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작 20m 걸어가 그늘 앉아있던 사순이…“왜 사살했나”
경북 고령군의 한 민간 목장에서 탈출한 뒤 숲속 그늘에서 20여분간 앉아 있기만 했던 암사자 ‘사순이’를 포획하지 않고 즉시 사살한 데 대한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새끼 때부터 사람 손에 자라 평소 사람을 잘 따르고 맨손으로 쓰다듬을 수 있을 정도로 온순한 사자였던 만큼 마취총이나 포획망 등으로 생포할 수 있지 않았냐는 의견이 많다.
동물보호단체 ‘동물권 행동 카라’는 사순이를 길러 온 목장주의 말을 인용해 “사순이는 새끼 때부터 20여년간 사람 손에 길러져 사람을 잘 따랐다”면서 “인근 캠핑장 이용객의 대피도 끝난 상황에서 별다른 공격성을 보이지 않고 앉아 있었던 사순이가 맹수라는 이유로 별다른 숙고 없이 피를 흘리며 죽어가야만 했는지 안타까울 따름”이라고 지난 14일 인스타그램에 밝혔다.
암사자 사순이는 지난 14일 오전 7시24분쯤 우리 문이 열린 사이 빠져나와 목장에서 20m 떨어진 숲에서 발견됐다. 사순이는 20분 정도 숲속에 가만히 앉아 휴식을 취했다. 그러나 경찰과 소방본부는 인명피해가 우려된다며 사살을 결정했다. 엽사의 총에 맞은 사순이는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탈출한 지 불과 1시간10분 만이었다.
환경부의 ‘동물 탈출 시 표준 대응 매뉴얼’을 보면, 탈출 동물이 원래의 우리로 돌아가도록 하는 것이 가장 좋은 해결책이라고 명시돼 있다. 다만 위험 정도나 주변 상황에 따라 마취나 사살을 결정할 수 있다. 하지만 사순이는 사살 결정이 내려질 때까지도 별다른 저항이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인근 캠핑장에 머물던 70여명은 이미 모두 피신한 상황이었다.
사순이가 탈출한 이유에 대해서는 더위를 피해 숲으로 그늘을 찾아 들어간 게 아니냐는 추측도 나온다. 카라는 “탈출 후 목장 바로 옆 숲속에 가만히 앉아있던 사순이는 그저 야생동물답게 흙바닥 위 나무 그늘에 몸을 뉘어 보고 싶었을 뿐이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고 했다.
사순이의 사육 환경은 매우 열악했던 것으로 보인다. 카라는 “고령임을 감안하더라도 사순이의 몸은 매우 말라 있었다”며 “사육장 안은 행동풍부화(자연과 유사한 환경을 제공해 야생에서의 행동을 할 수 있게 해주는 것) 도구 등 사순이의 최소한의 복지를 위한 어떤 사물도 없이 시멘트 바닥뿐이었다”고 지적했다.
더욱이 사순이는 국제멸종위기종 2급인 ‘판테라 레오’ 종이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해당 종은 서아프리카, 중앙아프리카 북부, 인도에 서식하는 사자의 아종으로 개체수는 250마리 미만으로 극소수다. 카라는 “사순이는 그동안 합법적으로 사육할 수 없는 개체였어야 했다. 그러나 해당 법령이 2005년에 제정된 터라 그 전부터 사육되던 사순이의 경우 법령을 소급적용할 수 없어 지금껏 정책적 사각지대 속에서 개인의 소유로 합법 사육되어온 것”이라고 꼬집었다.
목장주는 사순이를 키우고 싶어서 키운 게 아니라는 입장이다. 그는 “지난해 소를 방목해 키우려고 목장을 인계받았는데, 와서 보니 사자가 2마리 있었고 수사자는 인수 전 죽었다”며 “환경청에 사자 처리를 문의하며 동물원에 기부나 대여하길 요청했으나 맹수 특성상 서열 다툼이 나면 동물원의 다른 사자가 죽는 등 우려로 다들 거부했다. 직전 주인도 처분하고 싶어했다”고 밝혔다.
결국 정부가 대형 야생동물 보호 시설을 마련해야 한다는 요구가 나온다. 카라는 “사순이처럼 개인이 불법 혹은 사각지대에서 기르다가 감당하지 못하는 동물들, 김해 부경동물원의 사자 ‘바람이’처럼 부적합한 전시시설에서 고통받는 동물들은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동물들의 고통과 국민의 안전 위협을 우리 사회가 아슬아슬하게 감당하고 있다”면서 개선을 촉구했다.
사살된 사자 사순이는 현재 환경시설관리 고령사업소 냉동실에 보관 중이며 사체 처리는 대구지방환경청과 논의를 거쳐 결정될 예정이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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