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연배우가 말한다, 감독 김성훈의 5가지 캐릭터 [홍종선의 캐릭터탐구㊺]
주지훈 “아무리 힘들어도 털끝만큼도 밉지 않은 이유는…”
하정우 “제 연출작과 같은 시기 촬영? 김성훈 감독 선택”
영화의 한 장면만 봐도 연출 감독의 캐릭터가 한눈에 들어올 때가 있다.
미국 CIA(중앙정보국) 중동 전문가 리차드 카터(번 고먼 뷴)의 한국 사무실. 외무부 사무관 이민준(하정우 분)이 21개월 동안 생사도 모른 채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에 갇혀 있던 오재석 서기관(임형욱 분)을 구할 ‘선’을 찾기 위해 방문한 장면이다.
영화 ‘비공식작전’(감독 김성훈, 제작 와인드업필름·와이낫필름, 제공·배급 ㈜쇼박스) 초반, 이민준의 시선으로 관객은 카터의 사무실을 둘러보게 된다. 20세기까지만 해도 우리가 옷을 넣어두던 반닫이 고가구 위에 브라운관 텔레비전이 놓여 있을 때부터 심상치 않다. 책상 위 명패의 리차드 카터 이름은 한글로 적혀 있는데, 심지어 자개로 새겨져 있다.
카터가 막 반주 겸 식사를 하려는 참인데, 빨간 에티켓에 한자로 ‘진로’가 적힌 독한 소주를 두 병이나 꺼내는데 잔도 맥주컵이다. 안주 겸 식사가 될 음식은 노란 양은냄비에 끓여져 있고, 기껏해야 라면이겠지 하는 예측을 보기 좋게 빗나가며 돼지고기 숭숭 썰어 넣은 시뻘건 김치찌개다. 냉장고에서 꺼냈을 ‘훼미리쥬스’ 다 먹은 병에 손수 끓인 보리차를 담아 놓은 것도 1980년대라는 시점을 보여준다.
민준과 리차드의 대화가 시작되기도 전에, 우리는 감독 김성훈에 대해 우선 두 가지를 알게 된다. 한국 정보원의 사무실보다 더욱 한국적으로 꾸며진 인테리어에 자꾸만 웃음이 나면서, ‘와, 이 감독 유머 장난 아니구나! 이 긴박한 상황에서 이런 웃음을 준다고?’. 이 글을 혹시 본다면 “저 이 감독 아니고 김 감독인데요”라고 할 것만 같은 첫 번째 특성, ‘일상이 유머인 감독’다운 미국 정보요원 사무실의 실내장식이다.
두 번째는 백문이 불여일견을 제대로 실천하는 감독이라는 사실이다. 카터의 한국에 대한 이해와 애정, 향후 어떻게든 도움을 줄 인물이라는 것을 줄줄이 여러 대사로 설명하지 않고도 실내 전경으로 ‘한눈에’ 참 간단하면서도 명료하게, 카터의 캐릭터와 향후 활약을 효과적으로 예고한다. 거기에 민준이 소주 한 컵 벌컥 마신 뒤 너무 쓰다는 듯 찌개 국물을 한 숟가락 떠먹고는 맛나게 또 감탄하듯 ‘캬아’ 함으로써 카터의 김치찌개 끓이는 솜씨마저 우리에게 전달되며, 그의 한국을 둘러싼 국제 정세에 대한 이해 정도를 단박에 알려준다.
마치 이 장면 전에 이민준이 제아무리 유럽과 미국을 외쳐도 결국 중동에 갈 거라는 사실을, 외무부 중동과 본인 책상에 앉아 지구본을 돌리고 돌리다 세웠을 때 이라크라는 글씨가 큼지막하게 보이는 곳에서 멈추는 것으로 보여주듯이 어느 한 장면 허투루 쓰는 법이 없는 감독 김성훈이다.
감독 김성훈의 캐릭터에 관한 세 번째, 네 번째 특성은 ‘비공식작전’의 주연 김판수를 연기한 배우 주지훈에게서 들을 수 있었다. 맞다, 그동안 ‘캐릭터탐구’는 극중 인물의 특성을 생각하고 얘기하는 코너였다. 가상 인물이 아닌 실제 사람, 그것도 배우가 아닌 감독의 캐릭터를 쓰고 있다. 코너 헷갈린 것 결코 아니다. 향후 우리가 감독 김성훈의 작품을 볼 때 접근방식에 관한 팁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서, 분명 보고 또 보고 계속 보게 될 의미 있는 감독이기에 마치 영화 캐릭터처럼 소개하고 싶었다.
