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이정표" 尹의 예고...29년전 YS '비밀작전' 업그레이드 된다 [3국 정상회의]

정진우 2023. 8. 16.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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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APEC정상회의에서 만난 당시 김영삼 대통령과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 무라야마 도미이치 일본 총리. 3국 정상은 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최초의 3국 정상회의를 개최했다. 연합뉴스

1994년 11월 14일 자카르타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참석했던 당시 김영삼 대통령은 만찬 직후 비밀 작전을 수행하듯 삼엄한 보안 속에 자리를 옮겼다. 김 대통령이 향한 장소는 자카르타 힐튼 컨벤션 센터의 한 회의 공간. 이곳엔 당시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과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일본 총리도 자리했다. 최초의 한·미·일 3국 정상회의가 개최되는 순간이었다.


29년 만에 새롭게 진화하는 한·미·일


1994년 10월 북미 제네바 기본 합의서에 서명한 당시 로버트 갈루치 미 국무부 동아태차관보와 강석주 북한 북한 외무성 제1부부장. 중앙포토
한·미·일 정상이 한자리에 모인 배경엔 북한 비핵화 문제가 있었다. 1994년 10월 북한이 핵 개발을 포기하는 대가로 미국이 북한과 수교하고 경수로 발전 시설을 건설해주는 ‘제네바 합의’의 후속조치를 이행하기 위해 한·미·일 정상 차원의 협의가 필요했다. 2003년 북한이 핵 시설을 가동하고 핵확산금지조약(NPT)를 탈퇴하며 제네바 합의는 파기됐지만, 이후에도 3국은 북·미-남북 대화, 대북제재, 핵·미사일 위협 대응 등 각 시기마다 도출됐던 북한 이슈를 협의·조율하며 공조 체계를 유지했다.

약 30년간 북한 문제에 초점을 맞췄던 한·미·일 공조는 오는 18일 미국 캠프 데이비드에서 새로운 형태로의 진화를 알릴 예정이다. 이날 열릴 한·미·일 정상회의는 3국이 한반도 문제를 넘어 동북아를 포함한 인도-태평양 지역 내의 안보 위협을 아우르는 협력 체계를 구축하는 상징적 일정으로 평가된다. 최근 경제·안보·외교 모두에서 가장 주목받는 지역인 인도-태평양에서 한·미·일의 ‘안보 파수꾼’ 역할을 알리는 자리다.

이와 관련 윤석열 대통령은 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사흘 뒤 캠프 데이비드에서 개최될 한·미·일 정상회의는 한반도와 인도-태평양 지역의 평화와 번영에 기여할 3국 공조의 새로운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북핵 넘어서되 북핵 집중력 유지해야


북한은 지난달 28일 전승절 70주년 기념식에서 열병식을 개최해 무인기와 ICBM 등의 무기를 대거 공개했다. 연합뉴스
한국을 둘러싼 최근의 국제 안보 정세는 ‘내우외환(內憂外患)’으로 요약된다. 안에선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커졌고, 밖에선 미·중 경쟁과 대만 해협 갈등, 우크라이나 전쟁 등의 안보 불안 요소가 요동친다. 이에 발맞춰 한·미·일은 공조의 범위를 대폭 확대하겠다는 계획이지만, 이를 위한 대전제는 북핵 대응 강화다. 3국이 안보 공조의 범위를 확대하는 과정에서 북핵 대응의 고삐가 느슨해진다면 이는 오히려 한국의 안보 위협이 가중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3국이 북핵을 넘어 글로벌 안보 위협에 대응하면서도 북핵 대응력을 높이기 위해선 한·일 협력이 필수적이다. 북핵을 머리에 이고 사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본 역시 북핵 위협의 당사국이다. 즉 한·미·일 공조의 틀 안에서 일본을 상대로 끊임없이 양국의 핵심 과제는 북핵 임을 상기하고, 이를 통해 일본 정부와 정치권 역시 북핵 위협에 상시적 경각심을 유지토록 견인해야 하는 이유다.


'中 견제'서 정교한 외교술 필요


한미일 3국이 가치를 중심으로 뭉쳐 인태 지역의 안보 위협에 공동 대응할 경우 중국이 핵심 이익으로 규정한 현안과 충돌할 가능성이 크다. 사진은 지난해 11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한중 정상회담 당시 악수를 나누는 윤석열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연합뉴스
한·미·일 공조 강도에 비례해 중국 리스크가 커질 수 있다는 점 역시 한국의 숙제다. 특히 3국이 공조의 핵심 원칙으로 강조하는 인권·자유·민주주의 등의 가치는 중국의 핵심 이익이자 미·중 갈등 현안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대만 해협을 포함한 남·동중국해 갈등, 신장 위구르 소수민족 및 홍콩 인권, 중국과 대만 관계 등이 대표적이다. 이에 따라 중국 역시 최근 한·미·일 공조 강화 흐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동향을 주시하고 있다.

왕원빈(汪文斌)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15일 정례 브리핑에서 한·미·일 정상회의 개최에 대해 "중국은 관련 국가가 각종 소집단을 만드는 것에 반대하고 대립을 격화하는 것에 반대하며 다른 나라의 전략적 안전을 해치는 행동에 반대한다"며 경계심을 드러냈다.

실제 미국이 한·미·일 협력을 강조하고 3국 인도-태평양 전략의 상호 연계를 추구한 배경엔 대중 견제 전략이 자리하고 있다는 게 외교가의 중론이다. 최근 미·중 관계가 대화 국면으로 접어든 만큼 한·미·일 공조의 대중 견제 색채가 단기간에 짙어지진 않겠지만, 한·미·일과 북·중·러의 경쟁 구도가 고착화되고 미·중 공급망 경쟁이 가열될수록 한국의 '중국 상대 능력' 역시 정교해지고, 고급스러워져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글로벌로 역할 확장, 옥석 가려야


한미일 공조 강화는 국제사회에서 역할과 책임을 강화하겠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외교 기조와 일맥상통한다. 다만 그로 인해 부담해야 할 리스크와 과제 역시 늘어날 수밖에 없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한·미·일 공조 강화는 국제사회에서의 역할과 책임을 확대하겠다는 윤 대통령의 외교 기조와 부합한다. 특히 인도-태평양 지역을 아우르는 한·미·일 공조가 향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유럽연합(EU) 등과 연계한다면 사실상 3국이 글로벌 안보 이슈를 아우르는 포괄 안보 협의체로 진화하게 된다. 다만 가치 외교를 중심으로 한·미·일이 한 몸처럼 움직여야 한다는 점은 상황에 따라 외교적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고, 때로는 한국의 국익과 직접적으론 관련이 없는 이슈에도 개입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실제 한국은 주요 국제무대에서 때로 미·일과 다른 입장을 취하곤 했다. 지난해 11월 유엔총회 제3위원회에서 중국의 신장 위구르 소수민족 인권침해를 규탄하는 성명에 불참하고,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 규탄 결의안에 기권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당시 국내외에선 한국이 가치외교를 표방하면서도 주요 인권침해 사안에 대해 선택적으로 접근한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현안 별로 공조와 비판 중 무엇을 택할지에 따라 한국 정부의 외교력이 드러나게 된다.

정진우 기자 dino8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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