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갑생의 바퀴와 날개] ‘땅속 경부고속도로’ 3가지 방안…“양재IC 퍼즐부터 맞춰야”
총연장 400㎞가 넘는 경부고속도로(이하 경부선)는 1970년 개통했다. 이후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경부선은 확장과 선형 개량 등 여러 변화를 겪었다. 그러다 최근엔 전례 없는 변신을 준비 중이다. 바로 ‘지하화’다. 엄밀히 말하면 기존 도로 아래에 새로 지하도로를 뚫는 것이니 지하와 지상이 공존하는 ‘2층 고속도로’라고 할 수 있다.
현재 경부선 안팎을 둘러싼 지하화 사업은 크게 세 갈래로 진행되고 있다. 우선 국토교통부(국토부)가 상습정체 구간인 기흥IC~양재IC 사이 26.1㎞ 구간에 대해 추진하는 지하도로 건설사업이 있다. 기존 노선 아래 40~50m 깊이의 대심도(大深度) 왕복 4~6차로를 건설해 도로 용량을 대폭 늘리겠다는 내용이다. 2027년 착공을 목표로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예비타당성조사를 진행 중이며, 추정 사업비만 3조8000억원에 달한다. 과거 경부선 위에 2층 도로를 만드는 아이디어도 나온 바 있었지만 결국 지하로 들어가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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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토부, 양재~기흥 지하도 추진
‘양재~고양 지하고속도’도 검토
서울시, 양재~반포 지하도 건설
“접속부 정리, 안전대책 마련을”
」
상습 정체 해소, 주변 개발 효과
국토부가 밀고 있는 또 다른 방안은 ‘양재~고양 지하고속도로’ 민자사업이다. 민간건설사가 먼저 제안한 사업으로 서울문산고속도로와 경부선을 지하 대심도로 연결하는 개념으로 본선 길이만 26㎞에 이른다. 설계속도도 고속도로답게 시속 100㎞이며, 한남·서빙고·망원·당산 등에 IC(나들목)도 계획돼 있다. 개통되면 수도권 서북지역을 오가는 광역교통량을 상당 부분 소화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정천우 국토부 도로투자지원과장은 “올해 2월 KDI의 민자적격성 심사를 통과했으며 제3자 공모를 앞두고 내부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민간 제안사업은 민자적격성 심사를 통과하면 다른 건설사에도 아이디어 제안과 입찰 기회를 주는 제3자 공모를 한다.
여기에 서울시가 추진하는 ‘경부간선도로 지하화 사업’도 있다. 양재IC~반포IC 사이 6.9㎞ 구간 지하에 중심도(5~40m)로 지하도로를 건설하고, 기존 상부 도로는 최소 차로만 남겨 주변 생활도로와 평면 연결하겠다는 계획이다. 이 구간에 길게 뻗은 선형공원을 조성한다는 구상도 있다. 현재 한국지방행정연구원에서 타당성 조사를 진행 중이다. 양재~반포 구간은 당초 경부선에 속했으나 2002년 관리권이 한국도로공사(도공)에서 서울시로 이관되면서 제한속도가 시속 80㎞인 간선도로 바뀌었다. 이에 따라 명칭도 ‘경부간선도로’로 불린다.
이들 세 가지 사업이 모두 2030년대 초반에 완공되면 경부선 수도권 구간의 상습정체가 해소되는 데다 고속도로로 단절됐던 양재~반포 구간을 다시 잇고 주변 개발도 가능해지는 등 여러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평가다.
그러나 전례 없는 대규모 공사답게 넘어야 할 산도 많다. 무엇보다 기존 지상도로에다 세 갈래 지하도로까지 한데 모이게 될 양재IC 부근의 접속부를 어떻게 교통정리 하느냐가 관건이다. 지하와 지상 모두 제한 없이 오갈 수 있도록 연결하려면 상당히 복잡한 퍼즐을 맞춰야만 하기 때문이다.
오철 한양대 교통물류공학과 교수는 “복잡한 진·출입 접속부에서 운전자가 상당한 혼란을 겪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교통소통진단을 통한 선제적 방안 마련이 필요하다”며 “양재IC 부근에서 새로운 병목으로 인한 정체 발생 가능성도 짚어봐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기현 서울시 도로계획과장은 “양재IC 안팎의 접속 문제가 쉽지 않은 건 사실”이라며 “현재 도공에서 접속부의 원활한 교통처리를 위해 시뮬레이션 분석 중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지하도로 안전 문제도 큰 숙제다. 30㎞ 가까운 길이에 시속 100㎞로 달리는 대심도 지하고속도로는 외국에서도 유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김현 한국교통대 교통에너지융합학과 교수가 지난 2월 발표한 ‘대심도 지하고속도로의 효과 및 외국사례’자료를 보면 대표적인 지하도로 사례로 꼽히는 미국 보스턴의 ‘빅딕’(2006년 완공)도 12㎞ 길이에 설계속도는 시속 65㎞에 그친다.
스페인 마드리드, 프랑스 파리 등지에 건설된 지하도로 역시 길이가 10㎞ 이내에 설계속도도 시속 70㎞를 넘지 않는다. 그나마 길다고 알려진 일본 도쿄순환도로의 대심도 터널도 16㎞가량이다. 국내에선 2021년 개통한 서울 서부간선지하도로가 10.3㎞로 가장 길며 설계속도는 시속 80㎞다. 김현 교수는 “지하도로는 진·출입 문제 때문에 접근성이 떨어지고, IC 설치가 어려워 대규모 운영에 한계가 있다”며 “특히 대심도 도로는 사고가 발생할 경우 그 피해가 심각하기 때문에 방재 계획도 아주 신중하게 짜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대심도 구간은 연장이 길수록 사업비가 증가하기 때문에 수요만 고려해서 터널 규모를 결정하면 운영 및 유지·보수 측면에서 어려울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설계·공사·운영 컨트롤 타워 필요
지하화 사업 주체가 국토부와 서울시, 민간사업자 등으로 나누어지는 데 따른 의사결정체계의 혼선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앞서 국토부와 서울시, 경기도, 도공은 지난 1월 경부 지하고속도로 사업의 원활한 추진을 위한 업무협약을 맺었다.
유정훈 아주대 교통시스템공학과 교수는 “사실상의 고속도로를 도공 구간과 서울시 구간으로 나눠서 따로 추진하는 건 부적절하다”며 “국토부가 컨트롤 타워를 맡아서 기획부터 설계·공사·운영까지 전 과정을 총괄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유 교수는 또 “도로망 구축 전에 미래의 수도권 공간을 어떻게 입체적으로 만들지에 대한 구상부터 수립해야 한다”며 “큰 청사진 없이 각기 도로부터 만들면 또 하나의 난개발이 될 수도 있다”이라고 우려했다.
경부선 지하화 사업은 국내는 물론 외국에서도 아직 가보지 않은 길이다. 새로운 길을 개척한다는 의미도 크지만 그만큼 감수해야 할 위험도 적지 않다. 서두르기보다는 하나하나 세밀히 짚어가며 추진해야 하는 이유다.
강갑생 교통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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