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림장으로 교사 죽음에 이르게 한 학부모... 학교는 뭐 했나 [소셜 코리아]

김명희 2023. 8. 16.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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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이초 사건과 유사한 일본의 사례... 학교서 안전하게 일할 권리, 교육청·교장이 보장해야

한국의 공론장은 다이내믹합니다. 매체도 많고, 의제도 다양하며 논의가 이뤄지는 속도도 빠릅니다. 하지만 많은 논의가 대안 모색 없이 종결됩니다.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는 이런 상황을 바꿔 '대안 담론'을 주류화하고자 합니다. 구체적으로는 ▲근거에 기반한 문제 지적과 분석 ▲문제를 다루는 현 정책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거쳐 ▲실현 가능한 정의로운 대안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소셜 코리아는 재단법인 공공상생연대기금이 상생과 연대의 담론을 확산하고자 학계, 시민사회, 노동계를 비롯해 각계각층의 시민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열린 플랫폼입니다. 기사에 대한 의견 또는 기고 제안은 social.corea@gmail.com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기자말>

[김명희]

 지난달 25일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에 사망한 교사를 추모하는 국화와 메모지가 붙어 있다.
ⓒ 연합뉴스
 
서이초 교사에 관한 비극적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 필자가 번역한 일본 변호사 가와히토 히로시의 책 <과로자살>이 떠올랐다. '어, 비슷한 사례가 있었던 것 같은데...' 책을 다시 펼쳐보니 그 내용은 내가 희미하게 기억하고 있던 것보다 훨씬 더 이번 사건과 닮아 있었다. "산산조각 난 신임 여성교사의 꿈 : 23세, 초등학교 교사"라는 소제목으로 책에 소개된 일본 교사 다케시타씨(가명)의 사연은 다음과 같다.

다케시타씨는 대학 졸업 직후인 2006년 4월, 학년에 한 학급밖에 없는 소규모 초등학교에 부임했다. 부임하자마자 2학년 담임을 맡았고, 학습 지도부, 생활 지도부, 급식 지도부, 섭외부, 축구·농구 클럽활동 지도, 전람회 위원회, 국어부 연구회 등의 직무도 배정받았다.

사실 여기부터 고개를 갸웃거렸다. 대학을 갓 졸업한 신임 교사가 이 모든 일을 다 할 수 있다고? 정상적인 일터라면 신입 직원은 입사 후 얼마 동안 별도의 수습이나 연수 기간을 거친다. 아무리 학교에서 이론을 배우고 실습을 했어도 현장에 투입되자마자 바로 일을 할 수 있는 전문 직종은 별로 없다. 사범대 교육 과정을 모르는 외부자 입장에서는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게다가 다케시타씨의 학교는 학년 당 학급이 하나뿐이라 물어보거나 의논할 선배·동료 교사도 없었다.

일본 교사의 '과로 자살'... 남의 일이 아니었다

그는 두 달 동안 거의 매일 야근하고, 주말에도 출근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맡은 일을 도저히 다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 학부모가 그를 궁지에 몰아넣었다. 이 학부모는 알림장을 통해서 수시로 다양한 '의견'을 제시하고 뭔가를 '요구'했다. 한자 숙제를 내달라, 하교 시간이 지켜지지 않는다, 바라던 숙제를 내주지 않는다, 아이들 다툼 때문에 수업이 엉망일까 걱정이다 등등. 교사의 대답이 단답형이니 더 구체적으로 써달라고 한 적도 있었다.

그는 매번 전화로 설명하거나 알림장에 답변을 써야 했다. 이 학부모는 담임이 아이들에게 소홀하며, 미혼에 자녀를 키워본 적이 없어서 경험이 부족한 것 아니냐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다케시타씨는 이 내용을 신임 지도담당 교사에게 전했고, 지도교사는 이를 교장에게 보고했다. 하지만 교장의 지시에 따라 다케시타씨는 학부모에게 직접 전화를 해야 했고,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대체 무엇이 죄송했을까.
 
 책 <과로자살> 표지
ⓒ 한울
 
이렇게 정신없이 일하던 와중에 6월 초 열릴 학부모-교사 연합회 행사 티켓 배부를 깜빡하는 일이 벌어졌다. 부교장은 다케시타씨에게 수업 후 가정을 개별 방문하여 배부하라고 지시했다. 그녀는 거부할 수 없었다. 다음 날, 다케시타씨는 집 안에서 자살을 시도했다. 다행히 미수에 그쳤고 병원에서 항불안제를 처방받으면서 나아지는 듯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자살을 시도했고 결국 6월 1일 사망했다. 이렇게 되기까지 그녀는 수차례 친구와 가족들에게 무력감과 불안, 자괴감을 호소했다.

그녀의 죽음은 결국 '공무상 재해', 즉 산업재해로 인정받았다. 물론 그 과정이 순탄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이러한 경우를 일본에서는 '과로 자살'로 지칭한다. 업무 중에 생긴 과로, 스트레스가 원인이 되어 자살에 이르렀다고 판단한 것이다. 문제는 이것이 다케시타씨의 예외적 경험이 아니라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이후에도 교사의 자살이 공무상 재해로 인정받는 사례들이 이어졌다. 이 책이 쓰이고 있던 2012년 당시, 일본에서 정신 질환으로 휴직 중인 교직원은 4960명에 달했다.

