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정의 생활의 발견]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물음표 닮을 일이네
“무구는 잘 있습니까?” 부산에 사는 H 시인의 전화다. 시인은 지인들 가운데 항상 나보다 내 반려묘의 안부를 먼저 묻는 유일한 이이기도 하다. “무구는 올해 몇 살이 되었습니까?” 그제야 비로소 손가락을 하나씩 접어가며 셈해보는 나. 그렇게 무구의 십 년 세월을 반추해보게 된 나. 더불어 자신 있게 답할 수 있는 힘도 생긴 나. 덩달아 질문의 흉내도 내보게 되는 나. “선생님도 잘 계셨지요?”
1932년생으로 91세. 시인은 30여 년 전 뇌출혈로 쓰러져 오랜 투병을 해오시는 가운데 거동은 불편해도 시는 놓지 않으신 연유로 가끔 책을 핑계로 나와 대화의 출렁다리를 오가셨다. 시인은 연로해진 당신 말을 못 알아들을까 봐 단어 하나하나를 끊어 발음하시곤 하였는데 그 말의 들림이 내 몸의 들림으로 이어지는 데는 실은 이 하나가 컸다. 앞서 힌트로 꺼냈듯 물음표 말이다.
시인은 말끝에 문진 같은 마침표를 눌러두기보다 옷걸이 같은 물음표를 걸어두는 식의 대화법을 즐겼다. “파주가 왜 좋습니까?” “책이 지겹지 않나요?” “허수경 시인 신작은 나옵니까?” 호기심 가득한 시인의 물음에 답을 하기 위해서는 꾸깃꾸깃 엉킨 채로 처박아두었던 내 진심을 파내는 일이 우선시되어야만 했다. 나는 정말 파주가 좋을까. 내게 책은 지겨움일까, 지루함일까. 물음표가 낫이 되는 순간 망설이지 않고 바로 내뱉을 수 있는 말은 이런 사실뿐. “허수경 시인이 5년 전에 독일에서 세상을 떠나서요……” “아, 허수경 시인이 세상에 없습니까? 그랬습니까? 너무 안타깝다, 그죠.”
아무런 목적 없이 그저 사랑으로 전화를 거는 일. 물론 받아주는 이가 전적으로 수용하는 기쁨을 알 적에야 행할 수 있는 일일 텐데 어느 날 아침 불쑥 걸려온 후배의 전화. “언니 힘내라고 내가 선물 사줄까?” “고등어가 맛있지.” “언니 무슨 소리야?” “생물 사준다며?” 잘 물으려거든, 잘 들으려거든, 일단 귀지부터 잘 파놓고 볼 일이겠다.
김민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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