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치문의 검은 돌 흰 돌] 여자바둑리그와 3인의 용병
2023 NH농협은행 한국여자바둑리그는 정규시즌 14라운드 중 5라운드를 끝내고 이번 주엔 6라운드를 벌인다. 이곳엔 3명의 외국인 용병이 있는데 이들이 리그에 주는 자극과 영향이 예상을 뛰어넘는다.
여자바둑리그 지난해 우승팀은 서귀포칠십리다. 서귀포는 올해도 1지명 조승아와 주부기사 이민진의 연승으로 1위를 달리다가 지난번 5라운드에서 부안새만금잼버리 팀에게 일격을 당했다. 부안의 일본 용병 후지사와 리나 6단이 서귀포의 주장 조승아를 격파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98년생인 후지사와 리나는 작고한 후지사와 슈코 9단의 손녀다. 술과 경마에 탐닉하면서도 일본 최대 타이틀인 기성전을 연달아 제패하며 한 시대를 풍미했던 ‘괴물기사’ 슈코. 그 피를 이어받았는지 후지사와 리나도 일본 여자본인방을 3연패하고 있다. 바둑리그에서는 현재 3전 3승. 하나 내심 조용히 벼르고 있는 최정 9단은 아직 만나지 못했다.
후지사와는 “한국을 너무너무 좋아하는데 코로나 이후로 오랜만에 오게 돼 무척 기뻐요”라고 말한다. 부안팀 김효정 감독은 “명동에 혼자 쇼핑하며 돌아다닐 정도로 한국에 익숙하다. 팀으로서는 참 고마운 존재”라고 말한다.
나카무라 스미레는 2009년 오사카에서 태어나 8살 때 서울의 한종진 도장에 바둑 유학을 왔다. 스미레는 2019년 일본기원 ‘영재 특별채용’으로 프로기사가 됐고 올해 2월 여자기성전에서 깜짝 우승했다. 일본 매스컴도 감격한 사상 최연소 13세 여자기성이 탄생한 것이다. 그리고 올해 여자바둑리그 순천만국가정원 팀의 용병이 되어 다시 서울에 왔다.
“팀에 불러줘서 기뻐요. 한국 음식을 사랑해요”라고 말하는 스미레, 그녀의 성장과 변화는 하도 빨라 보는 이가 숨 가쁠 정도다. 어머니 손 잡고 왕십리 한국기원과 도장을 오가던 귀엽고 쬐그만 소녀가 눈에 선한데 어느덧 숙녀 티가 난다. 여자리그엔 3번 출전해 2승 1패. 만만치 않은 실력자가 됐다. 그러나 스미레에겐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수많은 강자를 만나 단련하고 이겨내야 한다. 특히 한국의 김은지, 중국의 우이밍을 극복해야 장래 일본이 기대하는 세계 최고가 될 수 있다. 스미레는 그래서 한국리그뿐 아니라 중국여자갑조리그에도 출전하고 있다.
우이밍 5단은 2006년생으로 중국바둑계에선 ‘작은 마녀’라고 불린다. 4살 때 너무 짓궂고 장난이 심해 바둑을 가르쳤는데 그게 적중했다. 11세 때 중국 최연소 여자프로기사가 됐고 올해 항저우 아시안게임 대표선발전에서 1위 위즈잉에 이어 당당 2위로 관문을 통과했다. 참가 선수 중 랭킹이 가장 낮았는데 성장 속도가 워낙 빨랐다.
우이밍은 이번 한국여자리그에 참여한 유일한 중국기사다. 서울부광약품 소속인데 현재까지 2승 1패를 기록하며 순항 중이다. 우이밍은 항저우아시안게임에 모든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항저우가 나의 집이다. 바로 집 앞에서 아시안게임이 열리는 만큼 중국과 항저우를 위해 꼭 금메달을 따고 싶다. 예전에 최정 언니와 두어봤는데 차이가 크게 났다. 아시안게임에서 만나면 더 잘 두고 싶다.”
이런 우이밍이 서울까지 오가게 된 것은 말하자면 한국바둑을 익혀 아시안게임에 대비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최정이란 존재는 이미 너무 멀리 갔다. 그보다는 동년배로 앞으로 수없이 대결해야 하는 김은지란 존재가 더 궁금했을 것이다. 김은지는 여자리그에서는 여수섬박람회 팀의 주장. 얼마 전 10번의 대결 끝에 처음 최정을 이긴 무대도 여자리그였다. (부쩍 커버린 김은지는 오늘(16일)부터 최정 9단과 두 개의 결승전에서 6번기를 시작한다)
최정과 김은지, 그들을 지켜보는 3인의 용병, 그리고 김은지-우이밍-스미레로 이어지는 미래 한·중·일의 여자바둑이 여자리그와 함께 조금씩 윤곽을 드러낸다.
박치문 바둑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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