책을 번역하던 2018년만 해도 국내에 과로 자살 개념은 생소했다. 더구나 교사의 과로 자살이라니... 필자도 그전까지 생각해 보지 못한 문제였다. 과로 자살이라면 IT 업종의 살인적인 장시간 노동, 사무·관리직의 극심한 실적 압박, 가혹한 직장 내 괴롭힘 같은 것만 떠올랐기 때문이다. 건네지는 돈 봉투에 따라 노골적 차별이 일어나고, 대걸레 자루와 출석부가 체벌 도구로 쓰이며, 언어폭력과 성희롱이 난무하는 학창 시절을 보내온 세대의 일원으로서, 책에 소개된 일본의 사례는 대단히 낯설었다.

직업적 위험요인이 된 괴롭힘과 폭력
 
 이번 사건을 교사의 몇몇 학부모의 일탈행위나 교사의 불운으로 볼 것이 아니라, 작업장 위험요인으로 상정하고 예방·대응 체계와 규제 체계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 셔터스톡
 
하지만 불과 5년 뒤, 한 교사의 죽음과 이를 계기로 속속 드러나는 '학교라는 일터'의 상황을 보면서 어쩐지 자책감이 들었다. 일본의 경험을 본다면 우리 사회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문제였는데...

최근에 알려진 교사에 대한 학생과 학부모의 문제 행동은 실로 다채롭고 상상의 범위를 벗어나는 것들이었다. 아직도 놀랄 일이 남았나 싶지만, 매번 이전보다 더 강력한 빌런이 등장한다. 예컨대 글을 쓰는 이 시간 트위터에는 '직위해제'와 '왕의 DNA'라는 검색어가 트렌드에 나란히 올라 있다.

하지만 으뜸 진상 사례를 가려내 그를 비난하는 데 열정을 쏟는 것은 문제 해결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못한다.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를 '시민'보다 '소비자'로 정체화하는 시대에, 이러한 괴롭힘과 폭력은 그야말로 만연한 직업적 위험요인으로 자리 잡은 것으로 보인다. 유별난 소수에 대한 비난을 넘어서, 교사의 건강과 안전을 보호하는 체계적 방법을 찾아야 한다.

안타깝기는 하지만, 학생이나 학부모가 교사에게 신체적·언어적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한국과 일본만의 문제는 아니다. 노동안전보건 분야에서 작업장 폭력(workplace violence)은 북미와 유럽에서도 중요한 이슈인데, 학교는 보건의료 현장과 더불어 폭력 요주의 작업장 중 하나로 취급된다. 상황이 이렇다면 이 문제를 몇몇 학부모의 일탈행위나 교사의 불운으로 볼 것이 아니라, 작업장 위험요인으로 상정하고 개별 학교 차원의 예방·대응 체계, 그리고 교육 부문 종사자 보호를 위한 규제 체계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분명히 해둘 것은 노동자 보호의 책임이 사업주에게 있다는 점이다. 산업안전보건법은 "근로자의 신체적 피로와 정신적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는 쾌적한 작업환경을 조성하고 근로조건을 개선할 것"을 사업주 의무로 정하고 있다. 또한 "교원에 대한 예우와 처우를 개선하고 신분보장과 교육활동에 대한 보호를 강화함으로써 교원의 지위를 향상시키고 교육 발전을 도모"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교원지위법도 교육활동 침해행위로 피해를 입은 교원에 대한 보호조치의 책임을 관할 교육청과 유치원·초중등학교의 장에게 부과하고 있다.

앞서 소개한 일본 사례와 현재 국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사건들에서 핵심 문제는 교사를 보호해야 할 책임을 가진 학교 관리자와 교육청이 제 역할을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교사를 보호하기는커녕 '괜히 시끄러워지지' 않도록 하는 것에 우선순위를 두고 일을 처리한다. 혹시라도 '아동학대'에 대한 책임이 넘어올까 우려하여 학부모의 말만 듣고 직접 교사를 신고하는 교장·교감도 드물지 않다고 한다. 자신이 관리·감독하는 노동자를 경영진이 직접 신고하는 경우가 과연 다른 분야에도 있을지 의문이다.

학교란 대체 어떤 곳일까? 급식을 담당하는 조리 노동자들이 집단적으로 폐암에 걸리고, 교사가 학생에게 신체적 폭력을 당하고, 학부모의 가혹한 괴롭힘 끝에 교사가 학교를 떠나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기까지 하는 일터. 이런 위험천만한 공간에서 과연 아이들이 제대로 커나갈 수 있을까? 인간으로서 존중받으며,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일터는 사실 일하는 모든 사람의 바람이다. 교사에게조차 이러한 일터를 만들어 주지 못한다면 우리 사회의 미래는 없다.
 
 김명희 / 노동건강연대 운영위원장(소셜 코리아 운영위원)
ⓒ 김명희
 
필자 소개 : 이 글을 쓴 김명희는 예방의학 전문의로서 노동건강연대 운영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소셜 코리아> 운영위원이기도 합니다. 관심 영역은 건강불평등, 노동자건강권, 보건의료의 공공성입니다. 한국건강형평성학회의 학회장을 역임했으며, <사회역학> <노동자건강의 정치경제학> <예방의학의 전략> <과로자살> 등의 번역서와 <보건의료 사유화: 불편한 진실> <한국의 건강불평등> <몸은 사회를 기록한다> <당신이 숭배하든 혐오하든> 등의 책을 펴낸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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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에도 게재됐습니다. <소셜 코리아> 연재 글과 다양한 소식을 매주 받아보시려면 뉴스레터를 신청해주세요. 구독신청 : https://socialkorea.stibee.com/subscri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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