으로 언급한 것은 월북 이후 처음이다.
통신은 보도 말미에서 "조사는 계속된다"고도 밝혔다. 이에 따라 북한이 당분간 킹 이병의 귀환을 위해 미국과 대화에 나설 가능성은 작을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관측이다.
정대진 원주 한라대 교수는 "북한이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대북 인권 문제 제기에 대한 반박 수단으로 킹 이병 사건을 활용하려는 것으로 보인다"며 "미군 병사 월북 사건을 외교적 수단으로 계속 사용하는 것은 물론이고, 필요에 따라 내부 결속을 위한 체제 선전에도 활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안보리 회의 소집에 반발
북한이 킹 이병이 월북을 감행한 지 한달 만에 관련 사실을 보도한 것은 최근 한·미·일이 북한 인권문제 논의를 위한 유엔 안보리 공개회의의 소집을 요구한 것과 무관치 않다. 안보리에서 북한인권 관련 공개회의가 열린다면, 이는 2017년 12월 이후 약 6년 만이다.
또 오는 18일 미국 캠프 데이비스에서 열리는 한·미·일 정상회의에서도 납북자·억류자 문제를 포함한 북한 인권 문제가 비중 있게 다뤄질 가능성이 크다. 앞서 한·미 정상은 지난 4월 정상회담 공동성명에 "북한이 북한 주민의 인권과 존엄성을 노골적으로 침해하고, 희소한 자원을 대량살상무기 개발에 투입하는 결정을 내림으로써 한·미동맹에 심각한 안보적 도전을 야기하는 것을 규탄한다"고 명시하며 북한을 압박했다.
북한이 킹 이병의 월북 사유를 '미국 내 인권 침해'로 공식화한 것은 이런 미국이 북한 내부의 인권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앞으로 북한은 미국과의 협상에 호응하기보다는 미국 내부의 인종차별을 집중적으로 부각해 미국의 인권 공세에 대한 반박과 반격의 빌미로 계속 활용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고 말했다.
북한은 전날 밤에도 김선경 외무성 국제기구담당 부상 명의의 담화를 통해 미국이 유엔 안보리 회의를 요청한 데 대해 강하게 반발했다.
김 부상은 "미국의 비열한 인권 소동은 우리 국가의 존엄과 자주권에 대한 난폭한 침해로, 엄중한 도전으로 낙인하며 이를 단호히 규탄 배격한다"며 "만일 유엔 안보리에서 어떤 나라의 인권 문제가 취급되어야 한다면 각종 사회적 악폐로 부패될 대로 부패된 반인민적인 악의 제국인 미국부터 취급돼야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美 "망명 주장 검증 불가"
미 국방부는 킹 이병이 망명 의사를 밝혔다는 북한 측의 발표와 관련해 "우리는 (북한의) 이런 주장을 검증할 수 없다"며 귀환이 우선이라는 기존 입장을 다시 확인했다. 마틴 메이너스미 국방부 대변인은 15일(현지시간) "우리는 트래비스 킹의 안전한 귀환에 집중하고 있다"며 "국방부의 우선순위는 킹 이병을 집으로 데려오는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 북한은 킹 이병의 입장이나 안위를 확인할 수 있는 사진이나 영상을 공개하지 않았다.
미 국방부가 "우리는 모든 가용한 소통선을 이용해 움직이고 있다"고 밝혔지만, 유엔군사령부 등을 통한 대북 접촉 시도에도 불구하고 킹 이병이 무사한지 여부도 확인하지 못하는 등 의미 있는 소통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게 관계기관의 설명이다.
킹 이병은 2021년 1월부터 한국에서 근무를 시작했으나 지난해 9월과 10월 폭행 등을 저질러 한국에서 47일간 수감된 뒤 미국에서 추가 징계가 예정돼 있었다. 그러나 지난달 17일 미국행 비행기에 오르는 대신 공동경비구역(JSA) 민간인 견학에 참가해 월북했다.
정영교 기자 chung.yeonggyo@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맘카페 수다쟁이 멀리하라" 성적 올리는 '의사의 교육법' | 중앙일보
- "춘천 레고랜드 이 모자 쓰지마세요"…생식기 발달장애 유발 충격 | 중앙일보
- 움직이는 러브호텔? 24시간 미 무인택시 상상초월 경험담 | 중앙일보
- [단독] 尹 취임식 일반석에서 바라봤다…'꼿꼿교수'의 한 장면 | 중앙일보
- 각종 커뮤니티 뒤집어 놨던 홍대 비키니녀…그가 입장을 밝혔다 | 중앙일보
- "아줌마 말 똑바로 해" 시어머니 머리채 잡으려 한 며느리 | 중앙일보
- 200억 부동산 쥔 박수홍 형수, 횡령 재판서 "내가 재테크 잘해서" | 중앙일보
- [단독] "잼버리 예산으로 새만금 SOC 만드나" 국회 2년 전 경고 | 중앙일보
- 목포 상가 화장실서 30대女 사망…현직 해양경찰, 살인 혐의 체포 | 중앙일보
- 부영 회장, 고향사람들 이어 동창에도 쐈다…1억원 통큰 선물 |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