“김성훈 감독님에 대한 자부심이 커요, 그런 감독님과 했다는 사실에서요. 카체이싱 연출의 끝이에요. 미니멀 미학의 연출도 있지만 액션적 쾌감이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배우를 통해서 보여줄 것, 배우 외의 요소를 더해 보여주어야 할 것을 정확히 아세요. 카체이싱 장면을 위해 감독님의 엄청난 집요함과 제작진의 노고로 3개월에 걸쳐서 3개 도시에서 15~20회차를 찍었어요. 헌팅부터 따지면 몇 회차를 찍었는지 셀 수 없고요. 판수, 민준 인질범들에게 쫓긴다…지문 한 줄로 끝인 장면인데, 연출의 미학이 정말 대단합니다. 장면에 대한, 액션에 관한 디자인부터 치밀한 분입니다. 김성훈 감독, 대단한 사람인 거 알았지만 정말 대단하다! 다시 느꼈습니다.”
영화 ‘비공식작전’에 출연한 것에 대한 소감을 묻자 배우 주지훈이 한 치의 주저 없이 내놓은 답이다. 드라마 ‘킹덤’에 이어 두 번째 작업이다 보니 당시와 같고 다른 점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늘 똑같아요. 김성훈 감독, 정말 존경하는 게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생각 들 정도로 영화에 자신의 모든 걸 쏟아붓고, 할 수 있는 한 끝까지 완벽하게 일해요. 한 번은, 해외 촬영 후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함께 일정 소화하고 식사하며 반주한 적이 있어요. 서울 쪽으로 장소 이동하며 한 시간 정도 차 안에서 얘기 나눌 기회가 있었어요. 그때 제가 ‘배우보다 감독님이 더 고생한 영화다. 특히 이번 작품 워낙에 힘든 작업이었는데, 어떻게 한 올도 놓치지 않고 가실 수 있느냐’ 물었어요. 어떤 때는 이 작은 차이를 누가 안다고 이렇게까지 하지? 원망 어린 시선을 스태프와 배우로부터 받으면서도 어떻게 그렇게 하시는지 궁금했거든요. 지금부터 제가 드리는 말씀, 감독님의 대답이 ‘으레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인데’ 하실 수 있어요. 그런데 작업해 보면 이 말의 진정성을 알기 때문에 완전히 다르게 다가오거든요.”
주지훈은 자신이 감독 김성훈의 진정성을 잘 전해 보고 싶다는 진심을 가득 담아, 설명을 이어갔다.
“감독님은 첫 작품(‘애정결핍이 두 남자에게 끼치는 영향’)이 잘 안되고 7년의 ‘금어의 시간’(어부이나 물고기를 잡을 수 없는 세월)을 보내면서 그런 생각을 했대요, ‘영화가 실제 내 아이 같다’. 내 눈에 의도치 않은 실수라고 해서 남에게 하면 안 되는 게 있는데 ‘그래도 돼’라고 하며 아이를 밖으로 내보낼 수가 없는 것과 같대요. 실제 작업해 보면 와 닿아요, 그 말이 뭔지.”
좋은 부모는 아이의 행동에 의도적 악의가 없다고 해서 분명 남에게 피해가 되는 것을 알면서 방치하지 않는다. 타인을 위한 예의인 동시에 내 아이를 좋은 사람으로 키우겠다는 의지다. “실수였어요” 변명할 구석만 있으면 모르는 척 눈감지 않고, 제대로 좋은 영화 만들어서 관객 앞에 보여드겠다는 각오다. 세 번째 특성이라 할 영화계에서는 정평이 난 ‘감독 김성훈의 완벽주의’, 그 심간의 배경이 짐작되는 주지훈의 전언이다. 영화는 내 자식이다, 얼마나 정성과 진심으로 임하는지, 이보다 절절한 표현이 있을까.
네 번째 특성은 감독 김성훈의 화법에서 나온다. 배우 주지훈의 말을 들어보면 사람 김성훈이 보인다.
