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기 힘든 자막, 관객 불편 해소할 방법은 없나 [자막도 예술이다②]

박정선 2023. 8. 16.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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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막과 무대 동시에 보는 관객들 피로감 높아"

“정중앙 좌석인데, 자막이 양 사이드에 있다 보니 무대랑 같이 보는 게 너무 불편하다.”

“애초에 자막은 포기하고 무대에만 집중했다.”

“자막 읽느라 배우들이 뭐하고 있는지 놓치기 일쑤.”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뉴시스

내한 뮤지컬 공연에서 자막은 늘 골칫거리 취급을 받는다. 무대를 보자니 원어 대사를 속속들이 이해하지 못하고, 자막을 보자니 무대에 선 배우들의 움직임을 놓치는 일이 반복되기 때문이다. 내한 공연 이후 관객들의 불만 대부분이 자막에서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심지어 기계적 결함이나 자막기 결함으로 원어로 공연되는 뮤지컬을 자막 없이 봐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내한 공연에서 보통 자막기는 공연장의 무대와 객석 2층과 3층 양옆에 설치된다. 무대 바로 아래 위치한 좌석의 관객들을 위해 무대의 단에 미니 스크린을 설치하기도 한다. 예외적으로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처럼 모든 좌석 뒤편에 작은 스크린이 내장되어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대부분 극장의 상황은 비슷하다.

자막 번역가들조차 “자막과 무대를 동시에 보는 건 피로감이 드는 일”이라고 입을 모은다. 자막기에 등장하는 최대 길이가 20~25자 내외, 4줄 내외로 제작되는 것 역시 번역가들이 여러 차례의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만든 법칙이다. 자막기를 최대한 짧게 보고, 무대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위해서다.

자막 번역가 A씨는 “가장 중요한 건 자막에 너무 신경을 쓰게 하면 안 된다는 점”이라며 “무대를 보면서 동시에 자막까지 보기 위해선 한 화면에 띄우는 글자 수가 매우 중요하다. 때문에 정해진 분량 안에서 최대한 효과적으로 보여주려면 날릴 수 있는 건 날리고,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대사(혹은 가사)로 번역하는 것이 중요하다. 문장을 이루는 구성요소를 모두 갖출 필요 없이, 최소한의 기호적으로 접근하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글자의 개수뿐 아니라 화면의 조도도 중요한 요소다. 다른 공연장보다 자막과 무대를 함께 보기에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의 시스템이 조금 나은 면은 있지만, 이조차도 화면이 밝아 시야기가 분산되는 점은 아쉬움으로 지적된다.

A씨는 “자막에 있어서 조도도 매우 중요하다. 공연장의 조명이 켜졌을 때와 꺼졌을 때 조도를 다르게 해야 한다. 또 화면을 몇 분 이상 보느냐에 따라 피로도가 달라지기 때문에 자막의 올바른 조도를 찾아야 피로도를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무대 뒤의 또 다른 배우라고 불리는 자막 오퍼레이터와의 호흡을 맞추는 것도 자막 번역가의 일이다. 무대 위의 배우들과 자막의 싱크를 맞추는 것이 내한 공연의 질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자막 오퍼레이터는 주로 단기 아르바이트를 쓴다. 배우마다 특유의 뉘앙스, 어감, 박자가 다르기 때문에 번역가와 의견을 나누면서 대본과 메모장에 각 배우의 특성을 메모해두고 타이밍을 맞춘다.

자막 슬라이드는 공연당 1500~2000장에 달한다. 흔히 “자막은 자동으로 나오는 거 아니냐”는 인식도 있지만, 영화와 다르게 실시간 공연인 뮤지컬은 손수 번역 자막을 넘겨야 하는 100% 수작업이다. 라이브 공연에선 언제나 돌발 변수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자막 오퍼레이터는 한순간도 무대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이들을 두고 공연 관계자들은 “무대 밖의 또 다른 주연”이라고 입을 모은다.

뮤지컬 제작사 관계자는 “자막 오퍼레이터를 구할 때 외국어 실력은 당연히 필수다. 동시에 평소 공연에 대한 이해가 있는지, 얼마나 돌발 상황에 잘 대처하는지도 중요하게 보는 부분”이라며 “대사 타이밍을 잘 맞추는 순발력이 있어야 한다. 배우가 애드리브를 하거나, 대사를 바꿔 말하거나, 건너뛰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는데 이를 잘 대처할 수 있어야 한다. 자막 번역가와 자막 오퍼레이터는 내한 공연의 질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존재”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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