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중독으로 흉기난동?…"항생제 봐라" 전문가가 부정한 근거 [팩플]
폭력성 강한 게임은 현실 세계의 범죄도 유발할까. ‘신림역 흉기난동 살인’ 사건 피의자 조선(33)이 게임중독 상태였다는 검찰 수사 결과 발표를 두고, 게임 이용자와 정치권을 중심으로 논란이 커지고 있다.
무슨 일이야
서울중앙지검 전담수사팀은 지난 11일 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피고인(조선)이 현실과 괴리된 게임중독 상태에서 ‘불만과 좌절’ 감정이 쌓여 저지른 ‘이상동기 범죄’”라며 “젊은 남성을 의도적 공격 대상으로 삼아, 마치 컴퓨터게임 하듯이 공격했다”고 밝혔다.
이게 왜 중요해
수사 결과 발표 후 게임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또 게임 탓”이냐는 비판이 나오면서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물론 검찰이 범행의 직접적 원인으로 게임을 지목한 것은 아니다. 피고인 조선이 최근 8개월간 대부분의 시간 동안 게임을 하거나 게임 영상을 보는 등 중독 상태였고, 사후 분석 결과 실제 범행 행태에 게임과 유사점이 있던 만큼 일정 부분 영향을 미쳤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게임 이용자들은 명확한 근거 없이 게임을 이번 범죄의 원인처럼 묘사했다고 비판한다. 피고인의 가정환경, 개인 성향 등 다른 요인도 많은데 유독 게임을 콕 집어 언급했다는 지적이다. 정치권도 가세했다.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1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검찰이 의사도 아닌데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냐”며 “게임중독이라는 한 마디로 문화산업 전체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상헌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하루아침에 게임을 악의 원흉으로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검찰 수사 결과에 대한 이상헌 의원 관련 질의에 “게임이용 시간이 많다고 범죄와 상관관계를 단정 짓는 것은 무리가 있다”며 “게임은 국민 74.4%가 즐기는 대표적인 여가 및 문화생활"이라고 밝혔다.
게임과 폭력 범죄, 진실은?
게임이 폭력 범죄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일은 그전에도 있었다. 하지만 가상공간에서 총을 쏘고 칼을 휘두르며 범죄를 저지르는 게임 이용이 현실 세계의 범죄로 연결되는지에 대해선 학계에서도 아직 의견이 갈린다. 정신질환 측면에서 게임중독이 폭력성에 영향을 미친다는 분석도 많지만, 영향이 없다는 분석도 그만큼 많다.
총기 난사 사건이 빈발한 미국에서도 마찬가지다. 최근 게임업계에서 화제로 떠오른 미국 스탠포드대 브래인스톰 연구소 발표가 대표적이다. 이 연구소는 82건의 관련 논문을 검토한 후 “비디오 게임 이용과 현실 세계의 폭력적 행동 사이엔 인과관계가 없다”는 분석 결과를 지난 5월 미국 잡지 포춘에 기고했다.
연구 책임자인 데이비드 더피(David Dupee) 연구 전략 디렉터는 중앙일보와 이메일 인터뷰에서 “모든 관련 논문을 검토했지만 게임과 현실의 폭력 간 인과관계를 밝혀낸 건은 하나도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오히려 폭력적 비디오 게임 출시 후 몇 달 간 폭력 범죄가 감소하기도 했다”며 “연구자들은 총기 판매점 증가를 (범죄 증가의) 원인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게임이 실제 폭력 성향의 배출구 역할을 했을 수도 있다는 해석이다.
최근 국내 흉기 난동 범죄에 폭력적 게임이 미친 영향에 대해 더피 디렉터는 항생제와 질병을 예로 설명했다. 그는 “중병을 앓는 환자가 항생제 사용 후 사망했다고 항생제를 사망 원인으로 볼 수는 없지 않냐”며 “폭력적 비디오 게임이 보편화하고, 많은 총격범들이 그걸 해본 만큼 상관관계(correlation)는 있을 수 있지만 그렇다고 게임을 범죄 원인(causation)으로 볼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누군가 비디오 게임을 한다는 것만으로 그들이 폭력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을 예측할 수 없다”며 “우리 연구 결과는 총기에 대한 접근성, 근본적 정신 질환 문제가 해당 범죄의 원인이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내 전문가 의견은?
국내 전문가들도 게임이 범죄를 유발하는 여러 복합적 요인 중 하나는 될 수 있지만, 게임 때문에 범죄가 일어났다고 보긴 어렵다는 의견이 많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그런 게임을 한다고 다 그렇게 되는 건 아니고, 기본적 성향과 의지가 있어야 (게임이) 일종의 도화선처럼 작용할 수 있다"며 “정유정 사건 등 이전에 발생한 유사 범죄, 범죄 행위자의 주변 환경 등 여러 누적된 문제와 함께 복합적으로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민제 기자 letm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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