“여러 지역을 옮겨 다니면서 촬영하는 동안 김성훈 감독님이 감독으로서 요구하는 건 하나였어요. 내 방에 책상 하나만은 놔달라. 글 쓰고, 찍은 것 정리하고, 제가 작업한 감독님들 중에 최고 수준이에요. 이게 왜 중요하냐 하면요. 배우도 사람이니까 완벽할 수 없잖아요, 스태프도요. 그걸 감안해도 감독님이 우리에게 어떠한 어려운(완벽을 원하는) 요구를 하셔도 밉지 않아요. 본인이 이미 완벽하게 준비돼 있으니까요.”
“너무 많은 준비를 바탕으로 본인이 원하시는 게 명확하고, 그 명확함이 수긍이 되거든요. 거기에 더해, 저랑 열한 살 차인데 항상 저에게 ‘이쁜 단어와 이쁜 문법을 사용하셔서’ 매번 곱게 말씀하세요. ‘킹덤’까지 합해도 매번이에요. ‘더우시죠, 지금 힘든데 죄송하지만, 우리가 이걸 다시 촬영해야 하는데…’ 예쁘게 곱게 말씀하시니 밉지 않아요. 참 힘든 요구를 많이 하시는 감독님인데, 마음속에 털끝만큼도 불만이 없어요. 어릴 때 땡볕에 대여섯 시간 축구 하면 얼마나 힘이 들어요. 근데 콜라나 이온음료 사 먹을 돈도 없고 수돗물 퍼먹었는데도 즐거웠던 것처럼, 김성훈 감독과의 작업은 힘들어도 즐거워요.”
“어떤 기자 분이 ‘킹덤’ 고생스러워 보이던데 물어보시면, 떠올려야 해요. ‘이런 걸 원하시나’ 싶어 말하면 ‘으악’ 할 장면들이 있는데, 제 기억에는 즐거웠던 추억이에요. 손가락도 부러지고 그랬지만 굳이 물어보지 않으면 힘들었던 건 없고, 즐거운 기억만 남아 있어요. 그렇게 만드는 힘을 가진 김성훈 감독님입니다.”
완벽주의의 연장에서 자연스럽게 나온 네 번째 특성. 지상 최고의 완벽주의 감독이다 보니 자신에게 철저하고, 그것은 배우와 스태프의 작업으로 확장될 수밖에 없는데. 완벽을 요구받는, 결과 이전에 과정의 완벽을 수행해야 하는 이들은 벅찰 수 있는데. 이미 감독 자신이 최고의 성실로 준비 완료 상태에서 요구하는 것이다 보니, 심지어 곱디고운 단어와 문법으로 요청하다 보니 털끝만큼도 밉지 않다니! 육체적 고생마저도 심적으론 즐거운 추억으로 남기는 화법, 거친 실력자가 흔하디흔한 세상에서 실로 놀랍다.
본명이 김성훈인 배우 하정우는 감독 김성훈 감독에 대해 간결한 말로, 그러나 힘있게 신뢰를 드러냈다. 영화 ‘터널’에 이어 ‘비공식작전’까지 함께한 두 사람이다.
“영화나 삶을 바라보는 태도나 코드에 있어 서로 비슷한 점이 많아요. 어떤 비극적 상황에서도 주저앉기보다는 떨쳐 일어나려는 쪽이고 웃음과 긍정의 코드를 찾으려 노력하거든요. 저는 이번에도 제게 기회를 한 번 더 주신 거라고 생각하는데, 만일 내년 9월에 제 연출작 찍어야 하는데 감독님이 같은 시기에 저랑 찍자고 하신다, 그럼 저는 감독님 거 찍습니다. 그 정도의 신뢰를 주시는 분이에요.”
배우 하정우가 보태는 김성훈의 다섯 번째 특성, 믿을 수 있는 사람이자 감독이다.
‘관객께 드리고픈 선물’이라는 마음으로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 인생을 걸고 농사 짓는 마음으로 작품에 임하는 이들의 진심이 관객에게 고스란히 전달되어 흥행으로 이어지기를 꿈꾼다. 작품에 담긴 땀과 진심, 흠잡을 데 없는 완성도 등 작품이 내포한 가치 그대로 흥행성적표를 받을 수 있는 그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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